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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5 | 칼럼·시평 [시]
『중노송동 일기』
박남준․시인(2004-01-29 13:31:40)

이번에 새로 선을 보이게 된 ‘시 이야기’는 그 내용적인 면에서 시작메모와 비슷한 성격을 갖지만 그 보다는 좀더 주체적으로 작가의 삶과 정신 세계가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나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그 기획의도이다. 앞으로 작가 자신의 눈을 통하여 들여다보는 작품과 작가의 내면세계에 대한 내용이 담겨질 ‘시 이야기’란을 통하여 독자와 시인과의 만남의 거리가 보다 가까워 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기린봉의 한 산자락이 북서로 뻗은 줄기, 뜰 앞의 작은 텃밭들과 바람에 서걱이는 대숲과 뒷 창문 밖 아름드리로 서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소나무 밭, 떡갈나무 숲, 중노송동 1가 9-1 비록 집은 작고 허름하여 보잘 것 없지만 나는 이 집을 둘러 싼 주변의 풍치들로 인하여 날마다 오르내리는 산언덕의 비탈을 힘들어하지 않았다. 이립의 나이, 살모가 그렇지 못한 상황간에서 빚어지는 고통스러운 갈등, 절망과도 같은 번민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불면의 날들이 나를 극한 대립으로 치닫게 했던 곳,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임실에서 일년여간의 농사일을(사실 농사랄 것까지도 없는 두마지기가 조금 넘는 논농사와 백여평의 고추농사를 그야말로 한껏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뜻하지 않게 무공해 자연농법이 되어졌던)미처 생각지 못했던 몇가지일들로 인하여 그만두고 1년여를 떠돌다 방을 얻은 이곳은 처음에는 지붕에서 비가 새고 방문이며 부엌이 거의 부서진 폐가와 같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집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주인집과는 뚝 떨어진 그리고 글의 처음에 이야기한 집주변의 풍광때문이었다. 서툰 망치질로 방문을 고쳐 달고 툇마루를 내어 달고 헌 비닐 장판을 지붕에 덮어 비를 막았다. 또한 텃밭을 일구어 배추며 상추, 몇포기의 가지와 토마토를 심어 자그마한 채마 밭을 만들었다. 이렇듯 내가 그간의 동서가식 남북가숙의 역마의 삶을 벗어나 그나마의 살림을 꾸리게 된 것은 지금도 그리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 당시 5공화국의 서슬퍼런 공안 정국때문이기도 했다. 이 지역의 사회운동 단체인 “전라북도 민주화운동협의회”-전민현(현 전민련)의 실무자들이 대부분 수배상태에 놓였던 당시는 단순히 사무실을 지키고 앉아 있을 사람이라도 필요했었을 때였다. “어떻게 생각하냐?” “글쎄요” “해보아라” “자신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흐른 날들 이곳저곳의 집회와 회의 장을 들고나던 시간들이 벌써 일년여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운동가로서의 변화되어진 내 모습이 아니었다.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러한 다짐은 오래가지 못하고 비참하리만큼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전경들의, 백골단들의 무자비한 폭력앞에서 나의 운동은 너무나도 초라했으며 노한 눈물의 분노뒤에는 어김없이 심한 무력감과 수치스러운 패배감이 찾아들고는 했다. 지친 몸, 어둔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방안은 언제나 적막에 휩싸였으며 쓸쓸했다. 보도불럭의 깨어진 조각들이 어지럽게 뒹구는 밤거리의 그 을씨년스러운 풍경, 머리채를 휘어잡히며 개처럼 끌려가던 나어린 여학생들의 비명이 파편처럼 쏘아져 내 온 육신에 박히는 듯했다. 떠 다녔다. 기웃 거렸다. 달려가는 발길들에 밀려나고 밀려나며 어느 발길, 손가락질에도 비틀거리지 않겠다던 젊은도 이제 지쳐 비틀거리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 몇 번이나 빈 주머니 속을 확인했는가 중노송동1가 9-1 밤 늦도록 산동네 졸리듯 흘러 나오는 불빛들 우유배달, 청소부, 새벽일터 나가는 사람들 똑바로 걸으면 걸을수록 길을 어긋나고 못난 놈, 못난 놈, 부끄러움만 매질할 뿐 반길이 없는 어둔 방, 그 앞에 서면 그립다, 불밝혀 기다리는 이 눅눅한 습기들도 기다리다 지친 한 사글세방 너도 그렇게 눈물나는 하루였더냐 호랑지빠귀야, 슬픈 새소리 들려오고 어제밤에도 그랬던가 재떨이 뒤져 꽁초 한 개피 태워물면 또 하루가 막막하기만 한 어머니, 당신의 눈물로도 정한수로도 어쩔 수 없는 집 떠나 소식없는 못난 아들의 -“중노송동 일기” 전문 밤이 이슥하면 어김없이 돌아가는 저만큼의 내 방문은 항상 어둡고 외로웠다. 그리고 언제 부터인가 나는 내 방문이 바라보이는 담 모퉁이를 돌아서며 눈을 감았다. 떠보고는 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또한 나는 어두운 방앞에 서서 댓돌위의 신발들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했다. 아무도 오지 않았었구나! 중노송동 시절 내가 지금가지도 잊을 수 없던 참담한 기억의 가슴 아픈 하룻밤, 그날도 밤이 이슥하여 집 저만큼의 담모퉁이를 돌아서며 감았던 눈을 뜨니 아! 창호지새로 펴저나오는 훤한 불빛, 저 따듯한 그리움의 불빛, 누구일까? 누가 왔을까? 나는 기척도 없이 다가가 덜컹하고 방문을 열었다. 어디 잠시 바람이나 쐬러 밖을 나갔을까 혹시 기다리다 시간이 없어 그냥 떠났을까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남기고 갔을 흔적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아아! 몇 시간이 흘러서야 어둔 밤 내 방안을 훤히 밝혀두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젯밤에 불을 켜둔 채 잠든 내가 늦잠으로 출근시간에 쫓겨 허둥대며 그냥 나갔었던 것이다. 질척거리며 방밖에는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지 않는 이를 그리는 구슬픈 호랑지빠귀의 울음이 목을 놓아 목을 놓던 그 밤, 나의 부끄러운 고백인 중노송동의 일기가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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