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1.12 | 칼럼·시평 [문화칼럼]
허울뿐인 교육자치제의 알맹이를 고르는 일
김인봉 전라북도 교육위원(2004-01-29 17:00:22)

감사를 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전라북도 교육감 소관 교육자치사무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한 것이다. 교육행정운영의 실태를 파악하여 교육위원회활동과 예산심의를 위한 필요한 자료 및 정보를 획득하고 교육위원회 시책운영의 모든 단계에서의 합법성 및 합목적성 여부를 종합 검토하여 잘못된 부분을 지적, 시정 요구함으로써 교육위원회에 부여된 자치입법기능․예산심의기능 및 통제기능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감사였다.
걱정이 태산같았다. 30년 만에 되찾은 교육자치제를 열어 가는 한 사람으로서 뭔가 달라지고 있음을, 개혁의지를 보여줌으로써 교육자치제의 뿌리내림과 교육위원회의 자리매김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랄까, 강박관념, 조금함을 누를 길이 없었다. 어떤 위원은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날 정도였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8년 6개월의 교직생활을 가진 자로서, 교육모순 해결과 네 식구의 생계를 맞바꾼 사람으로서, 교단을 떠난 뒤에도 잘하진 못했지만 꾸준히 전교조 활동을 한 사람으로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교육계에 없애고, 고치고, 채우고, 늘리고, 줄이고, 새로이 만들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막상 감사에 들어가니 구체적인 사안들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아서 정말 답답했다.
지방교육자치법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감사기간이 매년 11월 1일부터 개회되는 정기회의 기간 중 5일 이내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5일 동안 어떻게 전라북도 교육․학예 전반에 관한 실태를 파악하여 교육위원회에 부여된 자치입법․예산심의․통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지도감사의 경우 단위학교도 이틀씩 받고 교육청은 일주일을 받는데, 감사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교육위원들이 하룻(정확히 말하자면 아침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8시간 동안)동안에 무엇을 파헤치고,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더욱이 절대다수인 국가사무는 손도 못 대고 고위 사무에 대해서만, 그것도 금년 9월 2일 교육위원회 구성일 이후에 처리된 사무에 한하며 그 이전에 처리된 사무는 포함되지 않는데.
그리고 교육위원 혼자서 무슨 재주로 감사자료 및 정보를 어떻게 수집․분석․정리하여 간단․명료하고 내용 있는 질문을 던져 명쾌한 답변을 얻어내 교육계의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을까. 배부른 소리 같지만 국회와 마찬가지로 보좌관이나 전문위원제도 시급하다. 몇 안 되는 교육위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을 위해서이다.
증인은 나오지 않아도 된다. 교육청에서 국민학교 교사가 학생을 성폭행 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진정서도 들어왔다. 학생과 교사 양측에 다 출두요구서를 보냈다. 피해자인 학생은 나왔지만 가해자인 교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 날 마침 법원에 출두하는 날이라 나오지 못했다고 하지만 후 일 들은 얘기로는 왜 내가 그런데 나가야 하냐. 나가고 싶지 않아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양쪽 말을 다 들음으로써 진상을 파악할 기회와 권리와 의무를 다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증인(가해자)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으며, 설령 나와서 위증을 한다 해도 그냥 속아넘어가거나 분개하는 일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국정감사와 마찬가지로 증인에게 선서의무를 부여하여 허위답변이 밝혀질 경우 법률상 제재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자치제를 기초 단위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그 지역실정에 밝은 교육주체들이 그곳 학교와 교육청의 잘․잘못을 밝혀내고 이해와 요구를 반영함으로써 의미 있는 변화를 추구해 나갈 수 있다.
이번 감사에서 정말 아쉬운 것이 있다면 법으로는 보장되어 있지만 우리의 홍보부족으로 지켜지지 못한 공개감사의 원칙이다. 교육위원회에서 논의되는 것은 감사든 조사든 일반회의든 그 지역주민에게 공개되어야 하며 이 때 공개라 함은「방청의 자유」,「보도의 자유」,「회의록 공표」를 의미하나 우리의 홍보부족으로 감사장에 나온 사람은 교육청 관계자와 보도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감사 결과가 일반 매스컴을 통하여 보도됐더라면 아쉬움은 덜하지만 내가 속한 감사B반을 나흘동안 120여개의 질문․답변을 하였지만 겨우 3~4개만 보도되었을 뿐이다. 결국 일반인들은 감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안다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감사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알려야 한다. 공개적으로. 매스컴과 유인물과 학교방문을 통해서. 그리하여 교육위원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고 교육행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직접 확인․감시하여야 한다. 그래야 교육주체의 참여와 자치 속에 국민에 의한, 국민의 교육이 이루어 질 것이다.
하여튼 감사는 끝났다. 인사관리 규정 개정을 비롯한 50여건에 달하는 시정 및 회의요구사항과 15건에 달하는 교육부 건의서를 합의․통과시킴으로써 감사는 끝났다. 감사의 효과는 사고의 미연방지, 부정 비위의 제거 및 회계질서 확립, 자체통제, 자율시정의 기풍을 확립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우리 교육계의 근본적인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양심적이고 성실한 교육위원이 잇다한들, 그 몇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교육모순이 해결될 수 있을까.
허울뿐인 이 교육자치제의 알맹이를 채울 사람은 누구인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