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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 | 칼럼·시평 [문화 시평]
2014년 오늘, 사람들은 왜 판소리를 좋아할까?
2014 판소리마당 ‘여창의 멋’
조세훈 문학박사(2014-03-03 18:25:27)

새천년, 밀레니엄을 얘기한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4년이다. 어렸을 보았던 만화영화에서 로봇이 가사도우미를 해주고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시대로 그려졌던 21세기, 시대가 바로 오늘이다. 물론 만화영화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필자의 어렸을 때에 비해서 세상은 많이 그리고 빠르게 변했다. 

지난 2 22, 여느 같으면 한가했을 토요일 오후에 조금은 급한 마음으로 남원을 향했다.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에서 기획한 2014 ‘창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전주에서 일이 하나 마치고 가야해서 시간이 늦을까봐 다소 조바심이 났었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 공연장을 향하면서 마음은 벌써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산자락 아래 자리한 공연장의 한적한 느낌 때문이기도 했고 공연장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남원시 풍경의 정겨움때문이기도 했다.  

공연은남창의 이은여창의 주제로 공연이었다. 바디가 다른 명의 젊은 여류명창들이 각각의 대목소리를 했고 공연에 앞서 해당 대목과 소리꾼에 대한 해설이 있었다. 

번째 마당은 신재효의 제자로 이론과 실기에 능했다고 알려진 김세종 바디 춘향가 신관사또 부임하는 대목이었다. 춘향가의 내용을 춘향과 신관사또, 이몽룡 사이의 갈등관계를 중심으로 해석한다면 대목은 춘향과 신관사또의 본격적인 갈등이 전개되기 전에 모티브가 제시되는 부분이라고 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서는 김세종의 특장(특별히 빼어난 장점) 춘향가 천자풀이 대목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특장이야 부르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니 이날의 여류명창의 소리로 들은신관사또 부임하는 대목 나름의 맛과 새로움이 있었다.

번째 공연은 강산제 판소리 심청가 부인 유언하는 대목에서부터심봉사가 젖동냥 하는 대목까지였다. 강산제는 박유전으로부터 이어오는 판소리 바디를 말한다. 강산제라고 불린 것은 그가 터를 잡은 곳이 보성군 강산리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흥선대원군이 그의 소리를 듣고 감탄하여네가 제일강산이다라고 했던 데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다. 판소리인들 사이에서는 후자가 많이 회자된다. 필자가 성우향 명창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명창도 그렇게 설명했었다. 

공연한 대목은 심청가 중에서 슬픈 대목에 속한다. 심봉사가 곽씨부인과 사별하는 대목도 그렇거니와 보는 아비가 배고파 우는 어린 딸을 위해 젖동냥을 하는 대목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하지만 판소리에서는 슬픈 대목이라 하여 구슬픈 음조로만 엮지 않는다. 슬퍼 울기도 하고 우는 자식을 윗목에 팽개치며죽어라, 죽어라하기도 하지만, 예쁘게 크라고 하며어화 둥둥 딸이야하기도 한다. 삶이라는 아무리 슬퍼도 이것을 이겨낼 기쁨이 함께 있는 것이니 판소리의 멋은 이러한 삶을 담은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흥보가 제비노정기 대목에서흥보 박타는 대목까지를 박녹주제 소리로 감상할 있었다. 대목을 부른 여류명창은 음색이 특이하여 기억에 남는데 특히 중하성이 인상적이었다. 박녹주 명창이성량이 거대했었다”(정노식, 1994(복각본), 『조선창극사』,동문선, p. 254.)는데 특색을 이어 받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이 있었는데 대목에 대한 해설이었다. 날의 해설은 모든 대목에 대해 상세하면서도 재미있는 설명을 해줬는데 특히 대목에 대한 해설은 줄거리를 맥락으로 짚어주어서 더욱 유익했다. 흥보와 놀부는 시대의 문제아였다는 것이다. 흥보는 양반이면서 경제적으로 몰락한 인간형을 표현하고, 놀부는 천한 신분이면서 돈이 많은 인간형을 상징한다고 했다. 신분제와 유교적 윤리가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부자이고 천민은 가난한 것이 자연스러우며 도덕적인 사람이 잘살아야 하고 비도덕적인 사람이 살아야 했다. 하지만 흥부와 놀부는 모두 이러한 시대적 기준에 어긋났다. 그래서 이러한 (당시의 기준에서의) 비정상을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뚜렷한 방법이 없으니 제비가 물어다 박씨라는 비현실적 방법으로 이를 해결을 했다는 것이다. 군더더기도 없고 명쾌했다. 

날의 공연은 여류 명창들이 감기에 걸린 목상태가 좋아서 시원스러운 상청을 듣지 못한 아쉬움이 다소 남기는 하지만 다시 판소리의 맛과 멋을 생각하게 공연이었다. 어린 시절 만화영화에서 묘사되었던 미래의 시대 21세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오늘에도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연했던 여류 명창들은 감기에 걸린 했고 그래서 목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상태가 좋으니 이해해달라고 말하는 명창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소리를 따름이었고 자체로 평가받겠다는 입장이었다. “ 정도 소리는 3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20년은 했을 겁니다라고 무심한 얘기하는 해설자의 설명에서 있듯이 판소리의 수련을 위해서는 수십 년의 세월이 소요된다. 자신의 삶을 바치는 것이다. 이러한 소리 삶이 소리 앞에서 구차한 설명하지 않는 자세를 만들었으리라.

공연은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완창 발표회에 비하면 길다고 없지만 일반적인 음악공연에 비하면 짧지 않은 공연시간이다. 대개의 경우 정도 공연시간이면 후반부에는 집중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판소리 공연은 후반부로 갈수록 공연의 맛이 깊어진다. 다소 힘들기는 하지만 지루해지지는 않는다. 묘한 일이다. 설명하기 힘든 깊이와 느낌이 있다. 

판소리는 한국적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판소리 공연을 보면서한국인스러움 생각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거라고 본다. 한국적인 , 한국인스러운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들을 돌아보고, 우리가 사는 곳을 돌아보게 되는 , 이것이 오늘도 우리가 판소리를 좋아하는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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