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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 | 칼럼·시평
[서평]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김용규 지음
관리자(2011-02-14 11:20:30)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김용규 지음 


 “철학자도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구나” - 김의수 전북대학교 교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김용규는 사람들에게“철학자도 이렇게글을 잘 쓸 수 있구나”하고 새삼 놀라게 하는 저술가다. 그는박식하고, 자신이 읽은 많은 책들을 풍부하게 소개하며 자신의논리를 전개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글을 맛깔나게 쓸 줄 아는사람이다. 그의 저술 영역도 폭이 아주 넓어서 문학, 미술, 영화를 소재로 삼기도 하고, 심지어 소설을 쓰기도 한다. 지난해말에 나온 그의 책『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은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에 가장 두터운 책이며, 무려 863쪽이나 되는 방대한분량이다. 


이 책은 그의 전공영역인 신학과 철학의 내용을 담고 있고 분량도 충분히 많으므로 그가 자신의 지적 역량을 한껏 발휘한 책인 셈이다. 그동안 그의 책들을 읽으며 호감을 가진 독자 중에는, 그가 해설하는 내용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철학과 신학을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에게 이 책은필요한 호기심을 상당부분 채워줄 만한 책이다. 서양의 신은 히브리 전통과 그리스 전통의 결합 김용규가 꼬박 3년간 집필했다는 이번 저술은 성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그림‘천지창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거기에 그려진 신의 모습은 백발과 흰 수염을 달고 있다. 그런데 이 백발 노인은히브리의 신 이미지가 아니며, 그리스 신 제우스라는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은 히브리의 신과 그리스의 신 그리고 로마인들의 신을 아무런거리낌 없이 혼용했다. 우리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이미지를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오랜 동안 머릿속에 각인시켜 온 것이다. 이렇게 미술을 매개로 시작한 김용규의신론은 기독교 역사와 서양철학의 역사를 종횡무진 가로 지르며 스펙터클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김용규는 고대철학과 중세철학을 상당히 깊이 소개한다. 플라톤과 신플라톤 학파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철학자요 기독교 사상가들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안셀무스의 사상들을 폭넓게 소개한다. 이들철학자와 신학자들에 대해 50 차례 이상 언급한다. 그리고 합리론과 경험론, 칸트의 선험철학으로 발전한 근세철학과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철학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자세히 소개한다. 


그는 루터와 칼빈 등 종교 개혁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문학가 단테와 진화론자 다윈도 수십 차례 언급한다.신을 다루는 그는 어떤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쓰기시작했을까? 그는 서양문명에 대한 헛다리짚기를 수정해주려 한다고 말한다. 엉뚱한 정보에 따라서 서양을잘못 이해하고, 서양을 엉터리로 이해하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서문에서 수도꼭지 유머로 이책의 목표를 제시한다. 


물이 귀한 나라 사람이 서구에와서 수돗물을 보고는 수도꼭지를 여러 개 사가지고 돌아가 벽에다 꽂아놓고 틀었다는 것이다. 저능아 유머시리즈에나 나올 법한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서양문명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대부분 이와 같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에 대한 이해가 그렇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는 우리의 지적 수준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아닐까?그는 방대한 기독교사 강의를 시작하고, 고대철학 및중세철학 강의를 진행한다. 


그는 장구한 기독교 역사에서 형성된 신의 본 모습을 추구한다.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많은 자료들, 창조론(지적설계론) 대 진화론 논쟁들,기독교의 배타성 문제 등 수 많은 쟁점들을 다룬다. 그는 철학과 신학의 이론들을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하고,전거도 충분히 제시한다. 또한 어려워도 편하게 따라가게 하는 어투(문어체“~이다”대신 구어체“~이지요”)를사용하며, 중간 중간에 독자를 대신하는 질문을 스스로 삽입함으로써 지적사유의 긴장을 잠시 풀어준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그 다음 논의를 따라 가 보고 싶도록 유도한다.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김용규의 책을 읽고 싶은 책으로,읽으면 유익한 책으로 평가하게 한다.


김용규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신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그는 한마디로 히브리 전통과 그리스 전통이 상호 침윤된방식으로 종합된 존재가 서양의 신이고, 그렇게 균형 잡힌신 존재를 매개로 서양 문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세이후 서양문명은 신을 버리고 인간을 추구해왔고, 이제는모든 근대적 담론마저 거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처럼 포스트모던 시대가 거대담론을 배제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거대담론만 강조하며 미시담론을 놓치는 입장에도 반대한다. 그는 신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서양문명을 바로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그래야 서양문명이 가져온 문제들, 즉 가치의 몰락, 의미의 상실, 물질주의, 냉소주의, 허무주의, 문명의 충돌 등의 해법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그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들을 묶어서 보여준다. 


그것도 대단히 정교하고복합적인 뜨개질 솜씨로 하나의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한국 기독교가 엉터리인 이유 그런데 김용규는 한국 기독교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는가?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그가 그 방대한 책에서 정말 우렁찬 소리로 한국의 교회와 교인들에게 외치고 있고, 호통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신비주의 배타주의 대형교회주의 폭력주의 이기주의 천민자본주의로 얼룩진 한국의 기독교는 서양문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엉터리 신을 믿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왜 직설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지 않을까(그는 서양 역사에서도 신과 종교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태도 때문에 수많은 전쟁과 파괴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그런 말은 결론 부분에서 간단히 몇 마디로 정리하고 넘어간다)? 그는 풍부한 인문학 이론 영역의 작업을 자신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주요 쟁점에 대한 보다 선명한 논쟁을 기대한 독자들은 그의 책이 지루할수 있고, 불필요하게 방대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용규는 철학자로서 신학자로서 그리고 인문학의 여러영역의 전문가로서 글을 쓴다. 그는 과연 대중들이 그냥 믿고 따라도 좋을 만큼 자신이 다루는 내용들에 대해 전문적인가? 아마도 조금은 검증이 필요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김용규는 자신이 쓴 여러 책에서 하이데거의 이론을 소개한다. 대중들은 하이데거가 20세기 대표 철학자 중 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나치와 관련되었다는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도 소수이다. 그런데 김용규는 하이데거의 이론들을 긍정적으로 소개할 뿐 그가 보인 정치적한계는 소개하지 않는다. 시인 서정주가 친일 행위와 전두환 찬양 시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와 그의 시는 우리에게 너무도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김용규의 하이데거 소개에는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저자는 그런 사실을 상식이라고 전제하고 생략했을지 모르나 비전문가들인 독자들에게는 그런 사실을먼저 친절하게 설명해 줘야 한다. 


친절한 설명은 김용규 글쓰기의 장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인문학의 소중함이 강조되는 시절에 김용규의 글을 읽으면 교양이 풍부해지는 느낌이 든다. 문학과 예술과 철학이풍성하게 꽃 피워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정원을 산책하는기분이다. 이번에는 다른 책들에 비해 성경 구절과 신학이론들이 아주 많이 들어가 있는데, 주제가 신이므로 당연한일이다. 혹 기독교 관련 이야기와 성경 내용 인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과거 책에 비해 호감이 떨어질 수 있겠지만,그 반대인 사람들은 어쩌면 다른 책들보다 더 풍요롭다고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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