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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 | 칼럼·시평
[문화칼럼] 십오야 둥근 달이 떼구름 속에가 들것구나
관리자(2011-03-04 18:27:24)

십오야 둥근 달이 떼구름 속에가 들것구나 - 유영대 고려대 교수·국립창극단 예술감독 


 2005년 5월, 광한루에서 펼쳐진 춘향국악대전에서 장원을 뽑는 결승무대는 아연 긴장으로 휩싸였다.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검은 구름이 다가오면서 해를 가렸기 때문이다. 유수정은 전날 예선에서 1등으로 올라왔다. 유수정이선택한 대목은‘십장가’였다. 춘향에게 가해진 가장 절망적인 육체적 고통을 마주하는 실감나는 장면이면서, 그래서역설적으로 춘향이를 가장 강한 인고의 여인으로 만들어놓는 대목이다. 유수정이 부르는‘십장가’는 만정 김소희 명창이 다듬어 완성한 것이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일개형장 치옵시니‘일’자로 아뢰리다. 일편단심먹은 마음 일시일각에 변하리까? 가망없고 무가내오.”둘째 낱을 붙여노니, “‘이’자로 아뢰리다. 이부불경 이내 심사 이도령만 생각허니 이제 박살 내치셔도 가망없고 안 되지요.”셋째 낱을 딱, 때려 노니,“삼치형문 치옵신다 삼생가약 변하리까.”넷째 낱을붙여노니, “사대부 사또님은 사기사를 모르시오? 사지를 찢어서 사대문에 걸더라도 가망없고 안 되지요.”다섯째를딱치니,“ 오장썩어피가된들오륜으로 생긴 인생, 오상을 생각허면 오매불망 우리 낭군잊을 가망이 전혀 없소.”여섯째를 붙여노니, “육국달랜 소진 장의, 소녀를 못 달래오.”일곱째를 딱, 붙여노니, “칠척검 드는 칼로 어서 목을 베어주오. 형장으로 칠 것 있소. 칠 때마다 동강 내오.”여덟째 낱을 붙여노니, “팔도감사 수령님네 치민하러 보내셨지 위력공사 웬일이오.”아홉째 낱을 딱 치니,“ 구곡간장 흐르난 눈물, 구년지수가 되오리다.”열째 낱을붙여노니, “십생구사 하올 망정 십분인들 변하리까.가망없고 무가내오.”열다섯을 딱, 치니 십오야 둥근달이 떼구름 속에가 들것구나.이‘십장가’는 춘향이 한 대를 맞을 때 마다 그 숫자에 맞춰 자신의 굳은 결심을 되뇌는 절망과 대결의 노래다. 


한 대를 더해갈 때마다 춘향의 굳은 의지도 더욱 돈독해진다. 모진 고문에도 춘향의 마음은 더욱 굳게 자신과의 다짐을 한다. 그래서 춘향의 주체적 입장이 아주 강렬하게 드러난다.이 노래는 진양조로 짜여서 5박과 6박은 각을 치는데, 그“딱, 딱”하면서 각치는 소리가 춘향 태장 치는 소리와 겹쳐서그 고통이 듣는 이에게 전율적으로 전가된다.첫 번째 매를 맞았을 때 춘향은“일개형장 맞았으니 일자로 아뢰리다. 일편단심 먹은 마음 일시일각에 변하리까?”라고 노래한다. 매 한 대를 맞은 것은 일편단심을 생각나게 할뿐이라는 것이다. 모두‘일’이라는 숫자로 자신에게 부과된부당한 억압에 항거하고 있다. 두 번째 매를 맞았을 때는“이부불경 이내 심사 이도령만 생각”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겠노라면서‘이’자로 대꾸하지만, ‘이내 심사’와‘이도령’에 들어있는‘이’는 숫자 2와는 무관한말놀음이다.네 번째 곤장이 떨어지자 춘향은 다음과 같이 절규한다.“사대부 사또님은 사기사를 모르시오? 사지를 찢어서 사대문에 걸더라도 가망 없고 안 되지요.”‘사지’와‘사대문’은숫자 4와 관련이 있지만‘사대부’와‘사또’, 그리고‘사기’는 모두 숫자 4와 무관하다. 이 경지에 서면 변학도에 대한조롱과 함께 사지가 찢기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은 지키겠노라는 춘향의 결기가 느껴진다.‘십장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매를 맞아가는 숫자를 가지고춘향이의 대응과 마음의 행로를 그럴법하게 그려내는 노래다. 그런데 노래의 마지막 부분, “열다섯을 딱, 치니 십오야둥근 달이 떼구름 속에가 들것구나.”에서 갑자기 노래의 정조(情調)가 바뀌게 된다. 


열네 대를 맞는 동안 춘향의 목소리로 굳은 마음을 노래하다가, 열다섯 대를 맞으면서‘십오야밝은 달이 떼구름 속으로’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춘향의 직접적 목소리로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응하던‘십장가’의 어조가 변화한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가장 높은 목소리로 질러내면서 그 정황을 처절하게 절규한다. 대보름 휘영청 밝은 달마저, 춘향이 매 맞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떼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노래한다. 춘향의 매 맞는 자리는 갑자기 어두워지고, 그 차마 볼 수 없는 장면을 이렇게 달마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동양화 한 폭으로그려내고 있다.유수정이‘십장가’를 부르는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그리고 열다섯 대를 맞을 무렵에는 거의 장대비로 쏟아져 내렸다. 북반주를 맡은 김청만 선생은 미동도 않고 그 비를 맞아가며 비에 젖은 북을 쳐서 춘향의 심정을 관객에게 이입시켰다. 이 장대비와 애절한‘십장가’대목이 썩 잘 어울렸고 청중과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유수정의 목 상태는 썩 좋아서 지르면 지를수록 더 깊고힘 있는 소리가 되었다. 비 때문에 속눈썹마저 떨어져 나갔으나 유수정의 소리는 먹구름과 장대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장을 울렸다.이날 심사위원장인 송순섭 명창은“어려운 십장가를 잘 소화해냈다. 특히 창극단에서 활동해서 형용동작 가운데 발림부분이 절묘했다. 장단음의 구별이 뚜렷할 뿐 아니라 장대비가 오는 중에도 가사전달이 매우 훌륭했다”고 크게 칭찬했다. 이날 필자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이 대회에서는처음으로 심사위원 전원이 99점 만점으로 장원으로 뽑아,‘십장가’의 형상화를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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