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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 | 칼럼·시평 [문화저널]
저널여정 부안편 1
백제의 한이 서린 개암사와 주류산성
김두경 서예가(2003-09-08 11:08:15)

한반도 형상을 호랑이라 할 때 그 단전(丹田) 부근에 은근히 드러난 곳이 부안군이다. 고려 이후 굵직한 사건 하나 없는 무풍지대로 철없는 세상 따라 변산 해수욕장과 격포 채석강으로 유명해졌을 뿐 이 고장 사람조차도 백제의 혼이 목마르고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없다.
지금의 부안(扶安)이라는 이름이 정해진 것은 조선 태종 14년. 백제 때 개화, 흔량매현으로 불리던 부령현과 보안현이 합하여 된 이름이다.
부안을 안고 있는 변산 일대는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지였다. 아직까지 주류성(周留成)과 백강(白江)등 부흥운동의 근거지를 둘러싼 여러 주장이 맞서 있으나 여러 역사적 기록과 주변 지명을 살펴볼 때 주류성=위큼산성, 백강=동진강이라는 학설이 타당성 있게 주장되고 있다.
개암사(開岩寺)는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다. 부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상서·줄포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30분쯤 가다 상서면 소재지를 지나 감교리 봉은부락 입구에서 내린다. 마을 안쪽으로 거슬러 올라 개암지라는 저수지를 지나면 묘암동(妙岩洞) 계곡과, 산자락을 돌아가면 개암동 계곡과 만나는데 이 곳이 개암사 들목이다.
절에 보관되어 있는 개암지(開岩寺)에 따르면 마한 효왕(孝王)28년에 변한의 문왕(文王)이 진한·마한의 난을 피하여 우(禹)와 진(陳)두 장수를 보내 성을 쌓게 하고 좌우계곡에 궁궐을 짓게 하여 동쪽을 묘암, 서쪽을 개암이라 하였으니 개암사는 이때의 왕궁터라 전해지며 지금도 그 흔적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암사의 풍치는 봄의 이팝나무와 가을의 단풍고목이 빚어낸다. 발등과 머리위에 세상 부러울 것 없을 만큼 수북이 이팝을 이고 서 있는 장관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단풍의 멋을 자생 작설차의 풍미와 어울려 즐기는 맛은 일품이다.
대웅전인 황금전(黃金殿)은 고려시대 다포작(多包作) 건물로 추녀 끝과 들보, 공포( 包)살미에 크고 작은 용봉(龍鳳)이 정교하게 조각된 아름다움이 있으니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다.
고개를 들면 지붕너머로 우뚝 솟은 위큼바위가 눈에 찬다. 위큼은 이사금 임금의 뜻으로 지금은 우금, 울금바위로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바위를 돌아 오르면 삼신굴과 베틀굴을 보게 되고 동북쪽 능선으로 주류성의 일부가 보이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도롱이산성과 백강으로 추정되는 동진강 등 내변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백제 천년의 감회가 새롭게 차오른다
교통편: 상서·줄포행 시내버스가 하루 22회 있고 택시로는 개암사 입구까지 5천원을 받는다. 개암사는 여느 관광지처럼 번잡스럽지 않아 가족단위 소풍으로는 안성마춤이다. 맑음 약수와 잘 꾸며진 풀밭에서 한껏 산사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주지스님께 작설차 한 잔을 청해도 싫은 표정은 짓지 않는다.
김 두 경
(부안읍 중하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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