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0.3 | 칼럼·시평 [저널이 본다]
갑오농민전쟁 백주년을 준비하자
이종민 주간(2003-09-08 11:11:00)

지난 2월 8일 이 지역 학술운동단체인 호남사회연구회의 동계수련회에서는 "갑오농민전쟁 백주년기념사업 추진의 의의와 방향"이라는 긴 제목의 토론이 있었다. 이는 작년 6월 우리문화저널의 문화칼럼을 통해 원광대학교의 신순철교수가 '갑오농민전쟁 100주년을 준비하자'고 제안한 이후 이 지역에서 있는 최초의 구체적 반응이다.
물론 이러한 제안이 이루어지던 시기를 전후하여 여러 가지 사적인 의견교환은 있었다. 특히 제7회 백제기행에서는 이 지역 출신의 연극연출가이며 소리꾼인 임진택씨, 소설가인 정도상씨, 화가인 임옥상교수 등을 중심으로 포괄적이지는 못하지만 부분부분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녹두장군'이라는 창작판소리를 한다면 내가 그 병풍을 맡아 그려보겠소"등 (이것이 인연이 되어 임진택씨는 이번 수련회의 토론 이후에 창작판소리 "똥바다"를 공연했고 임교수는 그 무대의 걸개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적인 말의 주고받음에 지나지 않았으며 체계적이지도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념사업추진을 위한 포괄적인 안이 제시되고 기념사업회 구성을 위한 구체적 제안이 이루어진 것은 반가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 이 지역 언론이 보여준 유별남 관심도 바로 이러한 반가운 마음의 표시였으리라! 조그만 연구단체의 비좁은 여관방에서의 수련회에 신문사 기자들은 물론 KBS와 MBC의 비디오카메라까지 찾아와 주최 측을 당황케하고 토론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을 불편케 한 것은 그동안 언론이 보여 왔던 선정적 상업주의에 비추어볼 때 전혀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물론 이 자리에서도 이들이 보여준 태도에는 마뜩찮은 면이 없지 않았다. 무언가 거창한 것을 기대했던 그들에게 있어 좁다란 여관방에서의 웅크린 토론회가 우선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무엇인가 깜짝 놀랄 기사거리를 찾아온 그들에게 기념사업의 구체적 내용이 아닌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기 위한 예비모임의 소박한 설왕설래들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호텔의 커다란 방에서 행해지는 잘 짜여진, 그래서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기에 좋은, 그러나 실속은 별로 없는(?) 교수님들의 세미나에 익숙해 있는 그들에게 있어 '학생들 수련회 규모'의 행사에 자신감이 없는 met한 유보적 논의들이 도대체 미덥지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더 유념했어야 했을 점은 , 많은 연구비 등의 지원을 받는 기존의 '합법적'연구단체들이 아니라 물적 재원이나 인적 자원이 빈약한 이러한 학술단체에서 왜 이처럼 버거운 일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는가하는 점일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언론 스스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태도야말로 이 지역의 언론인들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예의였을 것이다.)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그것이'대학생 써클 수련회의 수준'이어서 카메라 기자들의 노고에 값하지 못했건, 구체적인 논의의 진척이 없어 볼펜만을 굴리던 기자들을 실망시킴은 물론 주최 측까지도 안타깝게 했건 간에, 갑오농민전쟁의 구체적 현장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기념사업 추진의 제안이 포괄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반가운 일이다. 그것이 광주항쟁의 근본정신은 아랑곳 하지 않고 몇 천만 원의 보상만을 운위하는 시어미의 죽음을 기다리던 며느리의 비단명주 수의의 생색이 아니어 기쁘다. 일제의 관동군 출신의 대통령이 주도하는 광복절 기념행사나 임수경양과 문익환목사를 감옥에 가둔 채 반통일의 집단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허울뿐인 북방정책처럼 그 정신은 사라져 없어지고 형식만 남아있는 그러한 유명무실의 허세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기꺼운 것이다. 어떤 특정 종파의 포교나 홍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부흥회와 같은 행사가 아닐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새롭기도 하다.
더구나 갑오년 농민군의 '민중 민족적 요구'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기념사업의 의의는 더욱 값지다 하겠다. 부의 편중으로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민중의 해방이 더욱 요원해지고 있는 듯한 상황에서, 제국주의의 신식민주의적 침탈이 날로 교묘해지고 착잡해져 민족해방은 물론 민족 통일의 전망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미국의 새로운 한반도 지배전략에 의한 보수, 아니 반동대연합과 더불어 민민운동 세력에 대한 대대적 탄압이 예견되는, 실로 "참다 참다 일어섰다'는 갑오년 질곡의 역사가 아직도 되풀이 되고 있는 이 땅에서, 이러한 사업의 추진이 갖는 의미는 결코 하찮은 것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더욱더 집요하게 펼쳐지고 있는 지배집단의 현상유지 음모로 지리멸렬 역사 회의주의에 침잠해버릴 수도 있는 민민변혁운동의 주체역량을 결집하는 계기를 이러한 작업이 제공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현상의 개량적 변화에 안주하려는 우리들의 소시민적 편의주의를 극복하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갑오년 농민군의 염원인 민중해방과 민족해방의 지상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자꾸만 느슨해지고 있는 우리들 의지를 다시금 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안은 제안으로의 의미만을 지닌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실현에 있다. 이제 우리 모두 그것의 현실화를 위해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선 갑오농민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며 농민군의 염원을 피부로 느낄 수도 있어야 한다. 기념사업은 이러한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요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치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 사업 추진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다 돈의 논리에 휩싸여 버릴 수도 있고 행사를 위한 행사 '치루어내기'에 함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칫 지배세력의 유화적 선심에 휘말려 버릴 수도 있다. 개량화의 위험이 도처에 산재해있는 것이다. 민중의 이름으로 민중이 주체가 되어 이 기념행사를 마련하는 것만이, 그리하여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의 튼실한 기반을 조성하는 것만이 무명으로 죽어가 구만리 먼 하늘을 떠돌고 있는 농민군의 넋을 위무하며 그들의 한을 달래는 일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기념사업회가 구성될 것이다. 좀더 적극적인 이는 이 사업회의 구성원이 되어 준비작업을 주관하게 될 것이고 다른 이들은 뒤에서 후원을 해 줄 것이다. 주관자이든 후원자이든 모두 얼마나 많은 정열과 의지로 이 일에 참여하느냐, 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첨예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이 사업에 간여하느냐가 그 성공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다시 한번 이 사업에 많은 참여와 성원이 있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언론에 호소한다. 뒤에서 사업의 성과들만을 챙기려 하지마라. 갑오농민전쟁의 성격과 역사적 의미들을 학술적으로 규명하는 심포지움과 이를 주제로 한 각종 문화행사들이 적어도 일주일 이상 펼쳐질 대규모의 이번 행사를 치루어내기 위해 언론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아니 도움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추스려주지 않고는 행사를 기회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갑오농민전쟁을 주체로 한 문학작품을 공모하고 이를 토대로 한 노래나 판소리 무용 그림 등의 창작을 의뢰 혹은 공모하는데 있어 언론의 홍보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행사를 어떻게 자체프로그램의 제작에 활용할 것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그것이 의미 있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가 선행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취약한 이 지역의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지금부터 준비를 한다해도 결코 느긋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조급해 하거나 초조해 할 필요는 없다. 소외의 이 땅이 항상 변혁의 터전이었음을 우리의 역사가 증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발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이를 위해 헌신하려는 강인한 의지가 이 땅을 지키고 가꾸어온 밑거름이었음을 상기하며 다시 한번 호소한다. "갑오농민전쟁 백주년을 준비하자! 우리 모두의 힘으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