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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3 | 칼럼·시평 [문화시평]
휴머니즘에 의한 투철한 현실인식조문호의 <전농동 588번지>
권진희 사진평론가(2003-09-08 11:41:48)

사진의 사회적인 기능으로 그 위력을 발휘한 것은 19세기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직물공장의 소년근로자의 가혹한 근로조건을 사진으로 고발한 쟈콥의 다큐멘터리사진이나 라이프지 등에 발표된 보도사진 들이었다.
사건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이러한 다큐멘터리사진들은 인간의 양심을 움직이고 사회와 세계의 여론을 움직이는데 크게 작용하였다. 예컨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불바다가 된 교회를 배경으로 불붙은 옷을 벗어 던지고 울부짖으며 알몸으로 달려오는 킴 폭양(14)의 사진들은 세계의 반전여론에 불심지를 당겨 마침내 베트남전의 종식과 미국의 패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막강했던 사진의 위력이 TV가 동장하면서 점차 퇴조하여 사진의 서야할 입지가 흔들리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모색이 문제로 제기되면서 새로운 시도가 절실히 요청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趙文浩가 보여준 사진세계는 탐미적인 영상미에 함몰되어 있는 사진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서울 (프랑스 문화원 2.1~10) 전시에서 치열한 매스 콤의 집중보도에 의하여 사회학자 정치인까지 많은 관람객을 동원 화제를 뿌리고 전주전시(얼화랑 3.1~14)를 거쳐 지방순회전을 가진 조문호의 〈전농동 588번지〉는TV의 속보성에 맞서 사진은 포토 에세이라는 독자적인 표현방법으로 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의의 있는 사진전이었다.〈전농동 588번지〉는 부조리한 사회적인 여건 속에서 삶을 위해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버려야 하는 극한적인 매춘의 세계 곧, 이 땅과 이 시대의 가장 아프고 어두운 치부를 사진으로 찍어 강력한 톤으로 발언하여 사회와 우리의 양심에 호소하고 있다.
미국의 할렘가를 사진 찍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가 카메라를 철저히 적대시하고 거부하는 창녀촌에 시각을 돌리고 접근해간 동기는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 특히, 이 나라의 딸들이며 어쩌면 우리들의 누이들인 그녀들의 참상을 스쳐버릴 수 없었던 연민의 정에 바탕을 두고 그녀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새로운 인식을 환기시켜 그녀들이 인간답게 살수 있는 길을 열어보고자 하는 뜨거운 염원에서였다.
그는 5백만의 근로여성 중 1백 30만이 유흥업소에서 그 중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웃음과 젊음을 담보로 세상의 밑바닥에서 살아왔고 창녀 윤락녀 등으로 세인의 냉대와 멸시를 받아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참상에 시각을 돌리고 작가로서 양심과 용기를 포토캠페인을 통해 그들을 대변하여 우리 시대의 양심에 호소하고 새로운 언식을 촉구하였다. 외부세계를 철저히 경계하는 창녀촌에 접근하기 위해 카메라 없이 그녀들과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대화를 트고 그것도 미흡하여 詩人 친구와 같이 셋방을 얻어 지내면서 그녀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같이 나누며 그의 뜻을 이해시키면서부터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이처럼 그의 줄기찬 집념과 정열을 뜨거웠으며 그만큼 예술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는 사진가이며, 그늘진 사회문제를 과감하게 들고 나온 작가정신이 투철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이러한 현실인식은 이미 1988년에 보여준 〈87민주화 항쟁〉다큐멘터리 사진전과 더불어 이번 창녀촌의처절한 모습을 기록 고발한 〈전농동588번지〉사진전 그리고, 앞으로 추구하게 될 〈九老工團의 女工〉의 삶 등 일련의 사진작업과 이에 따르는 그에 대한 토탈 이미지는 문제작가로서 부각되었다. 따라서 사진가로서 그의 위상은 사진적인 기량을 갖춘 사진가로 또는 탐미적인 음풍농월조의 도락적인 타성에 안주하고 있는 한국사진계에 현실인식과 역사의식이 가장 투철한 작가 곧, 문제작가로 평가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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