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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3 | 칼럼·시평 [서평]
두만강
조명원 불문학, 전북대 강사(2003-09-08 11:42:44)

두만강은 일제말기 항일무장투쟁의 근거지였던 만주 ·북간도와 한반도 북쪽지방을 경계하는 선이며, 지주의 착취와 일재의 억압에 못 이겨 굶주린 농민들이 땅을 찾아 식솔을 이끌고 넘던 강이다. 소설 『두만강』은 바로 이곳을 무대로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펼쳐지는 송월동 농민들의 항일투쟁사이다. 작가 이기영은 충청남도(송월동은 충청도에 소재한 가상의 마을이다)에서 태어나 카프활동을 하다가 1946년에 월북, 1960년「두만강」으로 인민상을 수상하게 된다. 7년(1954-1960)에 걸쳐 3부작으로 완성한 방대한 역사소설로서, 빵을 갖지 못한 농민들의 땅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들을 착취 ·억압하는 지주 ·자본가·왜놈들을 향한 분노가 각성된 계급의식으로 승화되어 항일무장투쟁으로 폭발하기까지의 박곰손 일가 외 인생역정이 주된 내용이다.
1부는 송월동의 박곰손 일가를 중심으로 대지주 한길주의 소작인들이 겪는 생활난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일제의 강점으로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은 지주와 왜놈들에게 이중의 착취를 당하게 되고 이에 먹고 살기가 막막해진 송월동 사람들은 하나둘씩 고향을 등진다. 땀 흘려 개간해 놓은 땅을 사패지라는 명목으로 한길주에게 빼앗긴 곰손은 의병활동을 하는 최동욱의 권유로 북간도를 향해 떠난다. 국경 근처무산에서 헌병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곰손은 가족들과 그 자리에서 눌러앉고 그의 아들 씨동이 혼자 먼저 두만강을 넘는다.
2부는 무산에서 역시 땅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못하는 곰손 일가와 화전민들의 생활상과 북간도에서의 써동이의 활약이 주 내용이다. 곰손은 고향에서 했던 것처럼 남들의 불신과 야유 속에서 땅을 개간하는 데 전력하는 한편으로 의병과 연계를 맺어 비밀공작을 펴오다가 투옥되어 끝내 옥사하고 만다. 써동이도 명동촌 학교에 다니면서 반일투쟁에 참가하여 투옥되었다가 탈옥하는 둥 맹활약을 하다가 3 ·1독립운동 시기에 송월동으로 잠입, 또 한 차례의 성과를 올리고 무산으로 가족을 찾아가지만 때마침 아버지의 비보를 접하고 남은 식구들과 함께 다시두만강을 넘는다.
3부는 명동촌의 써동이 가족 이야기와 남아있는 송월동 사람들의 고단한 삶 속에서 계급의식이 싹트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씨동은 의병활동이유명무실해지자 귀가 오랫동안 그를 연모해온 옥이와 결혼하여 집안 농사일에 잠시 전념하다가 이내 또 다른 일을 찾아 떠났으나 동지의 배신으로 곧바로 투옥된다. 감옥에서 새로운 사상을 접한 그는 탈옥하여 광산노동자로 들어가 함남 신흥탄광 폭동의 주역이 된다. 한편 명동촌 학교가 일제의 손에 의해 불태워지고 난 후 서울로 공부하러 간 씨동의 동생 분이는 비슷한 처지의 고학생들을 위혜 마련된 임간학교에서 새 세상에 눈을 뜨고 송월동의제사공장에 위장 취업한다. 제2의 한길주, 김 진해에게 착취당하던 송월동농민들은 군중 속으로 들어온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각성되어 힘을 합쳐 지주와 맞서 싸우게 되고 그것은 이윽고 고추폭동으로 이어진다. 노동자와 농민은 같은 무산자로서 자본가와 일제에 맞서 공동의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계급의식을 지니게 된 그들은 때마침 한 청년 혁명가(김일성)의 항일유격대 건설 소식에 고무되어 본격적인 무장투쟁의 불길을 당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진수라 할만한 전개요, 인물의 전형화 역시 뛰어나다. 순박하고 무지하나 올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박곰손의 깨인 의식은 자연스럽게 의병활동에 동조하게 되고, 그의 아들 씨동이 의병의 한계를 극복하고 반제 ·반봉건 투쟁으로 뛰어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로 여겨진다.
또한 상포수가 한때 의병활동을 하다가 가족과 합류하면서 일시적으로 사상적 퇴조를 보이나 딸의 비참한 죽음에 격분, 무장투쟁에 앞장선다는 것도 생활, 즉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상부구조론의 실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한길주 첩의 아들 한창복의 변절과는 대조적인 한경식(한길주의 친아들)의 며느리에게서 나타나는 의식변화를 따라가 보면 자신의 존재(또는 출신계급)를 초월하여 참된 계급의식을 갖게 되는 가능성이 열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정된 민족주의께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송월동 농민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3 ·1독립운동의 책임을 떠맡고 처형되는 양반 출신 이진정의의미는 결코 적지 않으며 새로운 세대(씨동이 분이 등)의 새로운 사상(사회주의)에 의한 새로운 역할(혁명)의 밑거름이다.
이런 인물들이 엮어내는 삶의 얘기는 고난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애틋하고 정겹다. 이는 작가의 민중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들이 낙천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것은 미래의 전망에 힘입은 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세상사가 작가의 세계관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면서 군데군데 인위적인 구성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한계를 엿볼 수 있는 것도 그런 부분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소설『두만강』을 통해 우리 역사에서 주목되지 못한 항일무장투쟁사의 의의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것도 큰 수확이려니와 잊혀진 아름다운 우리말을 다시 찾는 기쁨은 비할 수 없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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