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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4 | 칼럼·시평 [문화저널]
작고시인 분단된 조국의 비극, 온몸으로 절규하는 시인 박봉우
편집실(2003-09-08 17:13:20)

분단된 조국의 비극을 온몸으로 절규하던 시인 박봉우.
지난 3월 2일 그의 죽음이 전해졌을 때 많은 문우와 지인들은 급작스런 비보 앞에서도 마치 예고됐던 상황처럼 그렇게 담담한 슬픔으로 그의 죽음을 껴안아야 했다. 어두웠던 그의 말년의 삶이 시인 박봉우에 대한 희망을 앗아간 때문인가. 그의 기인적 생활에 지쳐버린지 오래인 많은 문우들은 그러나 그의 죽음 앞에서 이 시대의 비극을 가슴깊이 새겨야 했다.
전쟁의 상혼과 폐허속의 50년대부터 민주화의 열기가 분출됐던 80년대까지 분단민족의 참담한 현실에 스스로를 옥죄며 살아왔던, 울분과 격정으로 가득 찬 가슴의 더운피를 토해내며 어두운 말년의 생활에서도 통일된 조국을 환한 얼굴로 그리워하는 시편들로 굿굿히 살아있는 정신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왔던 박시인은 고운 봄날, 쓸쓸하게 갔다.
「내 몸이 갈라질 바에야 내 마음이 갈라질 바에야 내 정신 흔들릴 바에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며 「갈라진 황토 흙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는다는 말인가」고 절규하던 시인은「이 커다란 아픔을 견디는 돋아난 풀잎들, 쏟아지는 양지」를 꿈꾸며 고난에 찬 생의 문을 닫았다.
34년 광주에서 출생, 광주고와 전남대 정치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휴전선」이 당선돼 등단한 이후,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시로 승화시키는 창작활동에 열정적으로 매달려 왔다. 62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그는 분단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 「휴전선」으로 우리문단에 곧게 섰으며 이어지는 수많은 작품들에 혁명과 사랑 자유 통일에의 그리움과 의지를 응집시켜 놓았다.
이 시대에 대한 울분과 격정을 살이지 못하고 토해내던 그의 좌절은 끝내 〈정신병〉을 얻게 했고, 그로인한 그의 말년은 암울했다.
기인적인 서울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77년 4월 20일 전주시립도서관에 상용잡급으로 일자리를 얻게 된 박시인은 작고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재직해오면서 가장 힘겨운 삶을 지탱해왔다.
쓸쓸함과 술과 슬픔의 생활 한 중간에서서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앓고 방황했으며, 심한 좌절의 시대에 갈등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알콜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했고 포장마차의 장사문으로 나서야했던 아내마저 유방암으로 먼저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퇴원과 재입원을 거듭하며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좌절을 딛고서려는 의지를 딸에 대한 사랑으로 노래했다.
87년 그 뜨겁던 여름에 펴낸 시집「딸의 손을 잡고」에서 박시인은〈1990년〉을 벌써 노래하며 녹슨 철조망을 뛰어넘어 힘찬 내일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음을 치열한 시정신으로 보여주기도 했었다.

모란이 피는 오월
나는 시인은
침묵을 지키련다
역사
그는 이야기 하리라
불타는 가슴
불타는 가슴
오로지
침묵으로
참으리라
내가 다시
無等에 忠壯路에
돌아가 사는 날
오랜 역사 앞에
사랑하는 오직 光州를 사랑하는
시인은 노래하리라

'사랑하는 내 고향 光州를 아직은 노래하지 않으련다'며 절규했던 시인은 여섯 권의 시집과 한권의 산문집을 이 세상에 남기고 56세로 좌절의 시대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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