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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4 | 칼럼·시평 [문화시평]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노래노래를 찾는 사람들 공연을 보고
이해길 전주신흥교회 준목(2003-09-08 17:14:18)

지난 3월17일 문화저널이 주최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공연을 보고서 한 가지 물음을 던져본다. 왜 노 ·찾·사가 공연하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일까? 일반매스컴을 통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은 공연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의식적인 성향이나 수준이 결코 낮은 것이 아니라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소위 '운동권 노래'라고 불리우는 노·찾·사의 노래들이 대중가요라는 주류의 공간 속에서 나름대로의 자리를 확보한 것은 분명 80년대 노래운동의 성과이자 동시에 노래운동이 어떠한 내용과 방향성을 견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모범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어떠한 운동이든 그것이 의식의 보편적 확산과 대중적 실천을 지향한다고 할 때 분명 노 ·찾·사는 이런 점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노·찾·사 성공의 비결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가지고 있는 내용이고, 두 번째는 그 노래를 운동구호가 아닌 노래로 부를 수 있는 노·찾·사의 서정성이라 할 수 있다.
노·찾·사가 부르는 노래는 우선우리의 노래이다. 뭐니 뭐니 해도 노래는 우리의 노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대학이든 교회든 민족이든 우리가 속해 있는 다양한 공동제의 현실적 고뇌를 담고 있어야하고 모순을 극복하고 나아갈 미래의 꿈을 노래해야한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노래들은 대부분 개인주의적인 나의 노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노래들이 개인적 생에 힘을 주고 삶의 고뇌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그 반대로 노래 밑에는 무기력한 니힐리즘이 깔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실존의 공허함과 개인의 사랑체험의 가사들이 매스컴의 상업주의와 맞물리고 여기에 질 낮은 가수들이 삼위일체로 결합하여 많은 노래들은 문화적 퇴폐풍조를 조장해 왔다. 항상 히트하는 노래들은 교묘하게 대중의 말초적 본능과 퇴폐적 정서를 건드렸고 그 뒤에는 어김없이 돈이 관련되어있었다.
이와 같이 퇴폐적인 노래문화의 상황 속에서 노·찾·사의 노래운동은 분명 신선한 도전을 주고 있다. 그들은 노래의 내용에 있어서도 무기력한 개인주의를 넘어서서 우리사회의 집단적모순과 민족적 현실을 솔직하게 노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노래가 공동체성과 역사성을 견지하면서도 결코 패배주의나 퇴폐적 낭만주의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찾·사의 이러한 노래의 성격과 내용들이 결국 80년대 이후 사회전반에 걸친 민주화 과정과 맞물리면서 그에 부응하여 민주적 노래를 갈구해왔던 의식화된 대중들의 정서와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찾·사의 성공을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내용이나 성격에만 한정시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왜냐하면 노·찾·사가 부르는 노래들은 사실 민주화운동의 다양한 현장에서 익히 접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80년대에 들어서 많은 노래운동패들이 있었지만 유독 노·찾·사만이 대중적 수준까지 오르게 된 것은 결코 그들 노래의 공동체성이나 역사성에만 연유하지 않는다.
여기서 노·찾·사의 장인적 기질과 노래의 서정성은 성공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노래는 결코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노래운동팀들은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노래에 담긴 '목적'이나'의도'를 너무 드러내고자 할 때 많은 대중들은 노래의 '내용'에 대해서 공감은 하지만 다가가서 함께 노래를 부를수가 없다. 누가 뭐라해도 노래는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우리의노래'가 되어야 한다. 운동성과 서정성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서 노·찾·사는 성공적인 노래운동을 펴고 있는 것 같다. 혹자는 상업주의 냄새가 난다고 비판을 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비판이 노·찾·사의 대중적 성공을 상쇄시키지는 못한다.
아쉬운 점은 노·찾·사의 전주공연이 우리지역 사람들의 '우리노래'가아니고 세련된 서울사람들로부터 빌려온 노래라는 점이다. 역시 이점에서도 우리는 '우리노래'를 불러야 한다. 서울의 유명한 노래팀을 초청해서 지방 사람들에게 건강한 노래를 보급한다는 큰 뭇에는 전폭적으로 찬성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행사가 사람 모으는 일에 있어서 성공을 목적으로 한 일과성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노·찾·사의 공연은 또다시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노래는 상품이 되어서도 구경거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노래는 우리의 노래를 함께 불러야 한다. 앞으로 우리지역에서도 훌륭한 노래패들이 나와서 건강한 노래를 많이 불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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