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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 | 칼럼·시평 [문화칼럼]
문화융성, 반가우면서도 우려되는 이유
김승환 충북대 교수(2013-07-03 22:31:56)

최근 유진룡 문화부장관은 문화융성(文化隆盛)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은 국민행복이 최종 목표인데 이것을 실행하는 방법이 바로 문화융성이다.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면 왜 행복하지 않은가를 물어야 한다. 문화융성은 정신적 기반과 가치추구로부터 시작하여 국민행복을 이루는 방법이다.’ 유장관의 표현에는 지향가치, 정책기조, 실행원칙 등이 함축되어 있다. 유장관께서 말한 문화융성을 사전적인 개념으로 정의해 보면 첫째, 문화 그 자체를 풍요롭게 하고 문화가치를 높인다는 의미 둘째, 문화융성을 통해서 국가와 민족을 번영되게 하겠다는 방법 셋째, 문화사회(文化社會)와 문화국가(文化國家)의 보편적 가치를 완성한다는 목표 등이 내포되어 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2013년 5월 미국 방문 중로스앤젤리스의 한국교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통해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키고 문화융성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힘을 드리면서 국민행복의 새시대로 나아갈 것’이다. 또한 ‘문화의 가치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지역과 세대, 계층간의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고, 생활 속의 문화, 문화가 있는 복지’를 강조했다.대통령의 이 발언에도 정부의 정책, 전망, 목표, 가치 등이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니까 현정부의 최종 목표는 국민행복이고, 그 방법이 문화융성이며, 그 토대가 창조경제다. 그런데 이것은 문화융성이 국민행복이며,국민이 행복하자면 창조경제가 선행되어야 하고, 문화융성은 창조경제를 전제로 한다는 순환론이다.비슷해 보이지만 유진룡 장관의 발언과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사이에는 약간의 시각차가 있다 장관의 발언은 대통령의 창조경제 우선정책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문화예술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대통령의 발언은 문화가치를 중요시하지만 창조경제를 최우선한다는 뜻이다. 이런 약간의 시각차에도 불구하고 경제부흥, 국민행복과 더불어 문화융성을 3대 국정지표로 설정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고, 특별히 기대해도 무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유진룡 장관이나 용호성 국장 등의 노력에 기대와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문화융성의 표상과 심층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 우려가 든다. 첫째,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명목적 문화예술 강조로 끝나리라는 우려이며 둘째, 문화예술을 경제, 경영, 성장, 발전, 산업으로 보는 인식에 대한 우려이다.앞에서 본 것처럼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정책을 밝혔고, 실행계획을 수립했으며, 확실한 전망을 제시했다.더구나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며 장관의 철학도 분명하고 또 문화부의 정책방향도 확실하다. 그 상징적 지표로 2017년까지 문화예술재정이 정부재정의 2%인 대략8조가 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정부정책의 국정기조에 걸맞는 실행에 대해서는 믿고 신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그리고 문화융성의 성패는 두 번째 우려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도 문화와 예술을 인위적으로 융성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이 가진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속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창조경제를 전제로 하는 문화’와 ‘하부구조를 전제로 하는 상부구조’ 또는 ‘경제적 토대를 조건으로 하는 문화융성’은 위험한 생각이다. 문화가 발전한다는 것도 오류이거니와 경제와 문화를 단일실체로 보는 것도 오류다. 더 큰 오류는 행복이 경제에서 오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대체로 문화행정가들은 시장실패를 보전하는 문화정책을 앞세우지만, 결국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의해서 문화행정을 하게 된다.

문화는 발전하고 후퇴하는 것이 아니고, 문화는 경제와 단일 실체가 아니며, 문화는 다른 어떤 요소에 종속된 변수가 아니다. 그러므로 문화를 경제의 종속실체로 보고 경제번영과 성장발전 이후에 문화융성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조국근대화의 2013년판이, 국민행복을 위해서 문화를 융성하게 하겠다는 것이면 위험할 수도 있다. 문화복지와 문화향수권(文化享受權) 역시 위로부터 시혜적으로 실행 되어서는 곤란하고 국민이 자발적 주체와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이 문화융성의 정책과 목표를 실천하고 실행하는 공간은 지역이 되어야 하고, 그 상징개념은 지역문화(地域文化)가 되어야 한다. 현재 수도권과 지방, 경(京)과 향(鄕)의 이분법이 지나치게 심화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국가정책은 물론이고 정치경제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지방과 지역을 고려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울중심주의나 수도권이라는 말 자체가 차별적 발상이며 서울의 독점과 특권이 국가를 분열시키고 있다. 따라서 서울도 하나의 지방이라는 지방의식을 가져야 하고 평등한 공간민주주의의 개념에서 문화융성이 설계되어야 한다. 문화권리의 민주적 평등이 문화융성의 철학이자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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