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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 | 칼럼·시평 [문화칼럼]
삶과 디자인은 같아야 한다
임옥상 작가(2013-11-05 15:05:46)

“농사가 예술이다”-쌈지농부 천호균
땅을 갈고 씨를 뿌린다. 땀방울 송송, 새싹이 돋는다. 온통 초록 물결, 꽃 피고 열매가 열린다. 수확한다. 함께 나눠 먹는다. 춤추고 노래한다. 다시 해가 바뀐다. 언 땅을 깨고 땅을 간다. 따스한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내려쬐는 햇살, 작물도 사람도 하나다. 낙엽지고 눈보라 날리고 굴뚝에 하얀 연기~
이 아니 예술인가. 이 이상의 퍼포먼스가 있겠는가. 땅을 살리지 못하면 그 무엇도 살 수 없다. 기후변화시대. 에너지 위기. 금융위기. 기후위기. 생명위기. 식량위기시대. 농사를 다시 봐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멈추자 사람이 보였다”-커뮤니티 아티스트 마야자키료
나는 작가로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다.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버린 적은 없다. 그렇게 40여년을 작업해왔다. 그런데 마야자키료의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부끄러웠다. 나는 이 글을 “작품을 포기하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요약했다. 그는 말한다, “난들 작품을 세우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는 작품을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세상을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커뮤니티 아트라는 공공미술(퍼블릭아트)과는 또 다른 영역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공중 없는 공공미술, 지역 주민 없는 커뮤니티 아트가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의 작업은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서울을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 운동이 한창이다. 나는 이 운동의 성패를 무엇보다도 예술가들의 의식의 변화에서 찾는다. 자기 전공을 내세우기 위해 주민들을 이용하려 한다면 오히려 사람들은 흩어진다. 배우고 나누고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겸허하게 만나야 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선 안된다. 사회는 새롭게 공부해야 한다. 사회 구석구석을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탐색하여야 한다. 혼자 할 생각을 버려라. 함께 해야 한다. 나만을 고집하면 안된다.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며 찾아라.
대학이나 기존의 미술계에서 배운 모든 것을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의 유일한 창조물을 만들어라. 너의 개성이 가장 중요하다. 비싸게 팔리는 것이 최고다. 경쟁에서 이겨라. 세계적인 것을 만들어라. 큰물에서 놀아라. 한가지로 승부하라. 너는 너, 혼자다….
이 허깨비 자본주의 강령을 내던져야 한다. 나의 현재의 능력의 총량으로 나누고 봉사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크게 자랐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주 작고 시시한 일부터 시작하라. 지역의 일꾼으로 출발하라. 자기 작품을 버릴 만큼 절실하게!
“예산에서 뒷자리를 0을 하나 빼면 창의성이 시작되고 0 두 개를 빼면 더욱 좋다”-세계의 환경수도 꾸리찌빠 전시장 자이메 레르네르
세상 모두가 돈 타령이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랐건만 돈, 돈, 돈, 정치인도, 공무원도, 경제인도, 예술인도, 대학생도 모두 돈에 죽고 못 산다. 항상 돈이 없단다. 그런데 주위를 보면 넘쳐 나는 게 돈이다. 없던 새 길이 뚫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건물이 솟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휘황찬란한 불야성이다. 모두가 예산 낭비요 과도한 토목공사요 과비용, 과디자인이다.
올바른 디자인은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사회적 자본을 튼실하게 하고 서로 신뢰하고 나누고 봉사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오세훈 식의 디자인은 더럽고 흉한 것은 감추고 숨겨 덮어 버리고 눈요기 거리로 홀려 과장하고 덧칠하는 일종의 화장술이 디자인인 것처럼 디자인을 오도하였다. 사람들은 구경이나 하고 박수나 치는 소비자로서의 디자인을 내세웠다. 그에게 있어 디자이너는 일종의 도구다, 머슴이었다. 수요자를 생각지 않고 공급자 중심의 디자인을 그는 디자인으로 착각했다. 서울 시민을 디자인의 주체로 끌어 올리지 못했다. 예산만 들어부었지 서울 지역 주민을 위한 좋은 디자인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디자인은 삶 자체다. 절약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돕는 사회 그 자체, 그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억지로 지지고 볶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거짓과 위선으로는 좋은 디자인이 될 수 없다. 삶이 진실해야 품위 있고 격조 있는 디자인이 되는 것이다. 돈, 돈 하는 사회에서 참디자인을 찾을 수는 없다. 돈디자인이 넘쳐나는 이유다. 근검을 생활화했던 조선시대의 디자인을 보라. 어디 돈 냄새가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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