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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 | 칼럼·시평 [상식철학]
험한 세월 단편 기록
김의수 전북대 명예교수(2014-06-03 09:46:29)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3주가 지나면서 한없는 슬픔과 답답함을 넘어 울화가 쌓여갔다. 강원도에 갔다. 월정사에 들러 천천히 걸었다. 어둑해질 무렵 진고개를 넘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나무들은 안개구름에 싸여 있다. 바닷가에서 매실주 한 잔 하고 대리운전기사를 불렀다. 관광객이 완전히 끊겨서 생계를 걱정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다른 방송은 보지 않고 JTBC 뉴스9만 본다고 말한다. 일부 노인들은 조선 동아 TV를 보지만 젊은 사람들은 손석희만 믿게 됐단다. 그렇게 강원도 골짜기에도 젊음과 신념이 꿈틀대고 있었다. 

봉하마을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아내는 말했다. “여기 온 사람들은 인상이 다른 것 같아. 다들 순해 보여. 싸움 같은 건 못할 사람들 인상이야.” 정말 그랬다. 노인들을 모시고 온 사람들도 더러 있고,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다수이다. 나는 방문록에 이렇게 썼다 | 언제나 함께 한 삶이었습니다. 벌써 5년이 흘렀네요. 오늘은 직접 이곳으로 찾아왔습니다.

한 학생이 카페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제 사촌동생도 이번에 희생됐습니다. 저는 처음에 국민들의 애도와 관심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죽은 동생을 두 번 죽이는 일 같습니다. 제발 우리 유가족들이 마음을 추스르도록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답글을 올렸다. “그렇게 생각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나 유가족들도 두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 무조건 잊어버리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게 순수한 청소년들이 이렇게 많이 희생당했는데, 우리 시민들과 우리나라가 반성도 없고 개선하는 것도 없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했다. 일개 시민이 이런데,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는 어땠을까? 결국 담화문을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죄했다. 그리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고뇌의 깊이와 진함은 생각의 폭과 마음가짐의 깊이에 비례한다. 결국 그녀의 고뇌 총량은 어느 시민의 1/5도 못 미칠 거다.

위중한 사안이 발생하면 곳곳에서 각자가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당연히 언론은 그 색깔이 분명해졌고, 얄팍한 잇속과 권력 아부 인사의 실상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손석희의 뉴스9이 등대 불을 환히 밝히게 됐고, 반면에 특종 경쟁이나 받아 적기 기사의 폐해도 극에 달했다. KBS와 MBC가 그 추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청와대의 무지막지한 방송통제도 스스로 확인시켰다. 노조는 언론을 살리는 주체로 다시 일어서게 되고 2년 전 중단된 방송3사 연대파업의 과제를 새롭게 밀어올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퇴진 요구가 현실이 되게 했다. 신부님들은 국정원과 군부대 대선 개입에 대해 반성도 개혁도 안 하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말했다. 그랬어도 국정원장을 사퇴시키지 않고 버텼다. 그런데 이제 어쩔 수 없이 단칼에 날려 보냈다. 강한 검사 출신 안대희를 총리로 임명했다. 다만 대 선배 ‘기춘대원군’은 그대로 문지기로 유임시켰다. 국민을 윽박지르되 대통령에게는 복종하라는 의미다. 

이 정권은 여전히 시민들의 인내 범위를 넘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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