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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 | 칼럼·시평 [문화칼럼]
사적 외부공간 부재의 사회
유현준(2016-01-15 09:33:02)

 

 

 

현대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사적인 외부공간"이다. 우리는 단군이래로 가장 "편안한"삶을 살고 있다. 수도꼭지만 틀면 온수가 콸콸 나오고, 밤에도 전깃불로 어둡지 않게 산다. 먼 거리를 갈 때에는 자동차를 이용하여 쉽게 간다. 극장에 가면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TV만 틀어도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안달 난 각종 채널과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도시에 사는 우리는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이성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이 얼마나 즐거운 삶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이 허하다. 필자는 그 이유 중 하나가 우리의 삶에서 점점 더 사적인 외부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적인 외부공간이란 마당, 발코니, 테라스 같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곳을 말한다. 현대 도시인의 삶을 살펴보자. 우리는 멋진 도심 속의 거리를 걸으면서 즐기지만 그런 공간은 항상 공공공간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항상 있고 조용하게 있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없다. 사적인 외부공간이 없다는 것은 나 홀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산지는 일 만년 정도가 된다. 현대와 같은 크기의 대도시에서 생활을 한 시점을 로마시대로 본다면 약 2천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도시화는 산업혁명이후부터 시작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산업화가 된지 채 50년이 되지 않는다. 50년이라는 시간은 채 2세대가 되지 못하는 짧은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유전적 DNA는 아직 도시화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직까지 자연이 필요하다.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등하교길에 혼자서 논두렁길을 걸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발코니마저도 확장되어 실내공간이 된 아파트에 살면서 자연을 개인적으로 접할 기회가 없다.

불과 이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마당은 대표적인 사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비가 내리는 것도 바라보고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는 것도 보았다. 일 년 365일 매일 다른 날씨를 보고 시시각각 바뀌는 햇볕과 달빛을 느끼면서 살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과거 한옥 주택의 마당에 지붕이 씌워져서 거실이 된 구성이다. 마당이 있던 자리가 거실이 되고 우리는 편하게 소파에 안아서 생활을 하지만 대신에 우리는 자연의 변화를 잃었다. 집에 들어가서 거실의 불을 켜면 항상 같은 가구에 항상 같은 벽지가 우리를 맞이한다. 반면 항상 변화하는 마당은 마치 매일 매일 인테리어가 바뀌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마당이 없는 집에 사는 우리는 그런 변화를 TV화면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더 TV를 많이 보고, 더 큰 TV를 사는 것이다. 아마도 벽 전체크기의 TV가 나올 때까지 계속 TV를 키울 것이다.

마당이 있는 작은 집은 더 큰 평수의 아파트보다도 더 크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우리가 공간을 기억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매일 바뀌는 변화의 마당은 각기 다른 공간으로 기억되어서 집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반면 매일 같은 거실은 딱 하나의 기억만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게 된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이다. 자연의 변화를 담을 수 있고, 자연과 우리가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사적인 외부공간은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고 이는 더 큰 집의 느낌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잃은 것은 이 같은 마당 외에도 골목길도 잃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집으로 이동할 때 골목길을 통해서 이동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복도나 엘리베이터로 연결된다. 골목길은 하늘을 보면서 걷는 길이지만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는 고개를 들면 형광등이 보인다. 같은 감성을 줄 리 만무하다. 필자의 어렸을 적 아름다운 기억 하나를 나누고자 한다. 학교를 마치면 항상 버스정류장에서 시장을 관통해서 집으로 갔다. 초등학교 시절 일찍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돌을 축구공 삼아 길에서 차면서 걸어왔다. 그때는 길거리에 주차된 차도 없어서 돌을 차도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 집이 있는 골목에 접어들자 할머니와 일하는 누나가 골목길 대문 앞에 앉아서 건너편 집 대문에 앉은 할머니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잘 드는 그 골목길의 그 모습은 어린 시절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70년대에 우리는 골목길을 거실처럼 사용했다.

얼마 전 베이징 올림픽을 할 때 중국공안의 큰 골칫거리는 사람들이 잠옷을 입고 골목을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매너가 없는 중국인의 모습이겠지만 이러한 풍경은 그들이 골목길을 내 집처럼 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모습이다. 우리 아버지도 우리식구끼리 있을 때는 속옷차림으로 생활을 하셨다. 그 모습이 어린 나이에 그리 멋져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형이 결혼을 하고 집에 오면서부터 옷을 차려 입기 시작하셨다. 왜냐하면 며느리는 식구처럼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옷차림을 만날 수 없는 사이는 그 만큼 편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이 올림픽 이후에 속옷을 입고 골목길을 다니지 않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더 큰 사회적 문제이다. 그들이 더 이상 동네 사람을 식구같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다음 단계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더 커지고 깊어지는 것이 수순이기 때문이다.

축구장, 야구장, 거실처럼 사용되던 다목적 공간인 골목이 이제는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현대 도시인들에게는 거실 같은 골목길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사적인 외부공간인 마당도 없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마당대신 텐트를 들고 캠핑을 가고, 사라진 거실 같은 골목길 대신 더 큰 집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큰 집과 차와 캠핑도구와 등산복을 사기위해서 엄청 열심히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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