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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 | 칼럼·시평 [문화시평]
'과거'에서의 해방 그리고 화해
극단 <까치동>, 『다시 꽃씨 되어』
송 전(2016-05-17 14:34:40)




2002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5년차가 되었던 해로 지자체 선거가 있었던 날.  온 나라가 흥분에 휩싸여있던 2002 세계월드컵 축구 제전이 한국 전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던 축제 분위기의 시간. 16대 대통령 선거를 6개월 앞 둔 시점으로 김대중, 노무현, 이회창, 박근혜 등의 이름들이 신문 톱기사의 제목 속에 들어있던 때. 한국 가요계에 최초의 아이돌 걸 그룹 S․E․S가 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발생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살 사건. 14년 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사건이 일어났던 날이 바로 2002년 6월 13일이다. 이 날은 일반인의 기억 속엔 이미 미세한 점처럼 소멸해 버린 시간의 한 점에 불과하지만, 그 날이 여전히 깊은 인상과 회한과 아픔의 날인 사람들이 있다. 운명은 항상 너무나도 무한대한 범위에서 정교한 장소 시간의 날줄과 씨줄로 교직된 우주공간의 한 점을 지목하기 때문이다.
올해 전북연극제의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다시 꽃씨 되어』는 바로 이 날의 사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28세의 소정은 과거의 어떤 일로 14년 전의 어린 자신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내적 갈등은 그녀의 삶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여름의 한 날이 되면 이 갈등은 극단적으로 격해져서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이 날은 자신이 생일이기도 한 날이다. 뮤지컬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또 다시 문제의 내적 갈등으로 갖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낙방하여 칩거하고 있던 그녀는 찾아 온 친구가 이미 지난 일을 털어 버리라고 조언을 해도 또 딸 생일 챙겨주려 나타난 모친의 보살핌에도 격한 거부 반응을 보이다가 어딘가를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선다.
 소정이 찾아간 곳은 시골의 어느 마을이다.  그 마을 이장은 뭔가 부산스럽다. 매년 이 마을에서 이뤄지는 행사와 그 행사를 찾는 사람들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14년 만에 마을을 찾은 소정을 금방 알아보며 반가와 한다. 그러나 소정은 이장이 사람을 잘못 보았다며 자리를 떠나 어느 은밀한 곳으로 피해 들어간다. 거기서 소정의 중학생 시절이 펼쳐진다.  중학생 소정은 영순과 선아라는 친구와 해맑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들은 가정  형편들이 넉넉지는 않지만 틈만 나면 자기들만의 아지트에 모여 요즘 한창 인기를 누리는 걸 그룹 SES를 흉내내어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각자 이 여가수들의 이름을 자신의 별명으로 삼고 있다. 바다, 슈 등으로. 형편이 가장 어려운, 노래 솜씨 좋은 선아는 장래 뮤지컬 가수가 되고 싶어 하고, 활달한 성격의 영순은 박지성 같은 축구 선수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다. 선머슴처럼 하고 다니지만 용모가 괜찮은 소정은 자신이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마냥 즐겁다. 마을에서도 세 녀석은 귀여운 SES로 통하고 있고 그들의 춤 실력이 어느 정도 인정받아서, 이들은 옛 보건체조를 대체하는 댄스체조를 마을 어른들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이즈음 한-일 월드컵 제전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인데, 이 마을도 예외가 아니어서 밤마다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 TV로 축구경기를 시청하며 응원을 펼치고 있다. 학창시절 누구나 그렇듯이 친구들끼리 가깝고 멀게 서로 무리지어 다니듯이 무리끼리 다투는 일도 다반사. 소위 SES 그룹은 반장 그룹과 불편한 관계이다. 어느 하루 두 그룹이 말다툼과 몸싸움을 벌인 날, 그 날은 소정의 생일날이다. 소정은 두 친구를 마침 그 날이 선거로 휴일이 된 날이어서 집으로 초대한다. 그날 밤 소정 생일을 축하해주려 밤길을 가던 영순과 선아는 야간 군사훈련에 나선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이장을 통해 소정이 14년 만에 마을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소정을 찾아 나선다. 오늘은 어린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를 위한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어서 주민들은 그때의 당사자였던 소정을 간절히 찾고 있다. 특히 SES 멤버였던 영순의 모친은 절박하다. 사건이 터지자 그 책임이 친구들을 초대했던 소정에게 몽땅 덮어 씌워진 것이었다. 이를 방기했던 영순 모친은 소정에게 잘못을 사과하고 싶어 한다
소정은 소녀들의 영정이 모셔진 곳에서 환상을 통해 떠나간 친구를 만나 위로를 받는다. 소정은 영순 모친을 만나 깊이 허리 굽혀 절하고 그녀는 소정을 따뜻이 안아준다. 소정은 그 생일날 친구들에게 썼지만 읽어주지 못했던 편지를 읽어주고 미선이 불렀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이 노래에 함께 한다. 과거와의 화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막이 내린다. 

작가 홍자연은 이 작품에서 한국의 아픈 역사의 한 에피소드를 어린 소녀의 맑은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1980년 5. 18 의거 이후 예민한 주제가 되고 있는 한미 불평등 외교관계의 한 예증 사건이 되었던 <미선-효선 미군 장갑차 피해사건>을 매우 서정적인, 심리극적 수법으로 형상화해낸 것이다. 

이 연극은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서서히 치밀하게 펼쳐나가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그 표본이 되는 <분석극>에 속한다. 관객을 끌고 다니다가 마지막에 전말을 온전히 드러내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연극이 그 과정에서 관객의 집중력을 놓쳐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공연도 그런 위험을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비교적 큰 극장 공간을 고려해서인지 연극 초반에 배우들의 대사가 필요 이상 격했으며 소정과 어린 소정 사이의 대사도 모드를 부드럽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장의 연기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된다. 코믹을 위한 작위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각 장면의 펼쳐짐이 크레센도(crescendo)방식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작품에 작용할 수밖에 없는 정치성을 가능한 감추려는 시도는 적절한 듯 보이나, 일반 관객에겐 생소한 한미주둔군협정의 문제점 등 이 사건에 깔린 한미 관계의 특수성은 극적 양념 차원에서 제 3자적인 시각에서 약간이나마 보여 져야 할 듯하고, 그렇게 한다면 소정이 오열 속에서 뱉는 "우리나라가 힘없는 나라가 아니었다면"이라는 생경한 대사 부분은 생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건을 상징하는 탱크 소리만으로는 그 극적 효과나 지시적 효과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잘 쓰인 희곡에 안정된 연기, 수준 있는 노래 솜씨 그리고 비교적 볼거리가 있는 무대였다. 올해부터 확대된 대한민국 연극제에서 큰 성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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