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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인터뷰 [인터뷰]
시보다 더 시 같은 남자, 윤재 씨의 사모곡
카페 '시집' 운영하는 황윤재씨
윤지용(2018-05-15 10:25:51)



삼천(三川)을 따라난 산책로를 남쪽 방향으로 걷다보면 용흥중학교를 지나면서부터 번잡하지 않고 호젓해진다. 그렇게 2킬로미터쯤 더 가면 '시집'을 만나게 된다. 삼천과 모악산을 바라보며 서 있는 특이한 모양의 3층 건물이다. 뾰족한 삼각기둥 같기도 하고 누군가는 조각케익 같다고도 했던 이 건물이 윤재 씨가 운영하는 카페다.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데생 소재였던 서양 조각상처럼 이목구비 훤칠한 젊은이가 서글서글하게 맞아준다. 건네받은 명함에 있는 아기자기한 손글씨는 아내 지영 씨가 직접 만들어주었단다. 그의 이름 '황윤재' 앞에 한자로 '詩民'이라고 쓰여 있다. 듣던 대로 시를 참 좋아하는 사람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건물의 모양도 이름 그대로 시집이 살짝 펼쳐진 형태다. 카페 내부의 벽에 두른 책꽂이들도 4백여 권의 시집들로 빼곡하다.


사실 애초에 윤재 씨를 취재하려고 작정한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었다. 해양대학교에서 항해를 전공한 그는 외항선의 항해사였다. 오대양 육대주를 주유하는 낭만의 마도로스 생활을 그만두고 이 외딴 곳에 카페를 차린 이유가 궁금했다. 어머니 때문이었단다. 시장에서 노점을 하며 3남매를 길러내신 어머니는 윤재 씨가 한창 외국에서 배를 타던 시절에 폐암 진단을 받으셨다. 어머니 곁에 함께 있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미련 없이 배에서 내려 전주에 눌러앉았다. 어머니는 5년 동안 투병하시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함께 다녔던 모악산 기슭의 추모공원에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와 자주 걸었던 산책로를 끼고 있고 어머니가 계시는 모악산이 바라다 보이는 이 자리에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렵게 땅주인들을 설득해서 부지를 구입하고 일곱 달 동안 손수 건물을 지어 카페를 열었다. 카페 안 탁자들에 놓여 있는 다육식물 화분들도 어머니께서 기르시던 것들이라고 한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고이고이 살려 기르는 그 마음이 참 살뜰하다. 어쩌면 이 카페 자체가 그의 사모곡(思母曲)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재 씨는 카페 앞마당 한켠에 울타리를 치고 개 두 마리를 기른다. 고급 애완견이 아닌 잡종견들인데 이름이 '삼천'과 '모악'이란다. 둘 다 누군가에 의해 버려졌던 개들이다. 울타리 안에 있는 개집에는 추울까봐 난방장치까지 갖춰놓았다. 여름철에는 개집의 벽을 떼어내고 모기장도 쳐준단다. 윤재 씨 부부가 살고 있는 살림집의 마당 형편이 마땅치 않아서 집에서 보살피지 못하고 카페 마당에서 기르는 것이 늘 미안하단다. 마음씀씀이가 착한 사람이다. 윤재 씨는 가끔 와인강좌를 열어서 수강료 수입 전액을 기부하기도 한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오가며 곡물운반 벌크선의 항해사로 일하던 시절에 와인에 푹 빠져서 휴직을 하고 영국으로 건너가서 와인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자신이 어렵게 공부해서 터득한 커피 관련 지식과 카페창업 노하우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공짜로 가르쳐준다.


윤재 씨에게는 오래 묻어둔 상처가 있다.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1,2학년 동안 줄곧 우등생이었던 그는 3학년에 올라가면서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당시에 그 학교 기숙사에는 이상한 관행이 있었단다. 선후배 관계가 아닌 같은 학년 동급생끼리도 기숙사에 입사한 '짬밥'으로 서열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1,2학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온 '고참'들이 3학년이 되어 갓 기숙사에 들어온 동급생들을 대상으로 군기를 잡고 괴롭혔다고 한다. 윤재 씨야 워낙 우등생이었던 덕분에 직접 당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방을 쓰던 친구가 어느 날 호되게 괴롭힘을 당했다. 윤재 씨가 나서서 사감선생님과 학교 측에 항의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다. 일종의 '내부고발자' 역할을 자처한 셈인데, 오랫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관행을 들춰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그를 달가워할 리 없었다. 학교 측으로부터는 '문제학생' 취급을 받았고 주변 학우들도 등을 돌렸다. 기숙사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3학년의 남은 기간 동안 고통스럽게 학교에 다녀 겨우 졸업했다. 그 해 대학입시에는 낙방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인터넷 설치기사로 일하다가 몇 달 동안 재수를 해서 해양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다재다능하고 시를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던 이 젊은이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어쩌면 그때의 시련이 윤재 씨를 이렇게 어질고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인터뷰 말미에 가장 좋아하는 시가 뭐냐고 물었더니, 말없이 벽에 꽂혀 있는 시집 한 권을 꺼내왔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손세실리아 시인의 <기차를 놓치다>라는 시집이다. 시집 속표지에 "시보다 더 시 같은 그대에게"라는 시인의 친필 문구가 쓰여 있다. 언젠가 손 시인을 만나러 제주도까지 찾아갔을 때 받아온 시집이란다. 다른 이유 하나 없이 오로지 시인을 만나고 싶어 그 먼 곳까지 찾아간 윤재 씨의 열정에 시인도 감동했던 모양이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곰국 끓이던 날'이라는 시를 가장 좋아한다며 펼쳐준다. 새끼를 여럿 낳아 기른 암소의 뼈라서 우러날 양분이 남아 있지 않은 사골, 그 우러나지 않는 곰국을 보며 자식들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 앙상해진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가장 좋아하는 시까지도 결국 어머니에게로 가닿는 사람!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기승전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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