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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 | 인터뷰 [인터뷰]
시선을 조금만 딴 곳으로 돌려 봐, 인생은 외길이 아니야
클로저 신지혜, 김진경
이동혁(2019-04-16 12:46:06)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세상이 이렇게나 넓다는 것을, 삶의 모습이 이렇게나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취업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레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달리 다른 길을 몰랐기 때문에 그것만이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사소하게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대학 시절의 현장 탐방 수업, 그 수업이 두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꼭 대기업에 취업하지 않더라도, 공무원이 아니라도, 자기 모습 그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도 된다는 긍정과 확신. 사회의 통념이나 누군가의 부추김이 아니라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며 찾아낸 두 사람만의 진심 어린 대답이 지금의 그들을 만들었다.


전주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지역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매거진 'var!ety'를 발행하고 있는 팀 '클로저'의 신지혜 씨(26)와 김진경 씨(26)를 만났다.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 보고 싶다며 눈을 빛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제야 좋아하는 것을 찾은 젊은이다운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색다른 삶을 나누다
끌림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는 순간, 느끼는 순간, 이거다, 하는 확신과 함께 대책 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그것은 신 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매료시킨 것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인생이었다.


"지역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생각보다 다양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그동안 너무 좁은 시야로 세상을 보고 있었구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김 씨도 고민이 많았다. '친구들 모두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해서 자신도 그 흐름에 따를 필요가 있는 걸까?' '그냥 이렇게 공무원이 되어도 괜찮은 걸까?' 그런 의문을 품고 있던 와중에 문화기획을 접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동안 자신이 진심으로 원했던 삶이 이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됐다고.


"그렇지만 문화기획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들어 보기로 했어요. 지역에서 자기 나름의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그것을 매거진으로 제작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는 친구들에게 보여 주면 어떨까."


그렇게 제작된 책이 바로 매거진 'var!ety'였다. 그 이름처럼 다양함을 추구하는 var!ety에는 예술가, 작은 책방의 책방지기, 문화기획자, 교직원, 회사원, 상담교사, 작가 등 열두 사람의 다양한 삶이 담겨 있다. 이름의 느낌표도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는 감탄의 표현이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경로가 있는데, 꼭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var!ety는 단순한 매거진이라기보단 인생을 외길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에 가깝다.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 뭐든 될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var!ety는 전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각 잡고 읽어야 되는 책이 아니라 가볍게 읽히는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형태를 바꾸어 보면 어떨까, 사람들이 집어 들기 쉬운 형태가 뭘까 고민하다가 낱장 엽서 형태를 선택하게 됐어요."


매거진이 꼭 책의 형태를 띨 필요는 없다. 틀에 박히지 않은 인생을 꿈꾸는 두 사람답게 책의 형태도 무척이나 색달랐다. 엽서처럼 제작된 열두 사람의 인터뷰는 마치 독자들에게 띄우는 편지처럼 봉투에 담겨 전주시 각지의 작은 서점과 카페에 배포됐다. 처음 편지를 뜯을 때의 설렘까지 담아내려 한 두 사람의 발상이 제법 신선하다.


"기획에 맞게 판형을 맞추려고 하고 있어요. 항상 책처럼 만들겠다는 제한을 두지 않고 우리가 생각한 주제에 맞춰 그때그때 형태를 바꾸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해 12월 창간준비호를 펴낸 두 사람은 오는 2020년 3월 창간호를 발행할 예정이다. 준비호와 창간호 사이의 기간이 긴 것은 첫 작업 이후 그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지,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창간호에선 주제를 더욱 좁혀 보려고 해요.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더 나은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대의 고민을 기획에 담다


"행사가 끝날 때 항상 만족도 조사를 해요. 늘 높은 점수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아직 배울 것이 많다며 손사래를 치는 두 사람이지만, 지금까지 진행한 행사에서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모두 높았다는 것을 보면 문화기획자라는 직업이 과연 천직이긴 한 모양이다. 자기 이해 프로그램인 '걱정의 쓸모', 지난해 자신과 새해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며 반성과 다짐을 나눈 '자화상', 노동법에 대해 공부한 '입사부터 퇴사까지', var!ety 인터뷰이들과 함께한 토크 콘서트 등 20대를 겨냥한 행사들을 차례차례 선보이며 기획자로서의 입지를 다져 가고 있다. 특히, 신 씨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걱정의 쓸모 때는 한 참가자가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까웠다"는 극찬을 쏟아 줘 앞으로의 기획에 자신을 얻기도 했다고.


"이런 것들을 계획 중인데, 잘 될지 모르겠다, 그런 고민들을 품고 있어도 평소에는 말하기가 힘들잖아요. 걱정의 쓸모 때는 내가 가진 고민, 다른 사람들의 고민, 그들의 가치와 재미, 그런 것들을 나누면서 서로 공감하고 위로를 얻었던 것 같아요."


털어놓는다고 해서 단번에 답이 찾아질 만큼 호락호락한 세상은 아니지만, 때로는 단순한 나눔이 생각지도 못한 위로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어느 때보다 청년들이 힘든 이 시대. 취업과 내 집 마련, 꿈과 인간관계 등 고단한 청년들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자리의 의미가 돋보인다.


"저희가 청년이다 보니 대상도 자연스럽게 청년으로 맞춰지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이미 속해 있고, 이해도 잘 되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가장 잘 그려지고."


우선은 우리가 느꼈던 것이어야 할 것. 아직 기획자로서 부족한 점이 많아 경험과 체험을 기획에 반영할 뿐이라고 두 사람은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커다란 무기다. 다른 어떤 전문가들보다도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린 기획을 실현하고 있단 뜻이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소규모만 타깃으로 하는 팀이다란 말도 해요. 저희는 참가자 열 명도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러러면 여섯 명이나 여덟 명이 딱 적당하구나."


소소하지만 그런 노하우를 하나씩 쌓아 가며 기획자로서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 지금까지 행사를 기획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전주에는 정보가 하나로 모이는 홍보 플랫폼이 없어요. 행사를 적극적으로 노출시키고 홍보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런 플랫폼이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요."


그들의 지적처럼 행사를 알릴 홍보 플랫폼이 없다는 것은 우리 지역의 커다란 문제점이다. 거기에 더해 참가비에 대한 사람들의 인색한 인식도 문제라고.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도 가격이 비싸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 같아요. 문화 제공과 향유라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기 위해서라도 콘텐츠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한다는 인식이 먼저 뿌리내려야 할 것 같아요."


현재 클로저는 새로운 공간을 준비 중이다. 원하는 사람에겐 무료 대관도 실시할 예정이며, 그들 자신도 이 공간에서 독서 모임과 자기 손으로 직접 책을 만 드는 북바인딩 교실을 열 계획이다.


"'자유실험'이란 공간을 맡아서 운영하게 됐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우리의 철학이나 신념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고 있어요."


가까운 사람들과의 넓고 깊은 연결을 꿈꾸는 그들, 새 공간에서 쌓을 다채로운 만남이 두 사람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매거진도 일종의 연결이었고, 그것은 문화기획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가 기획한 모든 행사들이 그랬듯 서로 연결되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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