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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6 | 인터뷰 [사람과사람]
사진작가 김학수현실을 통한 의식의 창조
진호(2004-01-27 11:41:44)


 김학수는 재래식 환경을 그대로 방치한채 산다. 횟마루가 있는 한옥, 두엄자리곁에 뒷간이 있고, 우물과 외양간이 붙어있다. 작가라기 보다 한 평범한 사진가이기를 고집하는 그는 이제 긴 夏眼에 들어갈준비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gms히 장眼을 하는 것과 달리, 그는 그의 천성적 허약체질을 땡볕에 노출시키지 못하고, 온여름을 깊은 작업실에 첨잠한다.
맹볕을 싫어하는 빛의 예술가! 이말은 그의 사진이 갖는 특성을 환각적으로 암시할지도 모론다.
「洞口밖 들어서면, 우직하게 반겨주는 시골 방앗간, 계절따라 아름답게 피는 이름모를 꽃들, 방죽에 낚시대를 담는 太公의 모습, 모두가 렌즈에 담고 싶은 素材들」이라고, 어느 전시회를 앞둔 팝플렛에서 밝히고 있듯 그는 복숭아꽃이 한창인 과수원길을 지나 싸리나무 울타리집에서 때론 밥도하고, 빨래도 하면서 자연과 함께 산다. 전주시 평화동 맏내골. 그의 노쇠한 부모와 함께 4代째 살아오고 있는 이집은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짙은 한국적 서정과 무관하지 않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자신의 주위에 펼쳐진 자연에 몰두하며 사진작업을 해온 김학수는 지금도 농어촌의 서정적 모습을 작업속에 추구해가며 살아있으려는 작가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같은 속성은 그의 작품이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부드러운 서정적 감동으로 일관되게 흐르게 하는 요인으로 남는다. 1933년 전주에서 태어난 김학수는 27세때 사진을 시작. 단기 4288년(그는 단기로만 기억하고 있다). 동아일보 사진공모전에 처음으로 입상함으로써 사진 찍는일을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입상한 작품이 무엇이었읍니까?
“잔설이란 작품이었습니다. 전후의 황량한 삶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생선파는 아낙과 중기관차를 대비시킨 작품이었지요 -그동안 전시회는 몇번이나 가지셨습니까? “군산에서 2회, 전주에서 2회, 그리고 미국 시카고 초대전 1회, 모두 5번입니다.”
김학수는 사진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전과 국제싸롱공모전 입상, 한국사진작가협회에서 시행하는 10걸상 2회수상 동 수상경력이 있는데, 국전에는 도내에서 군산의 채원석씨와 함께 최초로 입상, 사진의 불모지였던 전라북도에 씨앗을 뿌리고, 제1회 전라북도전 심사위원을 맡음으로써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전주보다는 군산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군산에 친척이 많이 살았던 관계로 70년 이후 계속 군산에 머물렀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사진인구가 적고, 사진에 대한 새로운 서적구입이나 정보수집이 전주보다 빨랐었습니다. 그곳에 살면서 다방도 해보고, 카메라가게도 운영해 보았지만, 신통치 못했고 아무튼 생활에 쫓기면서도 사진은 계속해 왔습니다. -이집으로 이사오신지는 언제쯤입니까? “군산에서 이곳으로 와 정착한 것은 8년전입니다. 다행히 3천평 정도의 논이 있어 그것을 관리하면서 생활하고있죠 -사진의 소재를 꾸준히 자연에서 찾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주로 농어촌 풍경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뚜렷한 이유라기 보다는 내가 태어나고 살아왔던 곳이 농촌이기 때문에 자연이 주위에 펼쳐진 대상을 소재로 택하게 됐지요 나이가 들수록 자연의 섭리랄까. 계절이 바뀔때마다 자연이 주는 변화에 매료되곤 합니다. 세태가 각박하고 황량해질수록 어쩔수 없이 찾게 되는 것이 자연이고 그곳에서 위안을 찾는다고나 할까요”-최근엔 구름을 소재로한 連作을해 오신것으로 아는데 ?“구름 역시 몇년전부터 쭉 관찰해온 소재중의 하나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구름이 다르고 한낮의 구름이 다르고, 노을진 무렵의 구름이 또한 그토록 신기할 수가 없어요 구름은 앞으로도 계속 찍어보고 싶은 소재입니다.’’김학수는 사진의 소재를 철저히 자기 주위에서 찾는다. 대개는 시내버스를 타고 갈수 있는 거리나 멀어야 만경강 근처를 서성이곤 한다. 그래서 그는 단체로 「사진 찍으러 가는 일」을 지독히 싫어한다. 그는사진이 「찰나의예술」이라거나 「순간의 예술」이란 말은 신문에서나 통용되는 말로 배척하면서 사진은 주체적으로 발견하는 예술임을 강조한다. 또한, 기교나 메카니즘보다는 사진의 주제나 내용이 강조되어야 하며, 따라서 사진은 치밀하게 기획되고 의도된 예술이어야 함을 기억시킨다. -요즘 도내 사진계 조류는 어떻습니까? “하나의 주제률 계속 추구하는 주제전이 차츰 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크게 경계해야지요. 새로운 세대들의 고뇌와 실험정신을 이해하는 전제에서만 사진의 발전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남의 작품을 배척하지 말고 좀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합니다. 저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 특히 젊은 사진가들에게서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김학수는 전북사단이 어떤 조류나 경향이 형성되어 있기 보다는 서로의 질시나 반목이 심하게 않느냐는 비판에는 조심스럽게 긍정하는듯 하다.“자기의 큰흉보다 남의 조그만 티를 들먹이는 풍토는 불행한 것입니다. 아직도 권위주의는 청산되지 못하고 구호로만 외쳐지고 있는 듯 합니다. 사진이 좋으면 작품으로 모여야지. 사람으로 모이는 경향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젊은 전문사진인이 많이 배출되면 이런 문제는 차츰 해소될 수있으리라 봅니다.”-써클지도나 단체활동은 거의 안하십니까? “써클활동지도(삼양사 사진써클등)를 몇년간 해본적이 있지만 상당히 부정적입니다. 그저 취미생활에 그치고 맙니다. 단체활동은 어느정도 정보를 얻거나 친목엔 좋을지 몰라도 창작활동에 전혀 도웅이 안된다고 봐요 정보를 얻는 것도요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고되고 어렵지만 혼자하는 작업을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한국사진작가협회에 가입은 하고 있지만 작가행세나 하려는 태도도 못 마땅하고, 협회에 가입하는데 점수를 메기는 것도 그렇고·-----처음엔 「한국사진협회」로 출발했던 것이 어느날 갑자기 「사진작가협회」로 ‘작가라는 말을 불인것은 사진인들이 갖는 「콤플렉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단체들처럼 「문인협회」 「미술협회」
등으로 불려지면 그만일텐데------. 물질이 정신을 앞지르는 시대, 문화예술이 도저히 날고 뛰는 스포츠를 따라가기에 너무 지쳐버린 시대에 한 예술가의 존재는 어쩌면 가장 외롭고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정신이 앞서지 못하는 시대일수록 예술은 그만큼 빛을 발하고 정신을 구원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한 시대를 궤뚫어보고,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큰 몫을 문학과 예술이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김학수의 사진을 굳이 분류한다면 Real photo와 Salon photo계열보다는 서정적 사진이라고 해야 옳은 듯 하다. 그러나 작가정신이란 현실의 복사가 아닌 현실을 통한 의식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때 그곳에서 “리얼리티”와의 만남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기록성이나 현장성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에서 “리얼리티”의 회복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흔히 사진을 시작하는 신인들이 스트레이트사진에는 현실감은 있지만 어딘지 예술적이지 않다는 느낌 때문에 약간의 회의를 하다가 리얼리티와 결별하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김학수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자연에의 순수성을 크게 평가하면서도 치열한 현실인식이 배어있지 않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사진이 한국적 서정요로 가득차면서도 우리의 삶 속에서 생활자체에 대한 진지한 애정을 담아내기 위해선 성실한 현실 참여문제가 당연히 제기되어야 한다.
최근 그의 시각이 소외된 노인들 인생의 역경을 혜쳐나온 인물에 쏠리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꽤 새로운 변모로 명가할 수 있을 듯 하다. 또한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 왔던 농어촌의 목가적 풍경이나, 높은 하늘의 구름에서, 우리가 함께 사는 동네 깊숙히 내려설 때 그는 피상적이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볼 수 있을 것이며 그의 카메라는 분명 선명하게 그것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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