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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 | 인터뷰 [꿈꾸는 청춘]
어려운 이웃에 위로를 건네는 일
인디밴드 ‘게으른 오후’ 유지혜
방재현 객원기자(2014-02-05 10:16:30)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도울 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돕고 좋은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거나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졌을 때로 미루기 일쑤가 된다. 한 사회 내에서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같이 살아간다는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재능과 끼를 두루 갖춘 욕심 많은 소녀

 

정읍 태인에 살던 18세의 소녀 유지혜(28)는 오랜 친구와 함께 서울로 여행을 떠난다. 홍대 앞 클럽의 소규모 공연은 감수성 풍부한 그 시기의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주말과 방학 때면 꾸준히 서울을 오가며 인디밴드의 공연에 심취했다. 그렇다고 생활이 흐트러지거나 학업을 소홀히 하진 않았다. 서울행 버스 안에서 차창너머로 비치는 사람들의 풍경은 가볍지만은 않은 고민꺼리들을 심어 주었고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주기도 했다. 노는데만 열중했을 것 같은 그가 고교시절 내내 전교 2등을 놓치지 않았다니 믿기 힘들다. “만년 2등이 조급함보다는 오히려 편안함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는 초중고 모두 반장과 학생회장을 맡을 만큼 학교생활에 적극적이었다. 인디밴드에 심취한 그였지만 중학교 땐 사물놀이패의 상쇠로 활동했고 고교시절에는 여성 4인조 중창단인 ‘피닉스(phoenix)’를 결성해 R&B 노래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전주 객사에서 펼쳐진 행사에서 상쇠로 주목을 받기도 하고 지역 내 청소년 예술제와 가요제 등을 석권하며 다양한 무대에 선 그였다. “돌아보면 작은 일탈들이 더 큰 방황을 막아준 것 같아요.” 그는 학창시절 때부터 공부와 음악을 병행하는 법을 터득한 셈이다.

 

 

두려움을 잊다

 

 2006년 전북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그는 무대를 만들어 꾸미고 싶은 열망에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을 하기도 했다. 학생회 활동을 하다 2학년 때는 사회대 단과대학 부학생회장을 맡았다. 악기를 배우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 열정은 ‘NOMOS’라는 포크음악 창작동아리로 그를 이끌었다. 그때쯤, 동아리방에서 열심히 기타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기특해하던 선배들이 앨범을 만들어 같이 활동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어쿠스틱 기타와 건반, 리드싱어 유지혜로 구성된 그들은 곧 ‘게으른 오후’로 활동을 시작한다. 초기엔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간헐적으로 무대에 올랐고, 데모음반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러던 중 한 인디음악 기획사에서 같이해보자는 연락을 받고 상경을 결심했다. 그들은 얼마지 않아 ‘어느 가을밤’과 ‘헤매이다’ 두 곡을 담은 디지털 싱글앨범을 냈다. 스물 셋에 시작한 서울생활, 멤버들은 물론 자신도 생계와 생활을 위해 낮에 할 수 있는 일을 구해야 했다. 밤에는 모여 연습하고 주말에는 계속해서 무대에 올랐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시간이 지나갔지만 때때로 빠듯한 생활비에 열악한 주거공간과 생활환경에서 오는 서러움이 일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51+’라는 단편영화로도 소개된 홍대 근처 ‘두리반’이라는 칼국수집의 대책을 내놓지 않은 철거에 대해, 인근에서 활동하는 문화, 예술인들이 힘을 모아 농성하는 사태를 맞이한다. 그들도 틈틈이 철거현장에서 공연을 이어갔고 531일간 계속된 농성이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형태로 막을 내렸다. ‘위로’라는 게으른 오후의 노래를 부르며 함께 마음을 나누고 서로에게 위로를 건낸 현장의 날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해 돕는 일은 곧 음악이었다.

사실, 그가 위로를 받았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찾아준 관객들에게 한없이 감사하다. 때로는 자신보다 노래를 잘하는 동료들을 보며 기가 죽거나, 부담감에 짓눌리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성을 담아 자신의 노래를 하라는 주위의 충고와 같이 마음을 담아 나의 노래를 하고 잘하고 못하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무대에 오르는 이 스스로가 즐거워야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고,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괴로워하지 말아야한다는 사실이 스스로의 몸과 마음가짐을 정연히 하도록 담금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속된 기획사가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고, 대표는 친분있는 기획사를 소개 시켜줬다. 유지혜는 한 학기를 남겨두고 떠나온 학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전주행을 선택했다. 해오던 공부를 정리하며 졸업을 앞두고 큰 기대 없이 우연치 않게 제출한 지원서에 합격통보가 왔다. ‘아름다운가게’였다.

 

 

저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2012 2월 그는 비영리 재단법인 ‘아름다운가게’에 입사했다. 입사 후 한 달 가량 교육을 받고 배정된 곳은 ‘전주 서신점’이다. 일을 시작하며 점차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은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껏 준비해 온 것 같다는 생각들로 이어졌다. 막연하게 꿈꿔왔던 일들이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진행되고 있었고 하고 싶었던 일들이 그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할당된 한 매장의 책임자로 매장관리와 운영을 도맡아야했다. 또한, 좋은 일을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해야했다. 먼저 ‘아름다운가게’가 목표로 하는 ‘나눔과 순환’ 정신을 홍보하는 행사와 캠페인을 준비하여 진행한다. 그리고는 주는 이에게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로 하는 기증품을 제공받아 종류를 나누고 가격을 책정하여 팔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 판매를 완료하여 남게 되는 수익금은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쓰이는데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대상을 발굴하고 선정하여 배분하는 일도 직접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원봉사자를 모집, 교육, 관리해야하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기획, 특별전등의 이벤트를 마련하여 다각도로 마케팅을 진행하게 된다.

지금은 경험이 쌓이며 자신감도 생기고 일처리도 능숙해 졌지만 처음에는 역할이 많아 몸이 힘들기도 했다. 다만 일이 좋아 행복했다. 힘든 일일수록 보람은 더욱 컸고 나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어서인지 더 큰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가게’에서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부터  행해지는 모든 일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다. 살기 빡빡하고 타인이 무서워져 사람을 못 믿겠다는 세상이지만 일을 하며 만나는 좋은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면 혼자 사는 것이 아닌 같이 사는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다른 사람을 돕는 다는 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감격이 있다. 장난기 넘치던 아이들이 가게에서 보수 없이 일하고는 자신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 같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고 수줍게 고백한다. 도움을 받은 분들의 사연과 함께 감사함을 담은 편지가 오면 눈물이 나기도 한다. “아름다운가게를 모르시는 분들이 아직 많아요. 많은 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조금 더 살만하고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가까운 곳부터 바꾸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어요. 때로는 힘들고 상처받아 흔들릴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스스로 자정하고 새롭게 되려고 노력해요. 그래도 타성에 젖거나 메마르지 않고 정체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계속 꿈꾸며 감동받고 멈추지 않고 싶어요.

 

 

후회하지 않을 선택

 

그는 오늘이 살아오면서 가장 좋은 때라 말한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나 순간은 아직까지는 없다. 힘들었던 날도 지나고 보니 무덤덤하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려 하고 책임을 지며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지금껏 잘해왔고 나쁘지 않았다고 느낀다.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을 뿐이다. 바쁜 와중에도 2013년 한 해 동안 십여 차례 공연을 가진 게으른 오후는 올해 정식앨범을 준비중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멤버들이 모두 단단히 마음먹고 있단다. 유지혜를 제외한 멤버들은 현재 서울에 있다. 그는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서울을 오가며 공연을 한다. 두 일을 병행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무대에 서는 일만큼 포기할 수 없다. 음악활동을 아름다운가게 일은 동일선상에 있다고 여긴다. 노래를 통해서 누군가가 복잡한 생각들로 부터 벗어나 잠시 나마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정식앨범을 내는 게으른 오후,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열심히 사는 그의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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