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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3 | 인터뷰 [인터뷰]
다큐엔 ‘큐’가 없었다, 그러나 다 ‘큐’가 있었다
故박배엽시인 다큐영화 <미안해, 전해줘> 만든 신귀백 감독
임주아 기자(2013-02-28 11:41:21)

영화평론가 신귀백씨(53)가 오래 참은 메가폰을 잡았다. 햇빛 좋은 날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고 나면 꼭 한 달 정도는 열병을 앓았다는 그가 지난 1월 ‘진짜 영화’를 들고 관객 앞에 섰다. 故박배엽시인의 삶을 2년간 추적해 묶은 장편 다큐영화 <미안해, 전해줘>가 그 작품이다. 감독은 “전주 사람들이 모두 박배엽을 안다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와 음악감독이 “박배엽이 전주의 전설일 뿐이지 대한민국 사람 몇 프로가 알겠느냐”며 촬영 내내 싸움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간 박배엽 시인의 족적을 쫓으며 몰두했던 것은 박배엽의 근원적 공부 방식,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 시대에 대한 개인적 희생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질문과 사색을 던져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전해줘>에서 보여준 박배엽은 대학은 가지 않고 전북대 앞에서 ‘새날서점’을 운영한 사람이었다. 문학을 비롯해 역사, 철학, 미술, 클래식에 능통한 다독가였으며 문인들로 하여금 “문학적으로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만드는 인간(김용택 시인)”이었다. 그는 이광웅 시인이 감옥에서 배워온 ‘금강선녀’라는 노래를 전주바닥에 널리 전파한 소리꾼이었고, 손수 나무하고 톱질해 후배에게 책장을 선물해준 따뜻한 목수였으며, “내 나라 내 땅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면” 절대 백두산에 가지 않겠다고 시를 써서(<백두산 안 갑니다> 1991년 문화저널 발표) 많은 이들에게 백두산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아무 것도 없던 시절, 그를 버티게 해준 것은 시인정신이었고,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전북 문인들이 지독히도 짝사랑했던, 하지만 너무 일찍 떠나버린 박배엽. 영화는 인터뷰이들이 가는 길을 따라 함께 걷는다. 새날서점이 있었던 전북대 대학로부터 그가 매일같이 들렀다는 전주 경원우체국 네거리를 포함한 부안 내소사, 진안 무주를 넘어 지리산 대성골 대숲까지 따라간 발길. 40여명의 선후배 친구들의 진심어린 인터뷰. 적게는 마흔의 저쪽, 많게는 예순을 바라보는 전북의 문인들이 그를 위해 기꺼이 총성 날리던 과거로 돌아가 성실히 응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무엇을 느낄 것인가. 마침 감독이 말한다. “내레이션을 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끝까지 참았어요. 다큐 ‘영화’라는 걸 이해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다큐엔 ‘큐’가 없다고 했던가. 각본 없는 드라마인 만큼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질 때가 많았다는 감독은 몇 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어느 날, 증언할 멤버들을 모아놓고 촬영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카메라가 고장 나고 만 것. 카메라감독이 잠깐 손을 보는 사이 인터뷰이들은 이미 게임이 끝나있었다. 모두 술귀신이었기 때문. 레코딩을 알리는 빨간불도 문제였다. 카메라가 돌면 생기 없는 이야기만 하다가 불이 꺼지면 그때서야 땀을 닦고 본격적으로 ‘진짜 얘기’를 했다. 다시 돌아가도 그 맛이 살아날 리 없었다. 다큐엔 정말 ‘큐’가 없었다. 영화가 중반부에 다다르자 그의 큐는 다른 한 사람주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바로 박배엽의 후배인 김길수다. 박배엽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갸우뚱할 수도 있고, 시인을 잘 모르는 관객들에겐 더 반가울 지도 모르겠다. 그는 2008년 TV인간극장 <김길수의 난>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목수. 하지만 감독은 그를 처음부터 몰랐다고 했다. 김길수에게서 박백엽의 모습을 보았거나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고 묻자,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도치 않은 큐이자 의도된 큐가 그와의 만남이었다고 회상했다.

시 몇 편과 그를 보낸 사람들의 추도사 정도가 박배엽 앞에 남겨진 자료의 전부였던 것은 생각보다 큰 난관이었고, 시인에 대한 객관성 문제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었다. 그러던 중 지리산 촬영 때 김길수를 만났고, 그가 백두산 가는 방법을 얘기하는데 엔딩이 탁 나왔다. ‘아, 그래. 박배엽이 꿈꾸던 삶을 실천하는 사람은 김길수다’ 싶었다. 그 뒤로 박배엽에 대한 추앙 대신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후반부 초점을 맞췄다. 박배엽의 삶도 중요하지만 신귀백의 세계관이 더 중요하다는 한 김병용 소설가의 말도 뼈가 됐다. 그리하여 초반에 잠깐잠깐 등장했던 김길수는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 큰 비중으로 다뤄졌고, 감독이 가장고심했던 엔딩도 그에게서 찾았다.“결국 박배엽은 내 꿈이었고 목수 김길수의 유유자적한 삶의 실천이나 소설가 이광재의 ”밥도 안 먹고 십년간 소설만 쓴다“는 말은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한 표현인 거죠. 저만 그러겠습니까? 전업하지 못하고 글 쓰고 예술 하는 모든 이들의 로망일 테죠.”“하늘을 향해 나는 화살을 쏘았네.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후한 느티나무에 부러지지 않고 박혀있는 화살을 나는 보았네. (…)한 친구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것을 나는 알았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감독이 들려준 롱펠로우의 시가 마음에 남았다. 찾아보니‘화살과 노래’란 제목이었다. 그림이 되면 이야기가 안 되고 이야기가 되면 그림이 안 되어 이틀을 찍고도 한 컷도 못 담긴 인터뷰이들에게 가장 미안하고 괴롭다는 감독. 끝까지 냉정을 유지하려 애써준 영화 식구들에게 섭섭하지만 고맙다는 말도 전했다. “이런 게 원래 영화인가 싶어요.” 그는 당분간 쉴 계획이라 했지만 청탁 받은 글 때문에 넋 놓고 쉴 수만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삶의 한쪽을 내려놓은 그의 얼굴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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