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5.1 | 인터뷰 [인터뷰]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다
마술사 김승준
이세영 편집팀장(2015-01-05 09:53:21)

검은 연미복에 원통형 모자를 쓴 마술사. 누구나 마술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 환상적인 광경에 매료돼 마술사의 꿈을 꾸기도 한다. 그 마술사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그를 만났다. 스물여섯이라 보기에는 앳된 얼굴에 헤드셋을 끼고 헐렁한 차림을 한 그에게서 마술사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공연 때와 이런 자리에서 모습이 완전 달라서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요. 마술사 김승준과 평소의 김승준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대에서는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싶었어요. 마술사는 연예인처럼 신비감을 있어야 마술도 신비해 보이는 거 아니겠어요? 단지, 무대에 서면 잘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만나면 별로 잘 생기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요?”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지으며 그는 마술사가 된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술사 입문은 특별하지 않았다. 특이한 걸 좋아하던 그에게 명절 때면 텔레비전에 방송되던 외국 마술사의 신기한 모습은 그의 주목을 받았다. 그 또래 아이들이 가졌을 법한 치기,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마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독학이지만 마술공부를 본격적으로 한 건 중학교 때였어요. 학교에 동아리를 만들어 친구들과 마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첫 무대는 학교 축제였어요. 무대 뒤에서 준비하는 동안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나요.”

막상 무대에 오르자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에게 집중하는 사람들의 눈이 보였고, 그의 마술에 신기해하는 표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려움은 씻은 듯 사라지고 무대는 즐거웠다. 첫 무대의 감동은 그를 마술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했다. YMCA 마술동아리에 들어가 마술을 배우며 무대경험도 쌓아갔다. 마술사의 길에 들어서도 좋겠다는 확신으로 대학도 매직엔터테인먼트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배우는 마술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처음 보는 기법과 기술을 접했다.

“텔레비전이나 디비디 영상으로 마술을 배우고, 동네에 왔던 서커스단 마술사의 모습을 보며 어깨너머로 배우는 마술과는 차이가 많았어요. 그렇게 독학으로 마술을 배우다보니 오히려 나쁜 습관이 많았다는 걸 대학에 가서야 알았어요. 한동안은 그 습관들을 고치는데 애를 먹었죠.”

하지만 마술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하나 극복해 갔다. 이제 갓 마술사가 된 그지만 한 달 평균 10여회의 무대에 서는 실력 있는 마술사로 인정받았고, 방과 후 교사로 아이들에게 마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는 마술을 가르치며 마술에 대해 생각한다. 마술이 주는 기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관객과의 소통이 마술을 완성시킨다


“저는 마술사와 마법사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마법이 말 그대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마술사는 불가능을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죠. 마술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 단순한 눈속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경험하는 거죠. 마술사는 그런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방법들을 항상 고민해요.”

마술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그의 창의력은 시시때때로 나온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기록하기도하고 영화를 보다 아이디어가 떠올라 영화 줄거리도 모른 채 영화관을 나오는 일도 허다하다. 노래를 듣다가도, 길을 가다 돌멩이를 보고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보는 사람은 불편하거나 답답해 할 정도로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다 마술이 되는 건 아니에요. 상상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라면,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 마술의 방법을 고안해야 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죠. 마술로 보여줄 수 있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에요. 이걸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무대에 맞는 장치와 방법들을 또 고안해 내야 하죠. 이렇게 세 단계를 거쳐야만 마술을 무대에 올릴 수 있지만 무대에 오른 마술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또 아니죠.”

사람들은 화려한 마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깊이 있는 마술을 하고 싶어 한다. 카드 한 장 가지고도 여러 가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러나 그건 어렵다. 손수건 세 장으로 희망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마술이 완전 실패를 한 경우도 있었다. 진짜 야심차게 준비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없었다. 오랫동안 고민해서 무대에 올린 마술이 두 번 다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창고에 처박혔다. “관객과 소통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진짜 멍해졌어요. 회사 동료들과 피드백을 하며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신랄한 비판을 받았죠. 그들의 조언이 옳아서 더 화가 났지요.”

그래서일까, 그는 요즘 관객들과 웃고 노는 것에 더 깊이 빠져 있다. 정장을 차려입은 엄숙한 마술사의 모습이 아니라 더 가깝게 관객들과 호흡하는 일이 더 즐겁다. 때론 말 가면을 쓰고 말 춤을 추는 것도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해 시작한 거리공연도 그렇다. 무대와 관객을 가르지 않고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는 거리공연은 그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술은 무대마술과 클로즈업 마술로 구분돼요. 마술사라면 두 가지 마술을 다 해야지만 제 전공은 무대마술이에요. 그런데 거리공연은 클로즈업 마술이거든요. 관객들과 함께 웃고 노는 것이 좋다보니 클로즈업 마술을 많이 하게 되는데, 거리공연은 특히 힘들어요. 공연에 집중하게 하는 거나, 관객들의 눈을 속이는 마술을 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거리공연이거든요.” 


첫 무대의 설렘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 번의 마술 공연을 더 할수록 그는 더 깊이 마술을 이해하게 된다. 마술 속에 깊이 빠질수록 재미를 느끼는 반면, 갈수록 어렵고 화가 나는 경우도 많아진다. 관객에게 신기한 마술을 보여주면 되었던 마술은 쉬웠다. 하지만 “왜 이렇게 돼야 하지? 왜 이렇게 움직여야 하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하자 또 어려운 것이 마술이었다. 어떤 마술사는 쉽게 하는 마술을 도저히 할 수 없을 때는 화도 났다. 

움직임 하나에 이유를 만들고 그의 공연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어가는 것은 그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이다. 그저 신기한 마술을 보여주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고, 더 깊이 있는 마술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일에 자부심과 애정이 깊어졌다.

“높은 연봉을 받는 친구가 저를 보며 부럽다고 하더군요. ‘내가 꿈을 이뤘고, 이 일에 만족해하며 앞으로도 계속 할 것 아니냐’하면서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행복한 것이구나, 경제적으로 만족하지는 못해도 내가 하는 일에 행복해하면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래도 먹고살 궁리는 해야 하잖아요. 예전에 비해 점점 현실적이 돼가는 제 스스로에게 실망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것을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하죠.”

그래서 그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의 마술을 보며 박수칠 타이밍조차 놓쳤던 관객의 표정을 기억하고, 그때의 짜릿한 감정을 잊지 않으려 한다. 마술사가 직업인 것이 자랑스러웠던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먹고사는 일보다 더 행복한 마술사의 길을 걷는 그의 자랑이기도 하다.

올해 그는 더 바쁜 한해를 보낼 거라 한다. 아직 수상 경력이 없는 그로써는 마술대회에서 수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만의 공연물을 만드는 것도 하고 싶고, 군산을 벗어나 서울로 활동영역을 넓히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군산의 마술사가 이정도 실력이야’하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우고 마술이라는 콘텐츠를 어떻게 잘 써먹을지도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그래도 그는 그의 미래를 낙관한다. 

“마술사라는 이미 꿈은 이뤘잖아요. 먼 훗날, 누군가 나를 보며 ‘나도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이 있어요. 그 때의 모습은 마술사도 좋긴 한데, 한 사람의 예술가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저의 마술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해야겠죠.”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