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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 | 인터뷰 [인터뷰]
우직한 손이 만들어낸 감동의 무대
무대 세트 제작자 서령
문동환(2015-09-15 12:21:15)

 

 

약속시간은 저녁 7시였다. 부탁받은 일을 부랴부랴 끝낸 뒤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다. 만나기로 한 인후동 카페로 이동하는 중, 그는 문자메시지로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 15분 전이었다. 5분을 남기고 맞춤하게 도착한 나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정면 시야에 들어온 남자 한 명을 포착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기에 다짜고짜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아니었다. 민망해진 나는 황망히 고개를 돌렸다. 다시 또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다소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있던 그는 손을 든 것도 아니고 내린 것도 아닌, 어중간한 제스처로 신호를 보내왔다. 어지간히 내성적이겠다 싶었다. 어쨌든 제스처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딱히 인상적인 점을 찾아보기 힘든 얼굴이었다. 작은 눈매에서는 순박한 성품이 느껴졌지만 어딘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커피잔을 쥘 때 손을 보니 손가락이 두툼했다. 나는 남들에게 내 손은 섬섬옥수라며 자조 섞인 말을 하곤 하는데 그의 손은 섬섬옥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전, 곡기로 채워져야 할 뱃속에 커피가 들어가니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그에게 담배를 피워야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밖으로 나가 폐부 깊은 곳에 니코틴을 주입시켰다. 추적추적 저녁비가 내리고 있었고, 무념무상으로 담배에만 집중했다.

대화는 두서없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40대 중반인 그의 현재 삶까지 자그마치 30여년의 세월을 두 시간에 담아냈다. 하지만 30여년의 세월을 담는 이야기는 무엇이 되었건 언제나 연극무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라는 선명한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서령씨가 연극무대 세트 제작을 하게 된 것은, 그의 말에 따르면 모두 우연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는 원래 자동차 정비를 공부하고 기능올림픽에 나가서 도대표로 선발될 정도의 실력자였다. 하지만 정작 일선 정비현장에서의 경험은 모두 그의 생각이나 기대와는 달리 어긋나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용접일로 전환하게 되었고, 다시 한 번 또 다른 우연으로 집 짓는 일을 하게 되었다. 연극무대 세트작업은 그 와중에 시작하게 되었다. 역시 우연이었다. 사는 게 계획과 필연으로만 뒤덮인다면 삶은 각각의 귀퉁이에 한 치의 곡선도 허락하지 않는 사각형쯤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연의 연속에 의해서만 한 사람의 삶이 규정된다는 것도 낯설고 괴이한 일이다. 우연과 필연이 어우러져 인생의 동학(動學)을 만들어내는 건데, 무정형의 인생이 모든 사람이 걸어온 길이고 또 앞으로 걸어갈 길일 텐데... 우연의 삶을 이어온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창작소극장에서 활동하는 친구에게서 용접할 게 있다고 연락이 왔다. 가서 보니까 배우들이 연습에 열중이었다. 낯선 풍경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갔다. 이게 내가 무대세트 제작과 맺은 처음의 경험이었는데 첫 경험치고는 소소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근 20년 가까이 된 사건으로 기억한다. 창작소극장에 화재사고가 났었다. 그 때 마침 창작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던 동생에게서 불이 났다고 연락이 왔다. 현장에 가보니 이차 피해가 있었다. 화재자체는 대형사고가 아니었는데 화재진압 과정에서 뿌린 물에 극장이 침수되어 버린 꼴이었던 것이다. 그냥 오기가 뭐해서 철거를 도왔다. 그 꼴을 봤는데 등 돌리고 극장을 빠져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철거가 끝나고 극장을 고치는데 그 일을 내가 맡게 되었다. 무대부터 객석까지 모조리, 나와 내 동생 둘이 일을 도맡아 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당시에는 욕을 얻어먹는 일도 종종 있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를 할 때는 연출과 심하게 충돌하기도 했다. 얼마나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마저 들었다. 어떤 경우는 15일을 죽어라 일하고 나니 손에 쥐는 게 단돈 몇 만 원이었던 적도 있었는데. 장기로 치자면 차포 떼어주고 마 떼어주고 거기에 사까지 떼어주고 나니 남는 건 초라한 왕 하나뿐인 그런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데 그 공연을 봤던 친구 A의 전언이 모든 회의를 한 줌 재로 날려버렸다. 공연을 본 관객들이 무대 세트를 너무 잘 만들었다면서 입을 모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날아갈 듯이 기뻐했다. 그렇게 그만두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 그게 얼추 15년쯤은 된 것 같다. 한 해에 적어도 세 작품은 해왔으니 족히 사오십 편은 한 셈이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 때 선배들의 고언(苦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약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성취감이다. 내가 제작한 세트를 무대 위에 설치하고 세트를 배경으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관객들이 연극작품과 함께 호흡하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기쁨은 배가 된다. 그래, 나는 가장 중심적인 주연배우다. 한 작품이 몇 회를 공연하든 나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연한다. 그것도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나를 대신하여 무대 위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세트, 그게 바로 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돈 보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돈이 되지 않아도 하고 싶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화가 무르익어 가던 중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통화가 끝나기를 잠시 기다리던 나는 그에게 손짓으로 담배 피고 오겠다고 알렸다. 나는 그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곡기 부족을 알리는 배에 커피 한 잔을 모조리 집어넣었더니 나는 발정 난 수컷으로 돌변해 있었다. 통화가 길어지기를 바라며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 불을 붙였다. 비는 여전했다.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상념이 스쳤다. 테이블로 돌아가니 그는 통화를 끝내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연극이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극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트란 세트를 통해 연극의 스토리가 읽혀질 수 있는 세트다. 그런 세트가 있었다. 얼마 전 아는 형이 연극을 보자고 해서 봤는데 무대를 본 순간 놀라고 말았다. 세트만 보고서도 작품의 줄거리가 전달됐기 때문이다. 비록 외형상으로는 허접한 세트였지만 어떤 이야기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질지 세트가 말해주고 있었다. 돈을 많이 들여서 멋지게 세트를 해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작품이 말하는 것과 세트가 말하는 것이 맞아야 좋은 세트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세트를 만들 때 그 점을 염두에 둔다. 손잡이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문짝을 만들어도 실제 문짝과 똑같이 제작한다. 과거에는 문짝이 세트로 올라가면 닫아 놓아도 틈이 생기고 그 틈이 객석에서도 훤히 보였다. 틈 사이로 서성거리는 배우들의 모습까지 보일 정도였으니 관객들의 몰입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트로 연기하는 나에게 그런 세트는 용납되지 않는다. 연출이 말한 배우들의 동선을 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시대적 배경의 느낌이 세트를 통해 오롯이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전반적으로는 최대한의 완성도와 리얼리티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과 달리 이제는 연출의 의도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 나만의 색깔을 입히고 싶다. 연출 의도에만 의존하는 건 주문한대로 세트를 제작하는 단순 과정이다. 앞으로는 내가 대본을 읽어보고 나서 작품의 성격과 내용에 맞는 무대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연극에 대한 나의 관심과 애정을 좀 더 폭넓게 무대 위에 펼쳐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생계기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농사를 생각하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니 커피를 재배하는 일이 여러 모로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반이 잡힌다면 연극무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 일을 이어갈 사람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왕이면 배우 중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선다면 좋겠지만 일이 힘들다고 해서 좀처럼 나서는 사람이 없다. 배우는 연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탓도 있다. 예전에는 극단 식구들이 세트 제작부터 조명, 음향, 홍보까지 같이 했다. 하지만 이제는 분업화가 되어 다 따로따로다. 분업의 장점도 있겠지만 연극의 특성을 생각하면 완전한 분업은 오히려 작품의 전반적인 완성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각각의 분야에 대해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작품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는 데 있어 도움이 된다. 특히, 연출과 배우는 더 그렇다.

지금까지 내 삶은 모두 우연이 지배해왔다. 앞으로도 우연적인 삶이 이어질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연극일을 계속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연으로 점철된 내 인생에서 이제는 가장 확고하게 말할 수 있는 무엇이 생겼다. 연극인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카페를 나와 수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우연으로 시작한 일이 필연이 되어버린 그의 삶에서 나는 열정이라는 상투적인 단어를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숱하게 입에 올려서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식상해진 열정이라는 단어. 하지만 서령씨에게 열정은 언제나 새로운 설렘으로 다가오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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