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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 | 인터뷰 [공간과 사람]
무대와 스크린 뒤에서 더 빛나는 그들
문동환(2016-04-15 10:39:23)

주말에 콘서트 하나, 영화 한 편 즐기는 이들이 많다. 관객들은 무대와 스크린의 정면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기에
그 뒤에 한 편의 공연, 한 편의 영화를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존재하는지 쉽게 알 수 없다. 이달 공간과
사람에서는 화려한 무대 위를 더욱 더 돋보이게 만드는 음향장비 업체 M60의 이석재 대표와 은막의 스크린 속 필
름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영화를 트는 디지털독립영화관 이선영 영사기사를 만나보았다. 무대와 스크린 뒤에
존재하기에 더욱 더 빛이 나는 그들이다.





M60 music camp
음향업체 이석재 대표

아들 녀석이 예닐곱 살 쯤 되었을 때 삼인조 밴드의 공연장 풍경을 그린 적이 있다. 무대 위에서는 마이크를 잡고 있는 보컬 그리고 피아노와 드럼 연주자가 있고, 무대 아래에서는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단순한 묘사였지만 공연장의 활기를 상상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꼬마의 그림에 공연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스탭들의 모습은 없었다. 분명 어딘가에 있었을테지만 아이의 눈에는 그들이 포착되지 않았다.
우리는 공연장을 가면 무대 위의 주인공에만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누가 어떻게 준비했고,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는지에 대해서 마음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한 편의 공연이 있기 까지는 기획과 홍보, 무대설치, 조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땀을 흘려야 한다. 음향도 그 중 하나다. 특히, 음악공연 같은 경우에는 음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셋업(준비)하면서 최대한 양질의 사운드가 나오도록 심혈을 기울이죠. 물론 관객분들은 소리가 좋은지 나쁜지는 잘 구분을 못하지만 저희는 들어보면 아니까요. 절대 대충 가는 법은 없습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음향 전문 업체 M60 대표 이석재 사장의 이야기다. 2000년도 부터 음향장비 렌탈사업을 시작한 그는 공연예술 관계자들로부터 깐깐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업체 사장 입장에서 사운드는 대충 뽑아내고 '갑'의 요구에만 적당히 부응해주면 될 것 같은데, '을'로서의 처세보다는 사운드 생성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냥 깐깐한 사람에 머물지 않고 '같이 일하기는 힘들지만 결과물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아무 행사나 공연에 안 가거든요. 그래서 건방지다는 소리도 듣고 하는데. 무대나 조명도 사실은 할 수는 있어요.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나름대로는 외길을 가고 전문성을 확보하는 게, 예전부터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하드웨어(무대, 음향, 조명 등)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를 함께 다루는 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석재 사장은 오로지 음향에만 매달리는 외골수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도 어떻게 하면 공연장을 최상의 사운드로 채울 수 있는가, 그것 하나밖에 없다.

"현장에서 가장 예민한 사람들이 음향 엔지니어에요. 음향이라는 게 잘해야 본전이거든요. 대신 실수나 사고가 있으면 가장 도드라지게 표가 나는 게 음향이라서 셋업할 때나 진행할 때나 정말 민감해질 수 밖에 없죠" 음향 엔지니어들이 가장 먼저 신경 쓰는 부분은 사고 예방이다.

제어장비인 콘솔의 전원이 끊길때를 대비해서 예비전원을 확보하는 일부터 진행 시나리오에서 음향 부분이 엇박자를 내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한다. 그 다음이 좋은 사운드를 뽑아내는 일이다. 공연장에 맞는 적정한 출력인지, 다양한 음역대와 악기 세션별로 사운드는 이상이 없는지 등을 공연시작 직전까지 쉼 없이 체크한다. 그야말로 확인과 점검의 연속인 셈이다. 이러한 일련의 점검과 확인은 크리티컬 리스닝(critical listening)이라고 하는 청음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크리티컬 리스닝은 음악을 틀어놓고 드럼이면 드럼, 기타면 기타, 이렇게 악기별로 소리를 구분해서 듣고 감각적으로 분석하는 훈련인데, 음향 엔지니어에게는 필수 훈련과정이다. 최상의 스테레오 즉, 공연장에서 가장 조화로운 사운드를 뽑아내는 것도 크리티컬 리스닝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석재사장이 음향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시절부터다. 대학밴드에서 드럼을 쳤던 그는 자연스럽게 음향장비와 친숙해질 수 있었다. 졸업 후에는 본격적으로 음향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준비했는데, 어학연수까지 마치고 출국일정까지 잡혀 있던 상황에서 갑작스런 선친의 와병으로 유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서울로 상경해서 일과 음향공부를 병행했다. "서울레코드사라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배웠는데 사부가 유학파였어요. 그 분한테 돈을 주면서 배웠거든요. 영어 원서를 가지고 사부가 유학 때 거친 과정을 그대로 모방해서 커리큘럼을 짜고 교습을 받았죠"사운드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지금도 한결 같다. 좋은 사운드를 내기 위해서라면 고가의 장비 구입도 서슴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팔지 않고 가격도 워낙 고가인 유럽산 장비를 현지 본사에 사정사정해서 보유하게 된 것만 봐도 사운드에 대한 그의 고집을 엿볼 수 있다. 비싸고 좋은 장비를 쓰려고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사운드가 좋게 나오고 현장에서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사고 위험성을 줄여준다. 그러나 장비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걸 이석재 대표는 한시도 잊지 않는다. 장비를 다루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에 대한 배려는 그가 M-60을 이끌어오면서 사운드에 대한 고집과 함께 일관되게 실천해온 문제다. 비록 소규모 업체이고 비수기가 많아서 연중 상시고용체계를 유지하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4대 보험가입은 물론이고, 탄력적인 근무시간 조정, 동호회 활동 지원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급여지급은 지금까지 하루도 지체된 적이 없다. 급여지급 계좌는 혹시라도 지급을 못하는 경우에 대비해서 아예 마이너스 통장으로 연결시켜 놓았을 정도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영사기사 이선영

봄기운 완연한 토요일, 영화 틀어주는 남자 이선영씨를 만났다. 부산 총각인 그는 13년 전 전주국제영화제 기술팀에 합류하면서 전주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4년 전부터는 아예 전주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이제는 전주사람이 다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주라는 도시와 전주국제영화제를 사랑한다.
이선영씨의 아지트는 전주독립영화관(지프떼끄)이다. 출근하면 기계를 점검하고 때로는 수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작과 끝은 영화상영이다.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이다. 누군가의 눈에 띄지도 않는 일이다. 영사실은 영화관 내에서 가장 윗부분, 천장과 맞닿아 있는 곳에 있는 탓에 사람들은 영사실에 관심을 두지 않을뿐더러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한다. “가끔씩 눈이 마주치면 깜짝 놀라는 분들이 있어요. 유령 같은 존재죠”
중학생 때 장래 희망직업을 써내라고 하면 서슴없이 영사기사라고 적었다. 영화를 좋아하고 기계 만지는 것도 좋아하는데 이 둘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게 영사기사였기 때문이다. 영화와 기계를 좋아하는 건 어린 학생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둘의 조합이 사람들 입에도 좀처럼 오르내리지도 않는 ‘영사 기사’로 귀결되었다는 게 흥미롭다. 아마도 당찬 꼬마가 아니었을까 싶다. 전공은 광고홍보학이었지만 4학기 다닌 게 고작이었다. 여전히 영사기사를 향한 꿈이 있었다. 선영씨는 영사기사들을 찾아가서 배움을 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가 부산국제영화제 시네마테크가 생각나서 다짜고짜 찾아갔는데 다행히 입문을 허락해줬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것이 다시 계기가 되어 전주와 부천 등, 전국 각지의 영화제를 돌아다녔다. “막노동 하시는 분들이 팀을 이뤄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그러잖아요. 저희도 그랬거든요.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했죠.”
전주국제영화제는 2003년 처음 참여를 하게 됐는데 지금까지 한 해만 빼고 매년 함께 할 정도로 애정을 갖고 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할 때도 장기휴가를 내고 전주로 달려왔을 정도다. 그렇게 한 해 두어 달씩 전주에 체류하면서 영화제 일을 하던 중, 독립영화관 영사기사 채용에 응시해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는 노마드 같은 생활을 접고 아예 전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독립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작품은 하루 대여섯 편 정도다. 필름영사보다는 디지털영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영사기사 입장에서는 편리하다. 하지만 아날로그가 주는 감성과 재미는 기대할 수 없다. “필름은 시작과 끝 지점을 확인해서 이어 붙이고 그걸 릴에 걸어서 돌려야 하거든요. 디지털보다 힘들긴 한데 재미는 있죠. 필름이 돌아가는 게 보이니까요” 디지털이 필름을 대체한 지금, 영사기사의 전문성은 그만큼 덜 필요한 영역이 되어버렸다. 앞으로는 영사기사라는 직업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영사기사 자격증 시험 볼 때도 필름종목이 있긴 한데 갈수록 필름 자체가 사라지고 있죠. 앞으로는 아예 영사기사 직업 자체가 없어질 거에요. 시내에 새로 생기는 영화관에도 영사실 자체가 없다고 들었거든요”
영사기를 빠져나와 스크린을 향해 돌진하는 빛, 이선영씨는 그 빛을 좇아왔다. 그 빛이 영화에 대한 희망이며 애정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기계음 가득한 영사실을 외로이 지키면서도, 그리고 언젠가 사라질 공산이 큰 직업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그의 얼굴이 해맑은 이유는 그 빛을 좇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터뷰가 있던 날 저녁,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시네마천국을 보게 됐다.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각, 까까머리 중학생 때부터 토토를 꿈꿔온 이선영씨를 떠올렸다.
“넌 이 일을 하지 마라. 항상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야”
- 알프레도가 영사기사 일을 알려달라며 집요하게 요구하는 어린 토토에게 타이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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