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6.7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우정이란,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주는 것
<우리들>
김경태(2016-07-15 09:30:26)




초등학교 4학년인 '선'은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으며, 반에서 1등을 하는 '보라'가 그 선봉에 서 있다. 영화 <우리들>은 반 아이들이 피구 경기를 위해 편을 가르는 장면으로 시작하면서 이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은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경계선을 밟았다는 아이들의 지적을 받고 억울해하며 아웃된다. 카메라는 피구 경기가 진행되는 상황을 보여주기보다는 선의 변화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하는데 치중하면서, 서사의 논리적 전개를 따르기보다는 인물들의 정서적 미동에 감응하는 영화 관람 방식을 권한다.

때마침 전학을 온, 그리하여 선이 왕따라는 사실을 모르는 '지아'는 선의 유일한 친구가 되며 방학 동안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차이 앞에서 미묘한 감정의 기복을 보이며 마찰을 빚는다. 선에게는 김밥을 말아주는 다정한 엄마가 곁에 있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지아는 그런 선을 시기한다. 반면에 부유한 집안의 지아는 핸드폰도 있고 학원도 다니지만, 그만큼 넉넉하지 못한 선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공유할 수 없는 지점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차이는 점점 더 크게 다가오면서 그들의 관계는 소원해진다. 대신 지아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 보라와 친해지면서 선을 따돌리는데 동참한다.

지아는 전학 후에 치른 첫 번째 시험에서 만점을 받으면서 보라의 1등 자리를 빼앗는다. 그러자 지아는 보라의 또래집단에서 배제된다. 애초에 그 관계는 우정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생각이 없는 보라는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암묵적인 위계 속에 정해져 있는 자리를 넘보지 않는다는 전제 한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될 수 있는 '친절한 관계'에 불과하다. 보라가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자기애적 자아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신의 자리를 양보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 후, 보라는 학원에서 책상에 엎드려 울지만, 그것은 그 죽음을 애도하는 몸짓이 아니라 부정하는 몸짓이다. 보라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지아를 왜곡하고 흠집을 내며 집단 밖으로 밀쳐내는 선택을 한다. 일단, '우리' 집단에서 배제된 자의 행위는 악의적으로 재해석된다. 선에게 핀잔을 준 문구점 주인을 골탕 먹이고 동시에 선에게 선물하기 위해 색연필을 훔쳤던 지아의 행위는 이제 그저 도둑질에 불과하다. 앞서 그 색연필은 지아가 선을 비방하며 자신과 분리해내기 위해서 선물이 아니라 빌려준 것으로 한차례 의미가 대체된 적이 있다.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자기중심으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결국 지아와 선은 모두 보라에게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들은 그 탓을 서로에게 돌리며 서로의 치부를 경쟁하듯 반 아이들 앞에서 들춰낸다. 급기야 그들의 폭로전은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 선이기에 자신의 얼굴에 계속 상처를 입히는 친구와의 레슬링을 멈추지 않는 남동생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남동생은 친구와 함께 노는 즐거움을 위해 그 정도의 다툼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 감독은 친구 간의 다툼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그저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친절한 관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부딪힐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 싸움은 서로의 자기애적 자아를 파괴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명심해야할 태도는 그 다툼 속에서도 친구와 함께 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다는 대의를 잊는 않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편을 갈라 피구 시합을 하는 시퀀스로 처음과 대구를 이룬다. 아이들이 지아가 경계선을 밟았다고 몰아세우자 이번에는 선이 용기를 내어 지아의 결백을 주장한다. 곧바로 공에 맞아 아웃된 선과 진아는 나란히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여기에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것은 그들이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적으로 보여줄 뿐, 닫힌 화해 속에 그들을 안주시키지 않는 결말이다. 서로의 자리를 기꺼이 내 줄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그들은 반목과 화해를 성장의 토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우정은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열린 관계이기 때문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