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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 | 연재 [내가 만든 무대]
아, 서노송동 696번가
핑크빛 골목의 아름다운 변신을 상상하다
장시형(2017-01-20 11:11:29)



1950년대부터 2016년 지금까지,
200여 곳, 500여 명에서 지금은 40여 곳, 100여 명이 기거하는
善선하고 美아름다운 村마을이란 뜻을 가진 기이한 유리방 거리가 있다.

가로등도 신호등도 없고, 오가는 이도 거의 없는 이 거리는
매일 해질 무렵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상상의 첫 걸음, 696번가 프로젝트[P+INK]
696번가 프로젝트[P+INK]는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696번지,
전주시청 뒤편 성매매 집결지에 위치한 유휴공간에서
예술가와 함께 자유로운 예술실험을 시도해보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이다.
문화예술을 통한 새로운 관점으로 지역의 의제를 고민해보고,
낯선 공간에서 예술가의 작업프로세스를 함께 시도해보는 특별한 프로젝트이다.

696번가 프로젝트[P+INK]는 11월 28일부터 12월 11일까지 약 2주간, 위빙(직조), 사진, 목공예를 활용한 4개의 프로그램을 4명의 예술가, 그리고 48명의 참여자와 함께 했다.

첫 번째로 진행된 '가을 끝의 위빙클래스'는 바늘소녀(윤슬기)와 함께 직조를 배워보고, 이 공간에서 사용하던 높은 바의자를 이용한 협동 작품을 만들었다. 어쩌다 보니 모두 여성참가자로 이루어진 이 프로그램은 겨울이면 뜨개질을 하며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듯, 이 낯선 공간에 대한 첫 인상과 성매매, 여성, 문화, 변화, 꿈 등 다양한 키워드들을 각기 다른 시선을 공유하고, 소소한 변화를 꿈꿨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함께' 라는 제목의 사진아카이빙 프로그램은 송재한 작가와 함께했다. 창문하나 없는 작은 방들 중 가장 끝 방에서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찍히며,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은 '함께, 살자'라는 작가의 내민 슬로건처럼, 이 낯선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우리는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라는 따뜻한 약속을 하며 마쳤다.

696번가 공터에는 유독 오동나무가 많았는데, 예전 성매매 업소였던 걸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천진난만한 아트월 프로젝트'는 이 오동나무를 이용해 유리방에 참여자들이 각자의 의미와 테마를 가지고 모자이크를 만들어보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웅장한 전기톱소리, 사포질과 함께 안개처럼 휘날리는 톱밥들, 우렁찬 타카, 강렬한 목공본드냄새와 은은한 오동나무의 향까지 아트월은 그렇게 완성되어갔다.

가장 마지막으로 진행된 '아방가르드한 빛 만들기'는 흔히 홍등가라 불리는 이곳의 색깔을 좀 더 따뜻하게 품어주고, 감싸 안고 싶은 마음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이다. 역시나 696번가 공터의 오동나무로 이용해 각자의 빛을 만들어 이 공간에 따뜻한 색온도와 문화의 향기를 입혀보았다. 아직은 늦은 시간에 다니기엔 큰 용기가 필요한 골목이지만, 오가는 사람에게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아닐까.


다시 일상적인 골목, 당연해서 특별한 골목
2015년 11월, 선미촌 민관협의회 참여를 시작으로, 이 낯선 골목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상상을 조금이나마 실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지만, 미혼의 30대 초반의 여자가 고민하기엔 제법 벅찬 숙제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공간의 양쪽으로는 아직도 해질 무렵이면 영업이 진행 중이고, 리모델링을 전혀 하지 않은, 때론 불편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공간에서 과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는 있을지, 이 공간에 참여자가 올 수 있을지, 도망가는 건 아닌지 별별 걱정이 됐었다.

약 40여 일간 매일 이 골목을 드나들었지만, 696번가 프로젝트[P+INK]가 당장의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진 않았다. 프로젝트는 짧았고, 소소하고, 조금 서둘렀고, 미흡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입으로 내뱉기 차마 민망했던 이 골목에 다시 사람을 불러오고, 함께 사회적 과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이 소기의 목적달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선미촌 골목의 장소에 대한 기억과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다시 일상적인 골목으로, 이 일상이 당연해서 특별한 골목으로, 사랑스러운 핑크빛 골목의 변화를 다시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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