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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 | 연재 [TV토피아]
<쌈, 마이웨이> 멜로의 문법 바꿀 수 있을까?
박창우(2017-07-24 14:03:12)

대통령 개인의 취향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명박근혜 시대 유행을 탔던 멜로드라마 속 주인공은 대개 아무 이유 없이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곤 했다. <별에서 온 그대> 속 도민준(김수현 분)은 외계인이라는 설정 아래 시간을 막 멈추고 순간이동을 하며,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 박수하(이종석 분)는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태양의 후예> 유시진(송중기 분) 대위는 폭탄이 터져도 죽지 않고, <도깨비> 김신(공유 분)은 심지어 죽을 운명에 처한 사람을 살려내기까지 한다. 정말, 대단하다.

IMF 이후 제작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대부분 재벌 2세 혹은 경제적 여유가 넘치는 사장님 부류였다면, 지난 '잃어버린 9년' 동안에는 만화나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법한 능력자들이 안방극장의 '여심저격수'로 활약한 것이다.

사실 멜로와 판타지의 결합은 신데렐라 스토리가 시청자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일종의 생존전략에 가까웠다. 문제는 편향성이다. 유행에 민감한 작가와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오로지 남자주인공 능력치 개발에만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요즘 멜로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은 자기가 본 모든 것을 빠짐없이 머리에 기억하거나 혹은 자유롭게 시간여행을 즐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각박한 현실을 잠깐이나마 잊게 해준다는 점에서 판타지멜로의 효용성은 충분하다. 특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청춘들을 향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사회라면 더더욱.

다만, 화려하고 거창한 설정과 구조를 앞세운 판타지멜로가 판을 치면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동시대적인 청춘멜로나 정통멜로는 어딘지 싱겁고 진부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최근 방영 중인 KBS 월화 드라마 <쌈, 마이웨이>는 남들보다 스펙도 뒤처지고 내세울 건 없지만, 그럼에도 당당히 '나의 길'을 가겠노라고 선언하는 청춘들의 도전과 성장, 그리고 그들이 엮어내는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마치 90년대 유행했던 청춘멜로의 전형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드라마 속 캐릭터는 훨씬 더 입체적이고 복합적이며, 동시에 현실적이다. 자존심 하나면 버리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순간에도 이들은 결코 비루한 길을 걷지 않는다.

남들 이력서 채울 시간에 뭐 했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당당히 돈 벌었다고 말할 줄 아는 최애라(김지원 분), 그리고 갑질 하는 현실에 시원한 돌려차기를 날리는 고동만(박서준 분)의 모습은 그 자체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위로가 된다. 또한, 초능력을 활용해서 목숨을 구해주거나 순간이동, 시간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남녀 사이 썸은 만들어지고, 동네 편의점과 옥탑방도 얼마든지 로맨틱한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일류 호텔과 로펌, 그리고 유럽이나 비행기 안에서만 사랑이 싹트는 건 아닐진대, 왜 멜로의 문법은 그렇게 굳어진 것일까. 10%내외의 시청률을 오가며 아직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쌈, 마이웨이>와 같은 청춘멜로가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끝으로, 요즘 <쌈, 마이웨이>와 같은 현실적인 청춘멜로가 더 끌리는 이유가 이제 시대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에서 비롯됐는지, 아니면 나이를 더 먹어가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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