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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그 해 6월, ‘우리들’의 뜨거운 기억…
최규석 『100℃』
이휘현(2018-03-15 10:27:06)



얼마 전 아내와 영화를 보았다. 단 둘이서 극장을 찾은 게 오랜만이라 가슴이 설렐 만도 했건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못했다. 아내의 기분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자마자 아내는 대뜸 "영화에 나왔던 내용들이 정말 사실이야?"라고 물었다. 영화 <1987>에 관한 이야기였다.

6월 항쟁 당시 부산의 10살 소녀였던 아내에게는 영화 속 이야기들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때 중2였던 나는 비록 시골에 살고 있었지만, 신문을 열독하던 옆집 삼촌을 통해 당시의 열기를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해 6월 나와 내 동급생들의 수학여행지는 바로 서울이었다. 거대한 도시 풍경과 함께 버스 안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던 최루탄의 매운 연기. 1987년 6월에 대한 내 기억은 그렇게 매캐한 공기와 함께 역사의 격랑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


내가 최규석의 만화책 <100℃>를 읽게 된 건 영화 <1987>을 보고나서다. 이런 만화책이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서점에서 기웃거리다가 발견하기는 했는데,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1987년 6월의 일은 이제 아득한 역사처럼만 느껴진 탓도 있고, 어쨌거나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 시절의 어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관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최규석의 만화책 <100℃>를 읽는다는 건, 내가 맞닥뜨린 암울한 '현재'와 대면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이 세상에 까발려지고 그간 권력의 정점에서 벌어지던 치부들이 드러나자, 수많은 촛불이 광장을 채우고 또 긴 시간 멈추거나 혹은 뒷걸음질 하던 민주주의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패배와 좌절의 먹구름에 가려있던 희망이라는 이름의 심장에 조금씩 볕이 들기 시작하자, 다시 세상의 소리에 나의 귀가 반응했다. 영화 <1987>은 그렇게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최규석의 만화책 <100℃>를 읽는 것으로 응답했다.


영호라는 아이는 반공소년이다. 아니, 반공소년이라기 보다는 반공이 종교처럼 떠받들어지던 시대의 교실에서 착실하게 모범생으로 커온 아이다. 그런 영호가 가난한 부모님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 해, 1985년의 봄은 민주주의의 씨앗이 땅위로 움트기에는 너무나 추운 계절이었다. 캠퍼스 안에서 암암리에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이 폭로되고 있었지만, 그 충격을 애써 억누르며 신입생 영호는 주변의 운동권 학생들을 그저 못마땅하게 바라볼 따름이다.
<100℃>는 냉소적이던 영호가 어떻게 역사의 격랑 속으로 투신하게 되고, 또 그 과정에서 영호의 주변 사람들이, 그리고 대한민국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 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종점은 1987년 6월의 광장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여러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나마 입체적인 캐릭터를 꼽자면 영호의 어머니와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호의 어머니에게는 굉장한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으로 무고한 부모님이 학살당하고, 자신은 '빨갱이의 자식'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 레드 콤플렉스는 순전히 피해자로서 체득하게 된 공포로서의 그것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집안의 자랑이던 막내아들의 투옥 소식은 청천벽력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다시 자신의 삶에 드리운 '이념'의 망령에 진저리친다. 아들이 원망스럽다. 바로 그 때 그녀에게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양심수 가족들이 다가온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호의 어머니는 자신이 죄인(혹은 죄인의 자식)이 아님을 차츰 자각하게 된다. 아들 영호도 진짜 죄인은 아니었다. 이제 그녀는 투사로 변신한다. 배움은 짧지만 세상의 상식은 안다. 다만, 그런 상식이 한반도의 분단 상황 속에서 심하게 굴절되었음을 깨닫게 된 것 뿐이다.
<100℃>의 전 이야기를 통해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신하는 어머니에 비해 영호의 아버지는 여전히 냉소적이다. 집안일 마다하고 아들의 옥바라지와 구명 활동에 전념하는 아내를 타박한다. "그런다고 세상이 변해?" 그건 신입생 시절 영호가 주변 운동권 친구들에게 건넸던 냉소이기도 했다.
1987년 1월 14일, 영호의 친한 선배 박종철이 수사관들의 모진 고문으로 죽는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영화 <1987>에서 전개되듯 이한열의 죽음과 6.29선언을 향해 숨 가쁘게 돌진한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물을 얼마나 더 때야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그래서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100℃> -94쪽-


영호의 옆방 양심수가 절망하는 영호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허허허."(95쪽)


1987년 6월의 거리는 학생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까지 합세하면서 100도씨의 위력을 발휘한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철옹성 같던 영호의 아버지도 그 거리의 뜨거움 속에서 결국 시대의 공기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모두가 뜨거웠던' 시간은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준 것일까.
우리는 그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그 해 겨울 치러진 대선의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쓰라린 패배의 감정을 안겨주었다. 누군가는 그 해를 '미완'이라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좌절'이라고도 말한다.
그 후 30년이 지났다. 우리는 지난 해 겨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을 경험하면서 성숙한 시민이 되었음을 전 세계에 자랑스러워했다. 그 견고한 뿌리가 1987년 6월, 저 차가운 독재의 언 땅을 뚫고 피어난 시민들의 100도씨 열정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민주주의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어딘가에 있는 종점이 아니라 그 종점을 향해 걸어가는 길목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여정은 여전히 고달플 것이다. 섣불리 희망을 설파해서도 안 된다. 다만,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서로 손 맞잡고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1987년 6월의 뜨거운 기억이 살아있으므로, 우리는 여전히 전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6월 항쟁 20주년에 쓰여 진 만화 <100℃>와, 30주년에 제작된 영화 <1987>은, 그러므로 그 새삼스런 자각의 결과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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