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8.6 | 연재 [여행유감]
다시 걷는 그 때, 그 기억
장인석의 일본여행
장인석(2018-07-13 12:06:55)


그저 그렇게 어제처럼 오늘을 살아가던 어느 날.
무심코 달력을 보니 눈에 들어오는 건 나의 생일이었다.

새삼스럽게도 생일이 길었다. 마음의 한 구석이 휑하니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하면 적당한 표현일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다른 이들도 그럴테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조금 슬프고 외로운 감성에 휩싸여 있을 때는 SNS를 휘적거리거나 외장하드에 담겨진 지난날들의 사진을 뒤적거리고는 한다. 유난히 눈길이 머물 던 사진폴더 하나. 2010년의 오사카 여행.


졸업반이었던 그 당시의 나는 학교 후배 두 녀석의 오사카 기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후배 두 녀석은 보호자가 필요했었나보다. 그렇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여행의 시작.


열흘 남짓 동안 머물었던 일본의 세 도시. 오사카, 교토, 나라를 누비며 찍었던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다시 그 날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다시 그날을 걷고 싶었다 사실.

그래서 떠났다. 8년이 지난 올해, 다시 그 곳으로 떠났다.
그 자리에서 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태였다. 티켓값은 물론 숙박비도 싼 가격으로 구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참 이상하더라. 분명 누가 봐도 억지스럽고 우악스러운 여정이었다. 그런데 참 신났었다. 번갯불에 구워 먹은 콩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여행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이미 있었다고 봐야겠지. 그냥 다시 가보고 싶었다. 8년 전 걸었던 오사카의 그 거리를.
가보지 않은 명소를 가고 싶진 않았다. 그저 다시, 다시 그 거리를 가고 싶었다.


정신차려보니 이미 나는 오사카 간사이 공항.
챙겨온 여장이라고는 가벼운 옷가지 몇 벌과 8년 전 그 때의 사진 몇 장.
물론 모든 장소를 다시 가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시간적인 여유가 넉넉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질러버린 여행 치고 2박3일은 직장인에게는 행운일수도 있겠다.

정신없이 수속을 마치고 서둘러 발길을 옮긴 그 때의 그 장소.
첫 번째 여행지는 오사카에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으레, 제일 먼저 가게 되는 도톤보리.
처음으로 가게 되는 이유는 당연한 이유다. 도착하면 거의 모든 여행객들이 출출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은 번화가 가게 되는 자연스러운 이치.

그 때도 우리는 오사카를 여행하는 한국사람들이면 무조건 간다는 라면집 '이치란'에 가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핫플'을 뒤로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8년 전에는 현지 유학생들의 추천을 받아서 리스트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때 그 골목을 누비며 들렀던 맛있는 음식점들은 거의 찾기 힘들었다. 한 편으로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관광지의 상권은 여름밤 날씨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인가.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잠시 들른 편의점의 종업원에게 추천 받은 라면집을 가게 되었다. 당연히 맛은 엄청났다. 배가 고팠으니까. 몹시.

간단하고도 격렬하게 마친 식사를 뒤로 하니 챙겨 온 사진이 보인다.
도톤보리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면 으레 찍게 되는 구리코상의 모습. 우리도 그 사진을 찍었었지. 밀려드는 인파를 뚫고 그 날 찍은 사진을 피사체 삼아 사진을 찍어보았다. 젠장, 챙겨온 게 너무나도 없었다. 그 때 그 길을 걸어보겠다며 방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카메라조차 가져오지 않았 던 것이다. 후회한들 바뀌는 것이 있을까. 그냥 열심히 이리저리 스마트폰을 돌려가며 사진을 찍어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이제야 사진 속 그 후배녀석들이 생각난다.

발랄하기가 짝이 없었 던 그 녀석들, 지금은 잘 살고 있을까.
소식은 건너건너 전해 듣고 있긴 했다. 두 녀석 모두 자기를 쏙 닮은 예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두리뭉실 더 커진 둔부와 어두워진 낯빛말고 또 무엇이 달라졌을까. 인파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번잡한 거리 한 가운데 우두커니 기대서서 또 새삼스럽게 밀려드는 회한에 울적해졌다.

남은 일정을 쪼개 들렀던 명소는 오사카성과 츠텐가쿠타워, 시텐노지 세 곳이었다.
오사카성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활기찼다. 여전히 그 곳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유적지이며 동시에 오사카 시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공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햇살을 한껏 받으며 뛰노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깅을 하는 어른들, 그 어른들이 더 어른이 되어 벤치에 기대어 있는 모습들은 나로 하여금 '공원'이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때 마침 한국은 미세먼지로 고생중이었다. 조금은 미안했다. 이런 좋은 공기와 한적한 풍경이라니. 왠 호사인가 싶기도 했다.

시텐노지는 우리말로 사천왕사이다. 사천왕이 모셔져 있는 일본식 절. 도심 한가운에 위치한 시텐노지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심지어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그 모습까지도 말이다. 물론 지난 8년 간 여전히 공사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테다. 때 마침 내가 들른 그 시간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을테다. 인상 깊었 던 모습은 공사중인 시텐노지를 폐쇄하지 않는 모습이다. 절 마당을 개방하여 플리마켓을 열고 있었다. 없는 게 없는 그 플리마켓은 시텐노지 4방향의 마당을 꽉 채운 꽤나 큰 규모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 있었다.

해가 지고 난 후에 들른 장소가 츠텐가쿠 타워. 오사카 타워의 거대한 위용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한적함도 함께 가지고 있던 츠텐가쿠 타워는 직장인들이 퇴근 후 잠시 들러 여흥을 즐기기에 적당한 오락거리들을 가지고 있다. 반가운 모습은 이 곳에서 만났다. 도톤보리에서 찾기 힘들었던 8년전 먹었 던 맛있는 음식.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있었다. 조그마한 철판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인장이 직접 해주는 '오코노미야키'를 먹을 수 있는 그 음식점.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그 맛을 내어주고 있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음식이 나온 뒤에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덕분에 주인장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며 질문을 받아 조금은 죄송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니 며칠은 훌쩍 지나가버렸다. 8년전 그 날의 기억을 걷다보니 벌써 돌아갈 시간. 어쩔 수 있나, 다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사진을 많이 찍는다.
잘 찍어낸 사진은 나의 여행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다.
지친 일상을 달래기 위해 꺼내어 본 사진들, 그리고 다시 떠난 그 여행길.

사실 생각만큼 벅차오르거나 감동스럽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 여행지는 여행객들을 위해 그 자리에서 변화무쌍한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기에 그 때 그 시간이 오롯이 나에게 돌아오지는 않았기 때문일까.
그래도 한 번쯤 다시 그 여정을 걸어보는 여행은 많은 이들에게 추천해보고 싶다.
그 나름의 재미가 꽤 독특한 재미를 준다.

그 전에 먼저, 지난 여행들을 되돌아보자. 그 것부터 당장!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