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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나는 외롭지 않다
고종석, 황인숙 『황인숙이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
이휘현(2018-12-31 11:32:14)



정치인 노회찬이 자신의 생을 내던진 그 날, 그러니까 어느 유력 정치인의 현실적 고뇌와 결단에 많은 사람들이 허망해 하고 또 가슴 아파하던 지난 7월의 어느 날, 나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술잔을 기울여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충격과 슬픔의 자장 안에 내가 쉽게 발을 디딜 수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도 그 날 하루 나에게 더 큰 상실감을 주었던 고유명사는 노회찬이 아니라 최인훈이었기 때문이다.
노회찬이 투신한 날 최인훈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세상에 떠도는 말들은 온통 유명 정치인의 죽음이었다. 팔십이 넘은 자의 죽음에 어느 정도의 자연스러움이 배어있다 해도, 한국 현대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가 이렇게 무명의 죽음으로 떠나는 것은 온당한 일인가. 격류에 요동치던 지난 세기의 광장에서 절망하던 회색인의 운명처럼, 그렇게, 최인훈의 죽음 또한 시대의 소란 속에 조용히 쓸려가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최인훈의 삶은 자신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광장>의 이명준과 겹친다. 세상의 큰 목소리에 쉬이 동화되지 못했던 그는 살아서도 이명준이었고 죽어서도 이명준이었다.
그렇게 떠내려간 무명의 죽음은, 그러나 나에게는 청춘의 기억 속 한 공간에 묘비명을 하나 세워야 하는 일이었다. <광장> <회색인>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총독의 소리> 등 그의 소설들이 내 청춘에 새긴 인장은 작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날 나는 슬펐다. 하지만 주변의 누구와도 그 슬픔을 나눌 수 없어서 나는 외로웠다.
만약 K가 나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면 좀 나았을까? 아마도.
다른 건 몰라도 그 날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상실과 슬픔을 공유했을 것이다. 한동안 묻어두었던 청춘의 속살들을 꺼내 어루만지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 옛날 신열에 들 떠 넘기던 최인훈의 페이지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지 서로에게 물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K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서울과 내가 살고 있는 전주 사이에는 2-3시간의 물리적 교통시간을 넘어 그 이상의 정서적 간극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일상이라고 하는 각자의 삶이 둘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하고 있다. 각자 나이 마흔이 넘은 후부터는 좀 무덤덤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서로의 빈자리가 못 견디게 허전함으로 다가오는 날이 있게 마련이다. 작가 최인훈이 죽은 날도 아마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며칠 <황인숙이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을 읽으며 나는 계속 K를 떠올렸다. 밤새 떠들어대어도 지겹지 않은 친구를 마주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책을 읽는 내내 황인숙과 고종석이 못내 부러웠다. 그들의 건재한 우정과 연대에 질투가 솟았다.
돌이켜 보면 나와 K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만나면 신났고,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누며 밤새도록 떠들어대었던 날들. 주로 책과 영화와 음악 이야기로 흥이 났는데, 그러다가 어느 때에는 아예 같은 지붕 아래서 몇 달을 함께 지낸 적도 있었다. 아직 젊음이 온전하게 심신을 버텨주던 시간이었으므로 우리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십 오 년 전 ‘서울 이문동 시절’로 기억되는 그 때, 나와 K가 즐겨 읽은 책들 중에는 고종석도 한 자리 하고 있었다. 당시 그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곧장 서점 신간 코너로 달려가야 함을 의미했다. 고종석이라는 고유명사는 그 만큼 우리에게 세상을 내다보는 큰 창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소설, 역사, 언어, 문학비평, 사회비평 등 수십 권의 저서로 보여준 지식인으로서의 넓은 스펙트럼이 경이로웠던 것은 차치하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가 세상을 해석해 내는 치열한 균형감각이 좋았다. 시대의 물살에 쉽게 쓸려가지 않으면서 오롯이 냉정한 시선으로 세상을 읽어낼 수 있는 지성의 맷집.
그 회색의 시선을 누군가는 신중함이라 말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회의주의라 말할 것이다. 비겁과 환멸을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보수주의라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현실주의라 옹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어차피 이 모든 평가들은 염세주의라고 하는 큰 틀 안에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나는 염세주의자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는 섣부른 희망에 내 마음을 의탁하지 않는다. 한국인들 특유의 쏠림 현상에 본능적 거부감이 있고, 무엇이든 쉽사리 믿는 성격도 못 된다. 막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그런 기질을 애써 부정해 보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얻어낸 답은 내가 운명처럼 안고 태어난 내 심신의 기질을 쉽사리 바꿀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걸 긍정하는 데에는 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시절 나에게 “너 괜찮아”라고 말해준 글쟁이가 바로 고종석이었다.
나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런 기질이 그리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다 고종석이라는 마음의 스승을 만나면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렇게 내 이십대 중후반부터 삼십대 초반까지의 마음 풍경은 고종석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풍요로울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그늘 속에서 나는 최인훈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고 김훈, 칼 포퍼 등 수많은 작가와 사상가들의 삶과 생각을 체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십 여 년 직장을 핑계로 예전 같지 않은 독서력에 마음이 작아져 갈 때 고종석이라는 이름 또한 내 삶의 공간에서 서서히 존재감을 잃어갔다. 그 사이 습관처럼 그의 신간을 사서 읽기는 했으나 예전 같은 감흥은 잘 생기지 않았고, 또 어느 날인가는 그의 절필 소식을 풍문처럼 듣기도 했으나 내 마음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변한 것은 그의 필력이었을까. 아니면 내 마음이었을까. 둘 다 일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변한 것은 없었다. 세상을 향한 그의 목소리도, 또 그에게 귀 기울이는 나도, 변한 것은 없었다. <황인숙이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에서 고종석은 여전히 세상의 주류라는 것들과 날을 세우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의 목소리에 안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번 책은 고종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온 책 중 처음으로 고종석이 글을 쓰지 않은 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제목에서 엿보이듯 이 책은 대담집이다. 그런데 또 대담집이라고 하기에는 두 오랜 친구의 두서없는 대화록처럼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지러움 속에 고종석이라는 우주의 공기가 그대로 녹아있으니, 그의 애독자라면 추천할 만한 책이다.
지난 세기 말 그가 자신의 생각을 깔끔한 문장으로 정리해 세상에 민감한 화두를 던져주었던 <코드 훔치기>의 현재 버전이자(참고로 <코드 훔치기>는 내가 가장 아끼는 책 중 하나다), 시인 황인숙이라는 오랜 벗과의 끈끈한 연대를 보여주는 이 책은 오랜 시간 잠자고 있던 내 청춘의 세포들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에게 고마웠고, 또 질투가 났다. 지금보다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고 그 시간을 함께 채워주었던 K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아직 외롭지 않음을.
오랜만에 K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그리고 고종석의 건재함을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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