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9.1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음악영화를 넘어 우정의 서사로
<보헤미안 랩소디>
김경태(2019-01-15 12:43:43)



<보헤미안 랩소디>는 80년대의 전설적인 록그룹 '퀸'의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영화이자 그 리더인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이다. 2018년 10월 31일에 국내 개봉한 이 영화는 장기간 박스오피스 선두를 굳건히 지키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2018년 12월 18일)에는 관객수가 무려 800만 명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이 정도면, 그저 80년대를 향수하는 세대에 기댄 '추억 팔이'로 치부할 수 없는 막강한 흥행력이다. 제각기 그 원인을 다르게 찾을 수 있겠지만, 퀸의 음악이 지닌 시대를 초월한 호소력에 무엇보다 가장 큰 공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그 표면적으로 두드러진 장르적 완성도의 이면을 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퀸의 음악에 이끌려 극장을 찾은 그 수많은 관객들이 뜻하지 않게 마주하는 숨겨진 장르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에 대한 감동어린 회고이자 귀를 사로잡는 락 뮤지컬이라는 가시적이고 대중적인 특징 뒤로, 게이 시대극이 조용히 잠복해 있다. 전자를 즐기려던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후자를 일별한다. 따라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악영화일 뿐만 아니라 과거 게이들의 일상이 투영된 '퀴어영화'이기도 하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퀴어영화를 경유해 우정의 서사를 펼쳐 보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보헤미만 랩소디>를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는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이다. 앞서 또 다른 게이 감독인 토드 헤인즈가 <캐롤>(2015)로 50년대 레즈비언의 삶을 반추했듯이, 브라이언 싱어는 이 영화를 통해 7,80년대의 게이 하위문화를 돌아보고 있다. 이 두 영화는 모두 현재의 동성결혼 합법화 시대를 역행하며, 그렇지 못해서 불행할 것이라 가정된 먼 과거의 동성애자들을 회상한다. 그 감독들은 힘들게 쟁취한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않고서 왜 동성애 억압적이었던 과거를 스크린 위로 불러오는 것일까? 특히, 훌륭한 뮤지션이기에 앞서 게이로서 머큐리가 보낸 온 80년대의 삶은 현재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스타에 오른 머큐리는 뒤늦게 성 정체성을 자각하고 오랜 연인이었던 '메리'에게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곁에 끝가지 친구로 남고자 하지만, 머큐리는 그녀에 대한 감정의 혼란을 겪는다. 한편, 게이 매니저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콧수염을 기르며 가죽 자켓을 입는다. 이는 당시 게이 공동체 사이에서 유행하던 패션을 따라하며 서로 간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 이른바 '클론clone 문화'에 동참하는 것이다. 머큐리는 그 동일한 외향을 한 게이 친구들과 방탕하게 어울려 놀고, 매니저는 그런 그에게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를 이용한다. 반대로, 머큐리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퀸의 다른 이성애자 멤버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규정하고 그들과 멀어진다. 보다 못한 메리가 그에게 찾아가, 진정한 친구가 어느 쪽인지를 물어온다. 또 다시 뒤늦은 깨달음으로 매니저를 버리고 멤버들을 찾아가 용서를 빌며 손을 내민다. 그 모든 우여곡절 끝에, 메리와의 관계와 멤버들과의 관계는 모두 우정으로 승화되어 더 단단해진다.


영화는 같은 성을 사랑하고 같은 하위문화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 성 정체성이나 취향의 공유를 넘어 서로를 위해 진실을 말할 수는 용기 속에서만 진정한 우정이 싹틀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감독이 머큐리의 삶을 스크린 위로 복원해낸,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목적일 것이다. 이제 그 과거는 현재와 비교해 그저 뒤처지고 퇴보된 시대로 치부할 수 없는 '오래된 미래'처럼 오늘날의 교착된 규범적 관계성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고민해야할 지점은 더 이상 '차이'가 아니라 '관계'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관객들은 머큐리의 뒤늦은 깨달음에 동참할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