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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 | 연재 [전호용의 음식 칼럼 <자급>]
나만의 사정
두번째
전호용(2019-02-25 14:58:56)

 나는 지난해 나의 논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농장주 A씨의 땅을 관리해주는 일을 겸했었다. A씨의 땅은 전주, 완주, 진안 등지에 산재해 있었는데 모두 합해 12000평 정도의 규모였다. 그의 땅은 하나같이 해가 잘 드는 남향에 위치해 있었고 토질도 훌륭해서 어떤 작물을 길러도 농사가 잘 될 것 같았지만 감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는 것이 다였다. 처음 A씨의 의뢰로 그의 땅에 갔을 때가 5월이었는데 잡초가 내 키높이로 자라 있었고 감나무는 드문드문 심어져있어 마치 황무지처럼 보였다. 그 땅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예초기를 이용해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잡초로 뒤덮인 땅 앞에 섰을 때 A씨의 의도가 무었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농지 취득 후 사후관리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지난해 3000여 평의 토지에 농사를 지어 1000만 원 가량의 매출을 냈고 이 중 농기계 이용료와 친환경 인증료를 비롯해 비료, 농약, 종자와 같은 것을 구입하는 비용을 제하고 700만 원 가량의 순수익을 남겼다. 한 사람의 연봉 치고는 너무도 야박한 수준이어서 이곳저곳에서 품을 팔아 1년을 살아냈다.


 지난해 가을, 추수를 마치고는 너무도 허무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게 되었다. 기왕지사 농사짓는 것인데 땅을 임대해 파이라도 키우면 지금보다는 수익이 나아지지 않겠나 싶은 생각에 임대로 내놓은 농지를 수소문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시골을 돌아다니다 보면 농사를 짓지 않고 버려둔 땅이 수없이 많지만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에게 임대하려는 사람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A씨에게 당신의 땅을 임대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고 그의 대답을 통해 얼마간의 의문점을 풀 수 있었다.


 A씨는 6년 전 완주군에 소재한 농지를 매입했었다. 이전부터 전주와 진안에 농지를 소유하고 있던 그에게 농지매입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지 않았지만 법적으로는 농업인이었으므로 농지를 구매하는 행위는 타당한 것이었고 저리의 융자금으로 농지를 매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8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농지를 매입한 사람이 8년 이내에 그 농지를 매도할 경우에는 양도세와 취득세를 비롯한 여러 가지 페널티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냥 8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땅을 묵히느니 임대를 주는 편이 좋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럴 바에야 태양열을 하고 말지 소작은 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는 법적인 분쟁이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농지임대에도 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는데 임대료 조금 받겠다고 문제꺼리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적당히 나무 몇 그루 심고 풀이나 깎아주며 농업인 행세를 하면 직불금을 비롯해 농업인으로써 누릴 수 있는 특혜도 상당하기 때문이리라. 또한 한국이란 나라에서 8년이란 시간을 견디면 땅값은 자연스럽게 오르지 않던가.


 A씨의 입장이야 그럴 테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의 입장은 전혀 다른 모퉁이에 몰릴 수밖에 없다. 농지의 임대료는 연세로 계산되는데, 암묵적으로 평당 1000원이다. 양지바르고 소출이 많은 토지는 1500원도 받는다지만 일반적으로 1000원으로 본다. 평당 1000원이면 3000평에 300만원이다. 앞서 말했듯이 3000평 농사지어 얻는 연 소득이 700만원인데 임대료로 300만원을 내야하면 남는 것은 겨우 400만원이다. 연 4000만원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30000평을 농사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삼·만·평! A씨가 소유한 땅 12000평을 모두 임대했을 때 연간 1200만원의 임대료를 얻을 수 있지만 A씨는 그 땅을 임대하지 않고 일용직을 고용해 얼마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경작사실확인서'를 받는 것으로 만족한다. 1200만원이란 수익이 별스럽지 않거나 그 보다 더 큰 이득이 있기 때문이리라.
 
완주군에 있는 A씨의 땅에서 풀을 깎고 있을 때 마을 노인 한 분이 지나다 나를 불러 세웠다. 이 좋은 땅에 풀 농사를 짓느냐는 머퉁이로 운을 뗀 노인은, "아무리 제 땅이라지만 이러믄 못쓰는 거여. 여그는 해 잘 들고, 흙 좋고, 물난리 걱정 없어서 이 동네선 젤로 좋은 땅였어. 다 생각이 있어서 사들인 땅일테지만 평생 봐왔던 좋은 땅을 이렇게 내방쳐둔게 속이 상해서 허는 말이네. 글고 나무도 서로 어우러져야 잘 크는거여. 저렇게 띄엄띄엄 심으믄 못견디고 죽어. 째깐헌 나무가 벌판에 혼자 서가꼬 풀에 치고 바람타고.... 살겄는가. 사람이나 나무나 사는 것이 뭐 그리 다르겄는가. 사이사이 나무 한 그루씩 더 심고 풀도 자주 깎어주고 그려."라고 말씀하시고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노인이라고 세상물정이나 저간의 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가 자본으로 규정지어지는 세상에서 땅의 가치 또한 평 당 단가가 얼마인가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그 땅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대한 모독이자 그 땅을 일구고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지 않을까. 노인의 불편함은 여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농사짓는 땅 3000평에서 나온 소득은 700만원이다. 토지 가격이 3억원이라 치면 1년 수익률이 2.3%에 불과하다. 단순히 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얻어진 수익이 아니라 나와 내 어미의 노동력을 투여한 결과물이다. 자본의 논리대로라면 당장 땅을 팔아 은행에 집어넣고 이자를 얻는 편이 나으며, 대농의 머슴으로 들어가 일당을 받는 편이 나으리라. 그러나 그 땅에는 1년 내내 백여 가지가 넘는 작물과 곡식이 길러지고 그것으로 밥을 짓고 장을 담고 국을 끓이고 김장을 담는다. 그 땅에는 닭들이 살고 있는 닭장이 있으며 농사지어 얻은 곡식을 먹여 알을 얻고 고기도 얻는다. 그것을 하나하나 돈으로 계산할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난 것들이 나와 내 가족의 목숨을 살리고 있느냐로 가늠한다면 땅은 돈이 아니라 삶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땅으로 돈이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가는 사이 삶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로 변해간다. 개발, 귀농귀촌, 친환경, 상생 따위의 듣기 좋고 보기 좋은 허울을 뒤집어 쓴 자본의 논리가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사람들의 마음마저도 불모지로 만들어버렸다. 자급은 이러한 자본의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각자의 노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구호를 외치지만 자본의 논리 앞에선 어불성설이다. 각자가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에서야 비로소 공동체는 형성되고 새로운 형태로 복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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