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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 | 연재 [백제기행]
오래된 공간, 도시의 미래를 열다 [부산]
부산 이곳
이정우(2019-04-16 12:55:09)

맛이 입증하는 최고 어묵의 위엄 <삼진어묵>
한국의 어묵은 본래 일제시대에 들어왔으며,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최초의 어묵공장은 부평동시장에서 시작한 동광식품(창업주 이상조)이다. 1953년에는 일본에서 어묵제조 기술을 배워 온 박재덕 씨가 영도 봉래시장 입구에 삼진어묵을 설립한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어묵 공장이다. 때마침 한국전쟁이 발발해 피난민이 대거 부산으로 유입되자 어묵 생산은 호황을 맞기 시작한다. 이즈음 동광식품과 삼진어묵의 공장장 출신이 합작해 영주동시장에 환공어묵을 설립하게 된다.
1950년~1960년대에 미도, 환공, 삼진, 동광, 대원, 영진 등의 어묵 제조 공장이 생겨나며 어묵업계는 춘추전국시대를 맞는다. 대기업 제품으로는 1985년 삼호 F&G에서 만들었다. 이 때 "어묵"이라는 이름을 처음 썼다. 단, 어묵이라는 이름 자체는 신문 상으로는 1969년에 처음 등장한다. 1990년대 초에 소위 "부산어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마차에서 먹는 어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부산어묵은 앞의 부산어묵과는 달리 길쭉한 모양의 어묵을 부르는 말이 되었다.


항구 도시 부산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깡깡이예술마을>
깡깡이마을은 자갈치시장 건너편, 영도대교, 남항대교와 맞닿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버선 형상의 마을이다. '깡깡이'는 수리조선소에서 하는 작업으로 배 표면에 녹이 슬어 너덜너덜해진 페인트나 조개껍데기를 망치로 두드려 벗겨낼 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하여 붙여진 말로, 수리조선업을 주로 하는 대평동에서는 예부터 깡깡 소리가 마을 너머까지 울려 퍼져  깡깡이마을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깡깡이마을은 예부터 수리조선소 마을로 알려져 왔다. 19세기 후반, 우리나라 최초로 바람이 아닌 근대식 발동기를 사용해 동력을 얻는 방식으로 배를 만든 '다나카 조선소'와 '나카무라 조선소'가 세워졌던 대한민국 수리조선산업의 발상지다. 7~80년대 마을이 한창 수리조선으로 번성하던 무렵, 수리조선소에 배가 들어오면 뱃전이나 탱크에 붙은 녹과 조개류를 떼어내는 '깡깡이질'을 하던 이들은 깡깡이마을의 중년 여인들이었다. 그런 여인들을 부르던 말이 바로 '깡깡이 아지매'다. 깡깡이질을 하던 마을 여성들과 힘든 노동을 담당했던 남성들도 모두 가난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자식을 건사하기 위해 힘든 수리조선일을 억척스럽게 해냈다. 그런 연유로 '깡깡이'이라는 말은 이곳이 조선소 마을임을 상징하는 단어이자 마을 주민들의 근면함과 끈기를 떠올리게 해주는 마을 명칭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주민, 생활과 더욱 가까운 도시재생 <대통전수방>
주식회사 삼진어묵에서 설립한 사단법인인 삼진이음. 영도구 봉래동에 '대통전수방'을 개소해 사회공헌사업을 시작했다.
대통전수방에서는 지역 장인들과 청년들을 이어주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영도에는 어묵, 칼, 정장, 국수 등 몇 십 년 동안 쉬지 않고 기술과 노하우를 닦아온 장인들이 잇다. 하지만 이미 은퇴하실 나이가 되어가지만 전수해줄 대상을 찾지 못한 장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대로라면 이 기술들은 사라지고 만다.
대통전수방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청년들이 이런 장인들에게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삼진어묵 기념관 2층에 기술 전수방을 마련하여 교육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청년들은 기술을 배운 뒤 창업을 위한 준비과정을 거치게 되며, 창업 이후에도 다양한 것들을 지원한다.
이 사업 외에 대통전수방프리마켓과 도시재생 사업도 진행한다. 영도 부산대교 인근에는 오래된 창고들이 밀집된 지역과 노후 주거지역이 있다. 이 지역을 대상으로 창의산업공간 조성, 창구군 파사드(외관) 정비, 역사자원 발굴, 주거지원 사업 등을 진행한다. 별도로 도시재생 대학, 통합 브랜드 등 교욱과 지역브랜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업유산의 시대적 의미 해석
'F1963'은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 동안 철 와이어를 생산하던  '고려제강 옛 수영공장'(전체 2만2279㎡)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의 'F'는 Factory, FineArt, Forest, Family의 의미를 담고 있다. 
F1963의 리모델링 개념은 '세 개의 네모'로 구성된다. 첫 번째 네모는 공장의 중앙부를 창의적으로 뚫어 낸 열린 중정이다. 자연과 문화의 접점을 이루는 이곳에서는 각종 공연과 이벤트가 펼쳐진다. 이를 둘러싸고 있는 두 번째 네모는 한 잔의 커피와 쉼을 제공하며, 다시 이를 위요하는 세 번째 네모에서는 문화의 향연이 펼쳐진다. 세 개의 네모 사이사이마다 흙과 풀, 콘크리트와 철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옛 공장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벽체와 바닥에 간직되어 새로운 문화로, 또한 옛 공장의 기억들은 새로운 상상을 제공한다.
F1963의 탄생은 창업주(홍영철)의 혁신의 발상과 사회 공여를 위한 헌신이 출발점이었다. 2016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의 '2017년도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대상지로 결정되면서 리모델링 사업은 본 궤도에 올랐다. 2016년 8월 23일 부산시와 고려제강은 MOU를 체결하였고, 100여 억 원의 투자를 통해 비엔날레를 개최하였다.
한국 최초로 연고기업의 사회 공여에 의해 폐산업시설이 지역의 문화 명소로, 또 산업유산이 새로운 지역문화의 창작소로 전환되는 계기를 제공한 F1963의 사례는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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