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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 | 연재 [마당기행]
낡고 버려진 공간, 도시의 새로운 자원이 되다
2019 마당·전주도시재생자원센터 공동기획 도시문화기행 <광명, 부천>
오민정(2019-06-18 10:57:15)

많은 사람들이 도시재생을 도시개발의 대안이자, 미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많은 국·내외의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 도시재생은 기존처럼 하향식의 정책하달과 일정규모 이상의 경제적 투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도시마다 각자의 환경과 조건이 다르고 재생의 해법도 다르겠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주민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않는다면 도시재생은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을 되풀이하고, 이후의 슬럼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을 위한 여러 유형의 모델들이 있지만, 그 중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도 꾸준히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도시재생 유관사업은 2013년부터 시행한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을 비롯하여 '문화영향평가', '문화예술거리조성', 최근의 '문화적 도시재생'에 이르기까지 20여 개가 넘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도시기행은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변화한 부천의 '아트벙커 B39'와 광명의 '업사이클아트센터'를 찾아 버려졌던 도시의 공간을 되살리고 있는 문화적 도시재생의 현장을 확인하고, 더불어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간 부천역 앞의 광장(부천마루 광장)과 폐광을 활용하여 지역의 브랜드로 성장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광명동굴'을 둘러보는 기회였다. 



소멸의 공간에서 탄생의 공간으로, 부천 아트벙커 B39

팽창하는 도시의 쓰레기를 감당하기 위해 지어졌던 삼정동 소각장은 지역의 골칫덩어리였다. 중동 신도시가 들어서던 당시 부천 외곽에 지어졌던 삼정동 소각장은 하루 200톤의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로 지어졌으나, 급격히 성장하는 도시의 쓰레기를 감당하기에는 금세 작은 규모가 되어버렸다. 또한 1997년,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환경부의 발표이후 소각장은 부천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와 철거요구에 부딪혔다. 설상가상으로 삼정동 소각장은 도시의 팽창으로 인해 점점 시가지 안에 위치하게 된 상황이 되었다. 부천시는 이에 외곽에 새로운 소각장을 짓게 됐고 2010년, 삼정동 소각장은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소각장은 철거 비용만 70억 원이 소요되는 도심 한복판의 골칫덩어리로 한동안 방치되었다. 막대한 철거비용으로 인해 부천시는 삼정동 소각장에 대해 '철거하지 않고 공간을 최대한 살리는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게 되었고,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공모, 선정되면서 문화시설로서 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아트벙커B39를 방문했을 때 받았던 인상은 '전형적인 소각장'이라는 것이었다. 직선으로 진행되는 작업공정에 맞게 지어진 건축물은 전주 외곽에 있는 소각시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국내·외에서 폐공장이나 발전소 등을 문화공간으로 바꾼 사례는 많았지만, 쓰레기 소각장의 사례는 아트벙커 B39가 세계 최초다. 그래서일까, 아트벙커B39는 애초부터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쓰레기와 기계 설비를 위한 공간이 다시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했다는 점에서 어쩐지 뭉클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현재 아트 벙커 B39는 1층과 2층만의 리모델링을 진행한 상태다. 그래서 완성되었다기보다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봐야 정확할 것 같다. 현재까지도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들이 그러하듯, 이곳도 처음에는 정말 폐허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기획할 때 컨셉으로 'SF'를 떠올렸다고. 판타스틱 영화제와 만화의 콘텐츠를 보유한 부천이니만큼, 너무 멋진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었다. 아트벙커 B39는 고정된 전시장이나 공연장을 갖추지 않고 프로젝트에 맞게 장소를 변형해서 진행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전시는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 아트 분야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 과거 도심의 골칫거리였던 폐소각장이 이렇게 도시재생을 통해 문화와 예술, 창의, 교육, 교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부천이라는 도시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아트벙커B39를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노리단'이 운영하고 있다. 노리단은 도시와 자연의 생태주의적 발견과 상상으로 사회를 디자인하는 예술단으로, 곳곳에 폐자재를 이용해 만든 악기와 직접 만든 탁자, 의자 등 곳곳에서 노리단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문화예술단체가 있다는 것도 한 도시의 힘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리단의 예술적인 독특함 속에서도 아이들과, 시민들이 신나고 편안하게 일상과 주말을 보내는 모습들이 참 인상 깊었다.


사람중심의 광장으로 재탄생한 '부천마루 광장'

지자체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는 바로 '역'이 아닐까 싶다. 부천역은 1899년 11월,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경인선 철도의 소사역으로 시작했다. 경인선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하면서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부천역은 이름을 바꾸고 그 규모도 커졌다. 1974년 8월, 부천역은 전철역의 기능을 갖추었으며 현재는 대형 쇼핑몰이 입점하는 등 하루 이용객이 20만 명에 이르는 부천의 대표적인 명소로 성장했다.


그러나 부천역의 성장에 비해 옆 앞의 광장은 2015년까지 택시와 무질서하게 점거하고 있는 노점상들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간이었다. 이에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환경을 개선해 시민들의 공간으로 되돌린 것이 바로 '부천마루 광장'이다. 자동차와 노점상이 사라진 공간에는 콘크리트보다 더 내구성이 강한 목재를 사용하여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공연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다. 2016년, 마루처럼 편안하게 시민들이 이용하라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진 마루광장이 등장하자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각종 문화축제와  거리공연(버스킹) 등이 이어지는 등 부천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직접 마주한 부천마루 광장은 널찍한 데크가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맨 처음 광장 바닥 마감재로 나무를 선택한 것과 이후 민원에 대한 해프닝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용하는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주정차가 불가능한 지점이어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도심의 공간이자 시민의 쉼터,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어지는 도심 속 문화공간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재활용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곳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광명이라 하면 개인적으로 참 낯선 도시다. KTX가 들어서면서 서울에 가기 전에 머무르는 역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을 정도.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눈에 띄는 성장과 많은 변화로 관심이 생겼던 곳이기도 했다. 특히 역세권을 중심으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될 만큼 도시의 팽창이 이루어지고 있으면서도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와 '광명동굴' 등 문화를 통한 도시의 재생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2014년, 유휴공간으로 방치되었던 광명시의 자원회수시설의 홍보동이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었다. 국내 최초로 업사이클을 특화한 컨셉과 특색 있는 운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개관 이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의 우수사례로도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역문화 대표브랜드 우수상(2016)'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2016 NEXT 경기 창조 오디션'에서 55억, 2019년에는 30억 규모의 경기문화창조허브 조성을 유치하는 등 지속적인 성장과 도약을 이어오고 있다.


폐광된 후 테마파크로 조성된 광명동굴과 자원회수시설이 함께 할 수 있는 재생코드 구상을 통해 탄생하게 된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는 업사이클을 주제로 한 전시와 교육, 예술가 레지던시 운영, 상품관 등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각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방문에는 강진숙 센터장의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에 대한 열정적인 소개와 안내를 통해 운영철학과 남다른 추진력을 확인하기도 했다. 특히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케아 코리아와 센터의 연계 노력을 통해 부서진 상품을 수거, 수리하여 지역아동센터의 환경을 개선하는 등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센터의 활동을 연계하고 확장시키는 그간의 노력들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자유로운 생산과 자유로운 소통'이라는 예술의 가치가 표현된 광명 업사이클 아트센터는 '자유롭게 흐르는 예술을 위한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한 번의 소비로 끝나지 않고 다른 쓰임, 다른 가치 창조로 이어지는 업사이클의 미학을 예술과 디자인을 통해 생활 속에서 발견하게 하는 공간이자 네트워크인 것이다. 광명업사이클센터는 지속적으로 주제의 전시, 교육, 문화 프로그램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 프로그램과 성인 프로그램 등 교육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은 생소한 업사이클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학생과 시민들이 에코디자이너로 발돋움 하는 기회를 만들어 '착한 예술'에서 산업적인 성장으로까지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재생을 넘어 도시의 문화 브랜드로까지 성장하고 있는 광명의 사례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례이지 않을까 싶었다.


문화테마파크로 거듭나고 있는 광명동굴

마지막 일정은 업사이클 아트센터 인근의 '광명동굴'이었다. 1912년 일제가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광명동굴은 폐광이후 39년간 방치되다 광명시가 2011년 관광지로 개발을 시작하면서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광장 터와 더불어 동굴이라는 공간적 차별성과 희귀성은 문화예술 콘텐츠와 결합하여 새로운 문화적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동굴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동굴 곳곳은 수많은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으며, 어둠을 배경으로 한 빛과 뉴미디어로 방문객들의 발을 사로잡았다. 다만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반지의 제왕'과 관련한 조형물이나 공포체험 공간, 동굴 속 아쿠아리움 등은 콘텐츠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한 나머지 전체 컨셉이 무엇인지 관람객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지점들은 못내 아쉬운 지점이었다. 하지만 산업현장으로만 여겨지던 갱도의 와인동굴로의 활용 등 폐광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재생시킨 사례를 직접 확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지난 도시기행들이 떠올랐다. 지역마다 도시재생에 있어 기업과 민간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역이 있다면, 국가나 유관기관의 정책사업을 통해 문화재생의 물꼬를 트는 지역도 있다. 부천과 광명의 사례를 보며, 이번기행은 도시재생의 가치를 도시의 브랜드로까지 발전하는 문화재생의 사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제각기 다른 도시의 환경과 여건을 고려할 때, 어떤 것이 정답이다 혹은 일률적으로 무엇이 올바른 재생의 방법인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기행의 사례들을 돌아보며, 도시재생의 목적 중 주민을 위한 장소성의 회복이 필요하고, 그 과정 속에서 주민 참여와 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방향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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