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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핏줄, 그 질긴 인연에 관하여
김훈, <공터에서>
이휘현(2019-10-15 14:28:07)



매 명절 때마다 우리 가족은 전주에서 경기도 광명 그리고 부산을 거쳐 다시 전주로 돌아오는 국토대장정을 펼친다. 십여 년이 흘렀고 식구도 둘이나 늘었건만 그 고된 여정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올 추석은 연휴기간이 비교적 짧아 더욱 고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복병처럼 사건 하나가 불쑥 끼어들고 말았다. 연휴 전날 밤 아내가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게 된 것이다. 국토대장정은 급작스럽게 취소되었고, 내 가족은 때아닌 여유를 이곳 전주에서 만끽(?)하게 되었다.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으나 복통은 연휴 기간에도 내 아내를 괴롭혔다. 사촌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던 두 아들의 실망은 적지 않았다. 그래도 명절 기분은 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나는 동그랑땡을 열심히 만들어 아이들에게 접시를 내밀었다. 몇 번 입을 오물거리던 아이들은 더 이상 젓가락질을 하지 않았다. 부산스러운 추석 연휴는 피했으나 뭐라 말할 수 없는 헛헛함이 어느 순간 나를 찾아왔다. 명절은 역시 온 가족이 모여앉아야 완성되는 것일까?


하릴없이 TV만 보는 아이들과 침대에만 누워 끙끙대는 아내를 두고 나는 소설을 하나 읽었다. 진작 읽어볼 결심을 하였으나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던 책. 김훈의 장편소설 <공터에서>는 그 예기치 못한 추석 명절의 헛헛함을 등에 업고 내 독서의 여정에 불쑥 끼어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내 마음에는 바람이 일었다. 그 바람은 아릿한 아픔을 동반하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아내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아이들 데리고 바람 좀 쐬고 올게."
과자와 아이스크림에 회유된 두 아들은 신바람 내며 차에 몸을 실었다. 10월 초 서울과 경기도의 온 가족이 모여 성묘하기로 한 계획이 있었으나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그냥 지금이었다. 임실로 향하는 국도 양쪽으로는 가을 초입의 서늘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엄마의 감시를 벗어나 차 속에서 내 휴대폰으로 해방감을 만끽하는 두 아이를 보자 뭉클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그 내면의 풍경은 내 유년시절 성묘 가던 길의 추억과 산만하게 뒤섞이면서 복잡한 기분을 자아냈다.
'참 먼 길을 돌아왔구나…' 어쩌면 이 짧은 여정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 마음의 '국토대장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 순간 스쳐갔다. 나는 임실 읍내를 벗어나기 전 막걸리 한 병과 황태포 하나 그리고 과자 한 봉지를 챙겼다. 나의 가족 납골당은 그렇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공터에서>는 김훈의 자전적인 색채가 짙은 소설이다. 여러 에세이집에서 슬쩍 비친 그의 가계(家系)가 소설 곳곳에 기시감처럼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다. 패배로 점철된 수컷들의 연대기이다.
이야기는 대통령 박정희의 죽음을 시대의 배경으로 깔고 시작한다. 이미 이때부터 이 소설이 패배하는 수컷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작가는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전방부대에서 휴가 나온 상병 마차세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다. 그 풍경은 쓸쓸하고 스산하다. 아버지 마동수는 둘째아들 마차세가 잠시 외출한 틈에 몸을 웅크린 채 홀로 숨을 거둔 것이다.
해외에서 사업하는 큰 아들 마장세는 일을 핑계로 장례식장을 찾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와 핏줄로 얽힌 인연을 오랜 시간 저주해 오며 일종의 도피행각을 벌였다. 베트남전 참전 후 귀국하지 않고 괌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마장세는 아버지 죽음에의 애도를 돈으로 대체한다.
한편 요양병원에 누워있던 마차세의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 소식에 숨죽여 운다. 그건 별리의 통곡이 아니라 지리멸렬함으로부터 느닷없이 벗어나게 된 사람의 허무에 가깝다. 죽은 마동수는 살아생전 처와 두 아들에게 좋은 남편과 좋은 아버지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야기는 죽은 아버지 마동수의 연대기를 어린 시절부터 훑다가, 장남 마장세의 베트남전 참전 트라우마로 넘어가기도 하고, 한국전쟁 와중에 첫 남편과 딸을 잃은 어머니의 애끓는 사연을 들여다보다가, 불현듯 차남 마차세의 녹록찮은 일상을 파편처럼 흩뿌리기도 한다. 마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시키듯 마동수 가계의 거대한 벽화를 작가는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엮어서 이어 붙인 꼴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박정희의 죽음 등 주인공들은 각자의 세월을 오롯이 몸 하나로 밀고 나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패배의 기록으로 남는다.
기실, <공터에서>의 마동수 가족은 이 땅에 살아온 '모든 가족'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형태로 보듬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의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사람들.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특별할 게 없으나, 개별의 시선으로 들어가면 모두들 각별한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 얽힌 핏줄이라는 질긴 인연.


임실 세모실 야트막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가족 납골당은 잔디가 가지런히 깎여 단정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준비해 간 막걸리의 병뚜껑을 따고 황태포 봉지를 뜯었다. 크래커는 꺼내자마자 아이들 입으로 먼저 들어갔다. 납골당을 앞에서 내가 조용히 두 번 절하는 사이 아이들은 내 머리맡에 서서 "오냐~"라며 깔깔거렸다. 그 천진함이 정겨워 가슴에 사무쳤다. 납골당 앞에 오순도순 앉아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나는 아이들에게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삼십대 초반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내 할아버지와 그 후 50년 가까운 세월을 가슴앓이하며 살다 가신 할머니, 내 유년의 기억 속 기골 장대한 모습이었지만 혈압으로 쓰러지신 후 초라한 몰골로 돌아가신 내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주절대었다.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가을 풍경에 취해 풀밭 위를 굴러다녔다.
각자의 일상과 추억이라는 인간의 모든 개별성은 결국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 위를 흘러 저 죽음이라는 보편의 바다로 향한다. 언젠가 많은 시간이 흘러 내 아이들도 이 시간을 기억해 줄까? 소설책 한 권 읽고 참 많은 걸 생각하는 계절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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