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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4 | 연재 [연재 [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③
벗에게 시간을 묻다
박형진(2021-04-08 10:27:27)

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손내 선생님께


가볍다 못해 실없기까지 했던 지난번 저의 편지가 선생님 가족 이야기를 자아냈나 봅니다. 사실 궁금했던 부분이기는 했지만 굳이 저의 체면을 돋아주시려는 배려이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어쨌거나 저는 이번 편지를 읽으면서 실없는 생각이 자꾸 나서 혼자 웃었는데요. 내외분이 같은 범띠생이시라지요? 그러면 서로 어흥 어흥 하시면서 살겠소 그려! 우리 내외는 같은 띠도 아니면서 아웅다웅하는 처지라서요.^^


명절 보내셨는지요? 자녀분들이 가까이 사시니 평소에도 서로들 자주 만나지 않을까 싶군요.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은 년에 한두 명절에나 자녀들을 보게 되는데 이번 명절은 코로나 때문에 이마저도 힘들었어요. 저도 예외가 아니었고요. 명절날 아침 한동네 사시는 형님댁 차례에도 가지 못하고 성묘도 각자 따로따로 하게 되었답니다. 모두 모이면 스무 명을 훌쩍 넘기는데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겨서 야단법석이 나면 막힌 시골 체제(!)에서 견딜 재간이 없다 여겨졌지요. 여지껏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어디 차례나 성묘뿐이겠습니까.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당산제는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마을이 생긴 이래 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당산제인데 관에서 먼저 금하노라는 지엄이 내리니 어찌해볼 도리가 있나요. 그것이 마을의 안녕을 위하기는 마찬가지 일이니 돌려 생각할 수밖에요. 그러나 저는 몹시 상심에 빠졌습니다. 섣달그믐이 돼도 마을에 매구굿 소리를 내지 못하고 초하룻날 저녁에 지내는 당산제도 그걸 하지 못하니 마음이 이루 허망하기까지 합디다. 아마도 제가 마을의 상쇠여서 그랬을 겁니다. 


열대여섯 때부터 정월 달은 어른들 치는 굿판을 따라다니며, 어른들이 판에 지청구를 들어가며, 쇠와 장구를 두드리다가 굿머리를 내지 못해 한없이 안타까워했는데 스무 안쪽에 우연히 선생 분을 만나 하룻밤 사이에 굿의 대강을 알아버리고 나서 저는 사십 넘게 지역에서는 그래도 알아주는논두렁상쇠였답니다. 그러던 것이 작년 대보름굿부터 하지 못하고 해를 넘겨 올해도 모양이군요. 


코로나로 촉발된 디지털 세상의 겪어보지 못한 여려 비대면적인 일들이 같은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낯설고 불안한 일인데 제가 여지껏 겪어온 일상의 당연함이 멈춰지는 이것은 역설적으로 낯설고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걸로 보아 저는 그저 과거에 메여 사는 구닥다리 꼰대임에 틀림없습니다. 조금 젊었을 때는남들 하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남들 하는 것은 나는 하지 않는다 패기 같은 거라도 있었는데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대사회를 따라가기는커녕 이해나 해석하기도 어려워서 다른소외 느낍니다. 


이것은 불평등의 문제와도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일 텐데 비판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지나온 삶의 방식에 기대어 눈으로만 세상을 보니 앞으로의 삶이 더욱 신산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물론 코로나 시대의 여러 담론들 농農적인 것의 가치가 옹호되고 확장되는 것은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가정상이라도 일컫는 일상적인 것들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중독 현상이라는 말을 올릴 우리는 앞으로 정상과 비정상이 혼재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중심 무엇인지 생각을 곱씹어 봅니다.


결국, 아무개 기자의 농간(!) 들어서 사적인 편지들이 공적인 세상에 민낯을 드러내게 되었소. 그를 만나면 귀담아들을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던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제가 잘못인지 따져 물을 작정이오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깨어진 동이라서 이후로는 반쪽의 진실도 담지 못할까 두렵고 시간이 지날수록 휴지 보탬이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요. 옛사람들의 흉내를 내본다 언감생심, 아름다울 있을까요?


부디 올해도 좋은 그릇 많이 만드시길- 늦은 새해 인사로 대신합니다.


2021.02.19 

박형진드립니다




풍경21


설은 아직 남았는데

그믐처럼 눈이 온다


내리는 눈을 피해

박새가 처마 안으로 날아들고


올해는 내려오지 못한다지

자꾸만 동구 밖으로 눈이 간다


날은 춥지 않다만

군불이라도 넣어볼까


예전 묵은세배를 하러온 사람처럼

토방에 툭툭 신발의 눈을 터는데


끝에 서리는

정짓간 뿌옇던 콩비지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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