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21.11 | 연재 [로마의 향기, 바티칸의 숨결]
세금 한 푼 없는 ‘천국’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2021-11-09 15:54:13)

세금 없는 천국

이백만 주교황청 한국 대사



신비의 바티칸은 어떤 공간일까요. 멀리서 보면 엄숙하기 그지없는 거대한 수도원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바티칸 역시 사람 사는 곳입니다. 그러나 일반 국가와 바티칸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경제전문기자 출신으로 교황청 대사를 3 역임한 저는 차이점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티칸에도 있을 것이 거의 있다. 다만 세금만 없을 뿐이다.” 


바티칸은 크게 구역으로 나눌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인(관광객) 비교적 자유롭게 출입할 있는 공간입니다. 베드로 광장,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박물관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다른 하나는 출입증이 있어야 드나들 있는 공간입니다. 은행, 면세점, 슈퍼마켓, 병원, 약국, 도서관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물론 출입증이 있어도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는 특별 구역도 있습니다. 이곳은 바티칸 당국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합니다. 교황 집무실과 정부 기관이 들어 있는 사도궁, 비밀문서고, 교황 숙소(산타 마르타 하우스), 바티칸 정원 등입니다. 


출입증이 있어야 드나들 있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요. 바티칸 관련자들을 위한 특별한 편의시설입니다. 바티칸에는안나의 있습니다. 베드로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1 미터 떨어진 곳에안나 성당 있는데, 성당 옆에 달린 문입니다. 바티칸의 통용문이지요. 바티칸의 일반 직원들은 물론이고 용무가 있는 외부인이 주로 문을 이용합니다. 


안나의 들어서면 차례 검문을 받습니다. 먼저 스위스 근위병이 신분을 확인하고 나중에 바티칸 경호실 요원이 출입 목적을 체크합니다. 이렇게 검문이 철저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첫째는 철저한 보안 때문이고, 둘째는 불법 쇼핑 방지입니다. 만약 검문을 철저하게 하지 않을 경우 바티칸은 특별 세일하는 백화점을 방불케 정도로 매일매일 사람들이 붐빌 것입니다.  


바티칸은 세금이 푼도 없다는 점에서 천국입니다. 세금 없는 나라는 세상에서 바티칸이 유일할 것입니다. 봉급을 받는 일반 직원들은 근로소득세(갑근세) 푼도 내지 않습니다. 은행, 슈퍼, 약국, 병원 등이 있지만 소비(거래)행위를 하는 있어 부가되는 거래세나 부가가치세 일체의 세금이 없습니다. 당연히 재산세, 상속세, 증여세도 없습니다. 국가 전체가 완벽한무세(無稅) 구역입니다. 세상적 표현으로는 온전한 면세구역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제에게바티칸에는 세금이 없냐 물었더니, “하느님 나라에 세금이 있나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우문(愚問) 현답(賢答)이었습니다. 바티칸이라는 공간은 로마가톨릭이 성경 속의 하느님 나라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곳인데, 세금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국가 전체가 무세 구역이면 물건값은 어느 정도나 될까. 제가 체험한 일입니다. 겨울철에 입을 남성용 코트를 구입하고 싶어, 바티칸 백화점을 찾았습니다. 맘에 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가격을 보니 로마 시내의 백화점 가격에 비해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점원에게 사겠다고 했더니, 저의 신분을 물어보더군요. 주교황청 한국 대사라고 말했더니 구입할 자격이 없다며 관련 규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남성 코트와 신발(구두) 가톨릭 사제만 구입할 있다는 것입니다. 품질이 좋고 가격이 싸다 보니, 일반인들의 구입이 너무 많아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바티칸의 생활편의시설 구역에서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은 약국과 화장품점입니다. 약국의 경우 번호표를 받아 30 이상 기다려야 물품을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바티칸 약국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약품을 가장 저렴하게 있습니다. 바티칸 화장품점의 가격은 공항 면세점보다 대략 30% 쌉니다.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화장품점이라고 있습니다. 진열대에는 세계 유수의 화장품이 거의 모두 있습니다. 화장품 가격이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게 임대료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판매원의 인건비도 높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공항 면세점의 비싼 임대료와 높은 인건비에 비하면 바티칸은 비교할 없을 정도지요. 바티칸 슈퍼마켓도 좋고 싸기로 유명합니다. 바티칸 백화점도 간간히 세일을 합니다. 그때는 정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칩니다. 



바티칸에는 은행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바티칸 은행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이탈리아어로 ‘Istituto per le Opere di Religione’입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종교활동을 위한 기관입니다. 약자로는 ‘IOR’ 통하지요. 특이하지 않나요? 은행 명칭에 은행이란 단어가 없다니!


바티칸에 여러 종류의 편의시설이 있기는 합니다만, 간판도 걸려 있지 않고 점포의 상호도 없습니다. 일반인들이 백화점이라 부르지만 정작 건물 어디에도 백화점이라는 간판이 없습니다. 바티칸 은행도 마찬가지지요. IOR이라는 글자를 보고 은행이라고 사람이 명이나 될까요.


바티칸의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화장품점, 약국 등을 아무나 이용할 없습니다. 바티칸 출입증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바티칸 시국에 근무하는 성직자와 일반 직원, 가톨릭 수도회(수녀회) 자선단체. 가톨릭 학교 관계자, 교황청 외교사절 등에게 출입증이 발급됩니다. 일반인들에게 바티칸 쇼핑의 재미가 정말 쏠쏠합니다. 재미를 아는 한국 교민들이 바티칸 출입증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저에게 하더군요. 민원 아닌 민원이었지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