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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 | 연재 [[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박형진, 이현배(2021-12-09 13:07:38)

손내 선생님!


보내주신 필통과 초콜릿을 받았습니다. 남이 보내 물건을 오랫동안 뜯지 않는 저와는 달리 궁금증을 빨리 해소하고야마는 아내 덕분에 택배는 그날 즉시 해체(!) 되었습니다. 초콜릿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정도에서 멈추고 다른 상자에 담긴 (필통) 놔둠직 하건만 사람은 그것마저 끌러서 기어이 내용을 확인했어요. 그렇다고 자기에게 무슨 즐거운 일이 있을까요? 초콜릿을 아예 입에 넣지 않는 사람이니 저만 먹는 것이고 문구류 또한 제가 좋아하니 차지일 뿐이지요. 택배를 가지고 실랑이하는 저와 아내 모습이 눈에 보이지요?ㅎㅎㅎ 어쨌든 받았다는 연락을 이제야 드리게 되어 미안합니다. 사람만 통하면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있지만 모른 채로 지나도 그동안의 시간에 불편함이 없었기에 굳이 여백 하나를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지난 편지에 쓰신 옹관 이야기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선생님이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만드신 옹관은 선사시대의 그런 모습입니까, 아니면 구조나 모양 장식미에 있어 다른 건가요? 가벼운 호기심이라고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또한 궁금하군요. 저의 아버님은 당시대에는 근동에서 유명한 목수였답니다. 가지만 전공한 아니고 짓고 짓고 매는 그야말로 전천후 목수이신데 누구나 그렇듯이 당신을 뉘일 관은 사후에 줄포에서 농방을 하셨던 저의 고종형님, 그러니까 당신의 조카가 만들었지요. 그때는 초상이 나면 모항 해변의 사구에 울창하게 자라던 소나무를 바로 베어서 판자를 관을 만들어 썼는데 누구나 사전에 오동나무 따위로 관을 마련해 여유가 없었고 아버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고종형님은 아버지, 외삼촌한테서 목수일을 배우셨다고 하니 사개 타서 맞추었던 것이 당신의 손으로 당신의 관을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생각합니다. 아버님의 기일이 음력 유월 이레 이니 대개 중복 무렵인데 더위 속에서 땀에 목수건을 두르고 관을 짜던 형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연사흘을 동네가 끊듯 하던 기억과 오색가지 만장들이 펄럭이던 정경들은 세월이 가도 결코 바래지 않는군요. 고종형님은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가구(일량인 막걸이 집이나 이량 삼량 집의 목재 구조) 직접 짜시고 상량을 올려주셨는데 돌아가신지 20년쯤 됐고 아버님은 제가 열세 세상 버리셨으니 벌써 50년이 넘었네요 그려.


예전에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7남매의 막내로 자랐습니다. 저의 어머님이 명의 아들딸을 낳았는데 저는 막내로 태어났고 위로 셋이 어릴 죽은 것이지요. 친구들 아들로 태어난 사람들은 아직도 부모님이 살아계십니다. 하지만 90 넘어 병중에 있다 하니 우리 세대는 이제 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소위 전후세대인 저희들까지나 굳이 이름 붙이자면 전통세대라 있지 않을까요? 전통세대도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차례를 같습니다. 전통이라는 것이 단절되고 사라지는 것을 전제로 존재한다고 (물론 이런 시각을 바르지는 않다고 보지만) 순번을 탔다는 것에 저는 많은 당혹감을 느낍니다. 저의 윗세대는 오롯이 농경문화 속에서 살았지만 우리는 윗세대와 현대사회 세대의 사이에 세대입니다. 어찌 보면 세대를 살고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는 반면 이도저도 아닌 아주 어정쩡한 세대라고 수도 있겠지요. 다시 비교해서 말하자면 전통사회에서 저의 아버지 같은 분은 전문가 그룹에 속한다고 있고 같은 경우는 사라지는 농경문화 속의 평범한 농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경험했던 마지막 농경사회의 수백 가지 삶의 기술들, 예컨대 낫질이나 키질 같은 연장을 다루는 기술에서부터 의식주 전반에 걸쳐 자연에 조응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술들은 이어질 있을까요? 순번을 탔다는 것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런 전통사회의 기술들이 사라질 순번을 탔다는 것에 저는 당혹감을 느끼는 겁니다.


요즈음의 코로나 시대에 자연파괴니 기후위기니 하는 말들이 우리사회를 진단하는 용어가 되고 탄소중립이니 제로니 하는 말들은 이제 국가의 과제가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솔직히 말해서 시점에서 성장을 멈출 있겠습니까? 누구든 책임지는 삶은 살려고 하지 않으면서 온갖 미사여구를 뿜어내 성장사회를 미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풍요에 너무도 심각하게 중독된 것이어서 누구도 애써 과거의 지속가능한 농경문화에 눈을 돌리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입만 열면스마트 외치지요. 같은 사람이 설자리가 없다는데 더욱 당혹감을 느낍니다.


늦게 심은 메밀을 삼일 신들린 낫질해 베면서 예전에뿌리깊은나무에서 펴낸 숨어사는 외톨박이 시리즈 장구의 명인 신기남의어떻게 하면 똑똑한 제자 두고 죽을꼬 생각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1.11.17

박형진드림


메밀꽃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가을날 오후


햇볕 가득한 서향집 마루에 앉아

눈을 뜨고 꾸는


누군가 오고 있었다


눈꽃 속을

나풀나풀 걸어오는 사람 하나


그러나 감으면


메밀꽃 흐드러진 하늘아래

바람 따라 이별의 노래만 흐르고


흐르다 흔들리다 한오백년

이제는 밭둑머리

빛바랜 갈대꽃으로 흔들려도


가슴 속으로

다시 나풀나풀

누군가 것만 같은 가을날 오후



*시에 덧붙여나는 나를 게으른 농부의 전형이라 여기는 사람이지만 귀퉁이를 묵혀 놓는 것에는 마음이 불편하여 여름이 지난 가을의 초입에 그곳에 메밀을 뿌려두었다. ‘메밀 뿌리러갈 베어서 지고 오는 사람만 만나지 않으면 늦지 않았다 말이 있을 정도로 메밀은 숙기가 빨라서 뿌린 삼사일 만에 파릇파릇 싹이 돋았다.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땅을 덮더니 금세 아래마디부터 꽃이 피고 꽃이 이제 밭에 눈처럼 희게 되었다. 찬이슬 내리는 가을 달밤에 메밀꽃 밭에 있노라니 가름 저릿한 이별의 아픔 같은 것이 밀려온다. 나는 메밀꽃 피는 밭에서 사랑을 시작했고 꽃이 지기 전에 헤어져야했다. 그가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스무이 되지 않은 때이지만 그로부터 나는 땅이라는 수형지에 스스로를 가둬 40여년, 상처는 아직도 추억으로만 호명되지는 않는가보다.




모항 박형진 시인께


불을 피울 일이 있어 왕겨를 실어 왔는데 

대문간에 차를 두고 짊어 올릴까, 차로 올라갈까 하는데

윗마당에 있는 우편배달부의 오토바이가 보여 어차피 올라갈 형편이 되었습니다. 


여러 전에 우편물이 줄었다고 명이서 하던 일을 명으로 줄여놨답니다. 그렇다고 지역이 좁아진 것은 아니기에 쫓기듯이 대문간의 느티나무에 매달아 놓은 우편함에 넣어두고 가는데 윗마당까지 진출한 것을 보니 등기나 소포가 있나 했습니다. 마침 집배원께서 내려왔습니다. 세상 모든 집배원을 윤주사라고 부르는데 그대로 윤주사였습니다. 동갑내기라말년에 갈참(정년퇴직)이라고 안에 있으면 갈궈?’했더니 성질이 앉아 있으면 갑갑해서 살고 나온다고 합니다. 윤주사는 제가 지역일을 먼저 상의하고, 결정적인 것을 다시 묻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지역 구석구석을 온몸으로 다니고 그가 지닌 우편물들의 함축성, 그렇게 만나는 지역민들의 일상이 지역적 삶의 진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겨를 내려놓고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소포를 맞이했습니다. 저는 곳곳에 칼을 둡니다. 저희도 우편물과 택배가 많은 편이라 뜯기는 것이 싫어 곳곳에 둡니다. 하여 어떤 것들은 개봉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답니다. 먼저 두툼한 신문 뭉치가 좋았습니다. 신문 구독을 끊은 지가 오래되었기에 두터움이 좋았습니다. ‘이지 싶어 누구보다 반가워할 딸애에게술이다했습니다. 딸애가 술을 빚고자 고두밥을 찌면 저희는 괴롭습니다. 어떻게든 먹고 싶은데 정확한 성격의 딸애가 정량에서 벗어난다고 난리가 납니다. 사진가들이 필름통을 술잔으로 쓰는 것을 보고 흙으로 옮긴 필름술잔으로 기분 좋게 잔씩 했습니다. 


저에게는 오래된 생각이 있습니다. 굴집을 지어 살고 싶습니다. 그게 무덤이 되면 좋겠습니다. 일을살아서 죽고, 죽어서 사는 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버님께서 이미 그렇게 사셨던 것이군요. 솜씨를 솜씨로, 일을 일로 남겨 솜씨의 일로 당신의 삶과 죽음을 사셨으니 삶을 본받고 싶습니다. 옹기장이로 나무를 주로 땔감으로 다루기에 부러 나무를 외면하게 됩니다. 판화가 이철수 선생님 댁에서 선생의 아버님께서 만드셨다는 가지의 목물이 눈에 선합니다. 당신께서 본래 표구장이셨다는데 안목으로 궁중 가구를 수리하는 친구분의 기술지도를 받아 만드신 거라 소위 전문가가 만든 뻔함 이상의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언제 옹기불을 놓게 되면 나무를 그렇게 다뤄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딛고 있는 , 땅을 이루고 있는 . 찰흙을 우리 옹기장이들은 밥이라고 한답니다라는 말이 씨가 되어 시작된 이웃 마령고등학교 1학년들과의 프로그램이 이제 차례 남았습니다. 저희 옹기점이 흙과 백운 큰산들의 나무로 형성되었듯이 마지막 프로그램은 백운의 나무로 밥을 크게 지어먹자고 했습니다. 올해가 용담댐 수몰 20주년이니 같이 수몰된 선사시대의 문화를 되새겨 보자고도 하였습니다. 하여 진그늘 구석기시대 유적의굽기 갈머리 신석기시대 유적의삶기와정 원삼국시대 유적의찌기 끼를 푸지게 지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지역에서마지막이다!’하고 제안하고 붙들었던 () 가치화(?) 일에서 소외되었다가 막바지에 참여의 여지가 생겼습니다. 속상했던 일이었기에속도 없냐소릴 듣지만, 얼마만큼이라도 갈무리를 하는 것이 도리이지 싶습니다. 제가 본래 유연성이 없는 사람이라 아니다 싶으면 관둬버리는 성격인데 농農의 가치를 그렇게 외쳤던 [녹색평론] 휴간을 접하면서 개인 차원에서 관둘 일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 천규석 선생의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다시 붙들어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의 사는 삶에 

닿고 싶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의 사는 삶에 

닿고 싶습니다. 


2021.11.18 

옹기장이 이현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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