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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 | 연재 [권하는 책]
아니에르노와 여성서사
신동하 기자(2022-12-13 14:04:20)


권하는 책 | 아니 에르노와 여성서사


요즘 문화계는 여성서사 발굴이 한창이다. 그 와중에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2022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프랑스 페미니즘 문학의 대가인 '아니 에르노'에게 돌렸다. 개인적 기억을 통해 우리의 근원과 소외 그리고 사회적 속박을 꾸밈없는 예리함으로 용기 있게 드러냈으며, 성과 언어, 계급적 측면에서 첨예한 불균형으로 점철된 삶을 다각도에서 고찰했다는 평. 아니 에르노의 저작 두 편과 여성서사와 관련된 신간 네 편을 함께 소개한다.





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저/신유진 역 | 1984Books(일구팔사북스) | 2022년 10월


유방암을 앓던 아니 에르노가 그녀의 연인 마크 마리와 사랑을 나누고 난 후 남은 흔적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행위가 끝나고 그곳에 남겨진 잔해들에는 어제의 욕망과 오늘의 부재, 그리고 내일의 전조가 가득하다. 책 속에서 저자는 종양이 자라 부푼 한쪽 가슴,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 항암제를 부착하고 있는 몸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투쟁한다. 그리고 그의 연인은 그가 치러내는 전투를 통해 죽음에 관해 배운다. 글과 사진은 형체가 없는 것들을 지극히 물질적인 것들을 통해 표현하는 예술이다. 우리는 책 속에서 그들이 말없이 주고받은 대화들, 비밀스러운 몸짓들, 폐허처럼 남겨진 것들을 읽을 수 있다.





빈 옷장

아니 에르노 저/신유진 역 | 1984Books(일구팔사북스) | 2022년 10월


‘기억에 대한 주관적인 시선’은 있을 수 있겠으나, 거짓과 허구는 없다. 데뷔작 <빈 옷장>은 그러한 '아니 에르노라는 문학'의 시초이다. 첫 작품부터 날 것 그대로의 문장으로 스무 살의 자신이 받은 불법 낙태 수술에서 출발하여,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어린 시절을 거쳐 사춘기 시절의 상처, 가족에게 느끼는 수치심, 자신의 뿌리를 잊기 위한 노력과 부르주아 층 남자아이에게 버림받은 일까지,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분리되는 과정을 그리며 그러한 분리를 일으키는 메커니즘, 한 인간을 다른 사람으로, 자신의 환경을 적으로 만드는, 문화에 대해, 하나의 문화 형태가 개인에게 한 일, 이 단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야생의 심장 가까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저/민승남 역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브라질의 ‘버지니아 울프’라고 여겨지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데뷔작. 이후의 작품들이 틔우게 될 씨앗이 모두 담겨 있다. 안온함 속에서도 불안의 징후를 찾아내고 그 불안 속에서 다시 철학적 독백이 시작되고 그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특유의 전개 방식이 돋보인다. 특히 작가의 분신인 주아나가 10여 페이지에 걸쳐 읊조리는 독백은 스물세 살의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진 예언이었다. ‘리스펙토르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43년에 발표되었으며, 브라질 문단에 큰 충격을 주며 그해 최고의 데뷔작에 주어지는 그라샤 아랑냐상을 수상했다. 





백만 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 2 

이민진 저/유소영 역 | 인플루엔셜 | 2022년 11월

 

‘파친코’ 이민진 작가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삼부작의 첫 번째 소설. 동시에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199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국계 이민 2세대 여성인 케이시 한과 동생 티나 한, 친구 엘라 심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한국인과 미국인이 절반씩 섞인 이들은 미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고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하고자 한다. 그러나 세상은 차갑기만 하다. 케이시와 친구들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한국계 미국인이 겪는 차별과 편견에 분노하며 외로운 삶을 지속한다.




줄리엣과 줄리엣  

한송희 저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여성 퀴어극으로 전례 없는 사랑을 받은 <줄리엣과 줄리엣>의 희곡. 2018년 산울림 소극장의 고전극장 프로젝트로 초연된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줄리엣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렛’의 사랑 이야기로 각색한 것이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라는 게 희곡의 설정. 특히 두 사람의 슬픔에 깊이를 더하면서도 두 사람의 사랑을 감싸 안는 엔딩이 일품이다. ‘윤희에게’의 임대형 감독은 한국사회에서 보기 드문 불세출 로맨스라고 극찬했다. 희곡을 집필하고 줄리엣 역을 연기한 저자가 직접 쓴 에세이가 함께 수록되어 생동감을 더했다.




벨 그린

마리 베네딕트, 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 저/김지원 역 | 이덴슬리벨 | 2022년 11월


<벨 그린>은 흑인 신분을 숨기고 백인으로 살았던 벨 다 코스타 그린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그린은 미국의 전설적인 금융 황제 존 피어폰트(JP) 모건의 개인사서이자 모건 도서관의 초대 관장을 지낸 실존 인물이다. 유달리 피부가 희었던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포르투갈계 이민자의 후손이 되기로 한다.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타고난 지성과 예술적 안목 덕분에 뉴욕 사교계와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소설과 마리 베네딕트와 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는 그린과 관련한 공식 기록을 토대로 그의 삶을 재구성하고 흑인에게 적대적이었던 사회에서 백인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괴로움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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