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두려운 항해에 나선다
글 문신 시인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기계와 기술에 많은 부분 의존하는 장르다. 그래서 영화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발터 벤야민이 끌려 나온다. 나는 그가 20세기 초에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라고 말했던 걸 안다. 그가 말한 ‘아우라’는 다양하게 변주되어 이곳저곳에서 활약하는 중이다. 무엇을 하든 다들 아우라 찾기에 공을 들인다. 그래야 진지하게 보이고, 그래야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벤야민의 아우라를 플라톤의 이데아에 연결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이데아와 아우라에는 인간의 감각 외부에 절대성이 있을 거라고 전제한다. 그걸 때때로 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럴 때 인간은 ‘을’의 존재가 된다. 이데아, 신, 아우라를 우러러보는 ‘을’.
다른 경우일지도 모르지만, 영화를 보는 일에서 나는 자주 ‘을’을 경험한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을’이기를 경험 당한다. ‘경험 당한다’라는 표현은 어법의 범주를 벗어난다. ‘경험’이라는 건 인간을 주어의 자리에 놓고, 인간의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당한다’고? 가능할까? 가능하다. 영화라면. 영화관에 앉아 스크린을 응시하는 나를 상상해보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눅눅해진 팝콘을 씹는 일이다. 그러다가 텁텁해진 입안을 가실 겸 콜라를 마시는 게 고작이다. 그러는 동안 스크린으로 많은 ‘장면’이 지나간다. 사람들은 그걸 ‘본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보여진다’라고 정정하고 싶다.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에는 ‘본다’를 지지하는 주체의 관점이 개입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누군가 세상을 바라본 관점이 우리들에게 ‘보여진다’.
그렇다면 영화관에 앉아 있는 관객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영화감독’은 정답률 99% 정도 될 것이다. 영화감독의 시선이 스크린에 펼쳐지고, 관객은 팔뚝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수액을 흡수하듯, 영화감독의 관점을 일단 쫓아간다. 그렇다. 여기까지는 ‘일단’이다. 이후의 일이 ‘이단’이 될 것이고, 이단의 일은 일단에 관한 관객의 해석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일단 ‘보여진’ 것에 대해 관객은 ‘다시 보기’를 시전한다. 물론 그게 귀찮아서 일단에 머무는 관객도 있겠지만.
이런 관점에서 영화감독의 책임이 무겁다. 나는 그 무거움을 벤야민과는 다른 이유로 ‘아우라’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분야에서 최상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에게서 감지할 수 있는 그것 말이다. 강지이 감독과 마주했을 때, 나는 그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비슷하다고 말한 건 내가 아직 강지이 감독의 영화를 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고, 그를 제대로 알아보기에는 내 눈썰미가 흐린 탓이기도 하다.
“애초에 전공은 사범대에서 윤리교육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그 길이 맞지 않았어요. 아이들과 만나는 건 좋았는데, 학교라는 조직으로 들어가는 게 싫었어요. 임시교사로도 일했는데, 어느 순간 영화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인상적인 건 입학시험을 보던 순간입니다. 지금은 그곳에 입학하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한다고 하는데, 제가 입학할 때는 연필 한 자루 들고 들어갔거든요. 이상하게도 시험 보는 게 너무 좋았어요. 3시간 동안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게 신기하잖아요. 시험인데. 즐겁게 시험을 치렀어요.”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서는 신도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인생이 어떤 진로를 밟아갈지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강지이 감독에게 영화는 그런 것이다. 침묵하던 세계가 갑자기 말문을 열어버린 세계. 그러나 중요한 건 영화라는 장르가 아니다. ‘이야기하기’의 즐거움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발견의 순간을 ‘두려운 항해’에 비유하곤 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시절, 수평선 너머의 세계를 확정하지 못하던 시절, 그 너머를 겨냥하고 돛을 올렸던 선원들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두려운 항해를 떠났다. 그리고 만났다. 세계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나무, 연락처, 마음에 들다
영화에 관심이 생겨 찾아갔던 독립영화협의회에서 강지이 감독은 간단하게 영화 제작 교육을 받았다. 그때 영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4기로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재능 없는 내가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 아니, 영화를 붙잡고 늘어져도 좋은가? 이런 질문이 때때로 찾아왔다. 동기들보다 많은 나이는 자주 자기를 돌아보게 했다. 스무 살 아이들이 보여주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감각적인 글들이 하나의 벽처럼 생각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개인의 재능이나 역량의 문제도 있지만, 영화라는 산업의 스타일과도 관련되었다.
“예전에는 영화를 만드는 것 말고 다른 건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영화 일을 하고, 영화라는 산업의 부분으로 지내는 과정에서 영화 제작이 만만한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 튕겨 나온 느낌? 나는 영화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구나, 이런 느낌? 진입장벽이 저렇게 높은데 내가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 뭐 이런 고민을 했어요. 결정적으로 2017년에, 이쪽 사람들은 충무로의 재난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2017년도에 제작을 준비하던 영화가 다 엎어졌어요. 당시 저는 2016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 연출부 일을 끝낸 상태였는데, 영화들이 제작 중단되니까 스태프 일을 구하기도 힘들었어요. 당연히 생활고가 닥쳤고, 부모님이 계신 전주로 돌아왔어요. 봄날에. 전주에서 일자리를 찾고, 작지만 내 일을 해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감독이라면 상업영화를 디렉팅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의지나 노력만으로 돌파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법. 좌절까지는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 한계를 절감한 강지이 감독에게 전주는 영화에 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전주 시민 미디어 센터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영화를 가르쳤다. 아니, 영화를 가르쳤다기보다는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연출과 제작의 관점에서 보던 영화와는 다른 시선으로 영화에 다가갈 수 있었다. 영화를 생산하던 관점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새로운 생각을 재생산하는 활동은 영화라는 장르를 다른 영역에서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 지원 사업을 맡아 운영하면서 영화 제작을 넘어 영화산업 전반에 걸친 경험의 폭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해나가면서 문득 나는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찾아왔다는 강지이 감독. 다행히 전주영상위원회의 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나’의 단편영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연출한 단편영화 <소나무>는 2010년 전북독립영화제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옹골진상을 수상했다.
“이후에 제작한 <연락처>는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어요. 영화를 제작하게 된 에너지는 분노였던 것 같아요. 이 일이 그냥 묻히고 사라져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이 거처하는 비공개 주거시설인 쉼터가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밤, 가해자인 아버지가 쉼터를 찾아와 아이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로 인해 한밤중에 피해자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된 사건이에요. 가정폭력을 피해 쉼터에 들어온 아이들이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그런데 정작 어이없었던 건 경찰의 태도였어요. 경찰은 가해자의 말만 듣고 가해자 편을 들어줬어요. 가해자가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면 가겠다는데 왜 못 만나게 하느냐고 경찰들이 말하는 거예요. 그걸 폭력의 피해자들이 들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우린 누굴 믿어야 하나, 가정폭력에 관해 경찰의 인식이 이렇게 부족한가, 고민하면서 가정폭력 자체보다는 그 사건을 처리해가는 문제적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소나무>나 <연락처>에서 알 수 있듯, 강지이 감독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작년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개봉한 <마음에 들다>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부모의 이혼으로 방황하는 ‘은하’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강지이 감독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작품 속에서 겪는 시간이 엄마 아빠의 이혼인데, 어쩔 수 없이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피아노를 놓고 올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중고 피아노 가게에 있는 내 ‘피아노’를 보러 가는 행동으로 영혼의 단짝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표현하고 싶었다.”(전북도민일보) 영화에서 ‘피아노’는 잃고 싶지 않은 은하의 정체성에 가깝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피아노’로 상징되는 자기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피아노를 자기 안에 들일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반복되는 상실을 통해 조금씩 자라고 인간이 된다. 어쩌면 상실의 시간을 옳게 견뎌낼 때 우리는 좋은 인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견디는 예술, 영화
영화 속 인물이 자기의 시간을 견뎌내는 것처럼, 영화라는 장르 자체도 시간을 견디는 예술이라고 강지이 감독은 말한다. 영화를 보는 일은 영화관에 앉아 2시간 정도의 상영시간을 오롯이 견뎌내는 일이다. 관객은 선택적으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감독이 ‘보여주는’ 영화를 일방적으로 본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러한 일방향의 시간을 그다지 잘 견디는 것 같지 않다.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1.8배속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스토리를 쫓아가는 관람이다. 하지만 영화는 시에 가까운 매체라고 강지이 감독은 강조한다. 전부를 말하지 않고, 감추거나 생략하는 속성이 영화에 있다. 감독이 감춰놓은 것을 보물찾기하듯 하나씩 찾아가는 영화 읽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관객들에게서 그런 점을 기대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시간을 충분히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독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 그리고 관람객의 시간이 서로 소통할 때 영화는 시간을 견디는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영화는 공동체 예술이라고 배웠어요. 그래서 동기들하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영화감독들이 종종 그런 말을 하잖아요. 스태프의 도움이 없었다면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거라고. 영화는 일차적으로 스태프의 시간과 에너지들이 모여서 만들어져요. 그러다 보니 전체와의 소통 문제가 발생하는데, 때로는 저에게 부족한 소통의 문제를 스태프들이 채워주곤 합니다. 그다음에는 관객 혹은 시민과의 소통이 영화를 만들어냅니다. 제가 도서관에서 시민들과 함께 오랫동안 영화 읽기 토론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영화를 자기 삶으로 끌어들여 치유적으로 읽어내고 있습니다. 제가 <연락처>를 제작하게 된 계기도 그런 차원이었어요. 사실 그전부터 가정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치유의 방법을 모색했거든요.”
영화를 통해 자기를 알아가는 것. 내 안에 숨어 있던 자기의 본질을 탐색해 가는 것. 이 과정을 영화는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강지이 감독은 영화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기 전의 ‘나’와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한 편의 영화를 만나고 자기를 알아가는 경험을 해보는 것. 그리고 지속해서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탐색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일을 이미 만들어져 있는 영화를 통해 재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지이 감독에게는 ‘나의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 꿈이 있다. 꿈은 씨앗처럼 심어져 언제든 발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적당한 온도와 햇살이 주어진다면, 그 씨앗에서 생명력 강한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그래서 강지이 감독은 매일 영화를 보고 영화를 상상하고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일이 미지를 향해 가는 ‘두려운 항해’일지라도 말이다.
강지이 감독의 영화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