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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 | 연재 [백희정의 음식 이야기 ]
쑥개떡
백희정 (2023-06-28 15:21:03)



쑥개떡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때그때 해서 먹어야 서운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봄이면 내게는 그것이 쑥을 캐고, 쑥국을 끓이고, 쑥개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고산에서 나는 어반스케치 소모임을 시작했다. 노모를 돌보며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상은 때론 답답하고, 우울하다. 나 자신이 고립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긴 시간을 내어 외출할 수 없는 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 두 세 시간 정도 사람을 만나고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근거리에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모임에서는 올해에도 10회에 걸쳐 강사의 지도를 받기로 했다. 매주 수요일, 3월 둘째 주에 시작한 수업은 5월 둘째 주가 되면 끝이 난다. 마지막 수업은 그동안 그린 스케치를 서로에게 소개하고, 포트럭파티를 하기로 했다. 나는 그림보다 마지막 포트럭파티에 무엇을 만들어 갈까? 벌써 고민 중이다.


모임을 이틀 앞둔 월요일 카톡방에서는 저마다 이런저런 간식을 가져오겠다는 메시지가 올라온다. 떡볶이, 김밥, 샌드위치, 찐빵, 만두, 곶감, 방울토마토. 메시지를 천천히 확인하며 나는 ‘다행이다’라고 혼잣말한다. 그리고 나의 메뉴를 카톡방에 올린다. “쑥개떡”


평소 친분이 있는 지인과 함께 하루 날을 잡아 쑥을 캐러 가기로 했다. 그녀가 봐둔 완주 화산의 야산으로, 한낮의 해를 등 뒤로 하고, 숲으로 난 길을 따라, 호기롭게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비닐 포대와 칼 하나씩을 들고, 들이 아닌 산으로 쑥을 캐러 가다니, 모르는 이가 설핏 보아서는 약초꾼인가 싶었을 것이다.


20분 남짓 산을 올라 목적지에 도착했다. 산불감시를 위해 만들어 놓은 초소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있는 상태로 보였다. 초소 주변으로 큰 나무가 없어서인지 쑥밭이 펼쳐져 있다. 아마 생명력이 강하고 어디서나 자생하는 작물인 쑥이, 이 공터에 먼저 자리를 잡으면서 다른 작물이 자라지 못한 것 같다. 


산속에 있는 쑥이라 깨끗하고 농약이 닿을 염려도 없어 쑥개떡을 해 먹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2시간 남짓 쑥을 뜯었다. 집으로 돌아와 산에서 뜯어온 쑥을 씻고, 삶아 냉동실에 보관했다. 


메마른 바람이 분다. 봄 햇살이라 하기에는 너무 뜨겁다. 봄 가뭄이 계속되더니, 하필 5월 연휴 내내 장대비가 내린다. 아침저녁 노모의 기침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해답을 찾을 길 없는 나는 괜히 이상한 날씨를 탓해본다. 


모임 하루 전, 냉동실에서 돌덩이처럼 얼어버린 쑥을 꺼내 놓았다. 쌀은 씻어 불리고, 오후가 되어서야 녹은 쑥과 불린 쌀을 들고 방앗간으로 향했다. “쑥이 너무 적은가요? 설탕은 많으면 남겨주세요.” 삶은 쑥은 한 번 더 기계를 이용해 물기를 꼭 짠다. 주인장은 기계에 불린 쌀을 넣고, 적당하다며 내게 어디서 쑥을 이렇게 많이 뜯었는지 묻는다. 나는 ‘산에서요.’라는 짧은 대답을 날리며 옅은 웃음을 보였다. 


기계가 쌀가루와 쑥으로 만든 긴 두루마리 종이를 풀어내는 것 같다. 끝없이 풀어내는 하얀 종이 위에 연녹색 물감이 춤을 추며 흘러내린다. 쑥개떡은 다른 떡가루보다 쌀과 쑥이 잘 섞여야 해서 기계에 넣고 내리기를 더 많이 반복한다. 만만치 않은 양이다. 나는 떡을 만드는 수고로움을 좀 덜어보고자 반죽까지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수요일, 아침부터 나는 쑥개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1차 방앗간에서 만들어 온 반죽을 한 번 더 치대고, 일정하게 덩어리를 떼어 손바닥 위에서 굴리다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적당한 크기로 펴서 만든다. 만들어진 연녹색 반죽을 김이 오른 찜기에 30~40분 정도 쪄서 식히면 진초록의 둥글납작한 쑥개떡이 완성된다.  


“음- 간이 딱 맞네. 정말 쫀득쫀득하다. 쑥이 많이 들어갔나 봐? 맛있어요.” 모임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하나씩 가져온 메뉴로 우리는 작은 파티를 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와 격려, 어느새 그림 이야기보다 음식 이야기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나는 가끔 음식을 통해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삶의 희로애락이 음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굳이 땡볕에서 쑥을 캐고, 삶고, 방앗간에 가서 가루를 내리고, 다시 반죽해서 떡을 만들고, 쪄서 먹겠다는 생각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다. 직접 해 먹는 이도, 사서 먹는 이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숲이 싱그럽다. 나는 지금, 나를 ‘생명生命하게’ 하는 음식을 직접 요리해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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