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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8 | 연재 [문화와사람]
<작가를 찾아서>시인 김용택밥과 시와 사랑과 희망의 시인
백학기 시인(2003-12-18 15:17:09)

1
임실서 순창으로 가는 국도에서 모래재를 넘으면 멀리 아래로 청웅면 소재지가 보인다. 점점 국도를 따라가면 주위의 낮은 야산과 들녘을 배경으로, 우뚝 백련산(白運山, 775m)이 우측으로 솟아나고 회문산(回文山)이 가까이 다가온다. 회문산은 두개의 봉우리 장군봉(606m)과 회문봉(775m)으로 능선을 이루며, 그 산자락을 넓게 드리워 운암댐에서 흘러나와 휘돌아 흐르는 섬진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김용태 시인을 만나러 순창으로 가는 국도에 여름날의 짙은 녹음과 함께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섬진강물 소리는 신선했다. 국도 연변에서 스치는 차량들 소리조차 새로왔다. 언뜻 유배지처럼 생각키워지는 강진면을 지나 이름조차 시적인 갈담(葛覆)에서 잠시 쉰 완행버스는 본격적으로 섬진강을 따라 순창으로 내딛기 시작한다. 성미산(成美山)은 후덕한 자태로 완숙미를 드러내며 국도에까지 내려와 있는 데 바로 그 목에서 차를 내린다고 했다. 방앗간과 이발소가 있는 일중리 마을이다. 임실서 여기까지 40분거리다. 내린 곳에서 섬진강이 흘러가는 산 마을 안쪽으로 걸어서 25분여 정도 되는 곳에 흔히 진뫼라 불리는 장산리(長山里)마을이 있다. 전라도 사투리로 통용되는 진외는 긴외, 즉 길게 뻗은 산, 장산(長山)의 뜻이며 행정구역 명으로 진외가 장산리가 되었다. 섬진강을 끼고 앞뒤가 산으로 막힌 마올 진되는 전형적인 한국 농촌의 풍경이다. 논을 사이에 두고 저만치 흘러가던 섬진강물이 산 바로 밑을 흐르며 와 닿아 다시 돌아나가는 위치에 진뫼가 숨어 있다.

2
시인 김용태(金龍澤)은 1948년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에서 4남 2녀중 맏이로 태어나 이곳에서 40년을 살아왔다. 순창농고를 나와(1968년) 교사 양성소를 수료하고 교사 자격시험을 통과, 임실 청웅 옥석분교에서 처음 교편생활을 시작한 그는 궁핍한 시대를 살아오며 전형적 농촌 공동체 사회의 가난하고 서정적인 꿈들을 키워나갔다. 그때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그의 가슴 한구석의 쓸쓸함을 메울 길 없었다. 오전수업을 마치고 돌아간 텅 빈 교실의 아이들 책상들을 바라보며 그는 오랜동안 생각에 잠겼다. 창 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오후의 일과였다. 쓸쓸한 청춘이었다. 그러나 저물녘 논길을 밟아 돌아올 때면 섬진강 물이 따스하게 그의 등뒤를 따라왔고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 꽃불의 산이 그의 가슴을 태웠다. 그는 순창으로 나가 문학지를 사다가 읽기 시작했다. 그 무렵의 그의 작은 소망은 가난한 살림살이 속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놓고 사다 읽는 것과 담배를 보루로 사다 태우며 담배 걱정을 안하는 것이었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그 시절에 그는 월급 액수에서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다음 달로 미뤄야 했을 때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어쩌랴. 사랑스런 동생들과 농사로 억장이 무너진
부모님을 생각하면 책을 사다 읽는것조차 죄스러웠다. 그리고 새벽이면 시를 썼다. 밤 부엉이 우는 소리, 새벽 시린 섬진강 물소리를 들으며 캄캄하게 원고지를 더듬어 나가면 거기 환하게 동터오는 그 자리 아름답고눈부신 들꽃 무더기로 시들이 새벽이슬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뒤편으로 섬진강물이 눈부시게 흘러가고 있었다. 시는 그에게 밥이었다. 희망이었다. 시는 사랑이었다. 70년대는 홀로 문학을 사숙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라고 그는 술회한다. 시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지만 한때 시를 포기한 적도 있었어야 1977년 무렵. 그는 말했다. 세상에 대한 회의였어. 삶에 대한 그것이지. 시로 무엇을할 수 없었어. 배고픈 희망 밖에는 문학이 우리 삶에 무엇을 보태겠어. 그는 그 동안 써왔던 시들을 소각하는 비운도 겪었다. 그가 꾸준히 정기구독하여 읽던 r現代詩學』이나 r心像」에 나오는 기성시들이 그에게는 헛되었다. 시전문지에 나오는 대개의 시편들은 그에게 입맛을 상하게 했다. 그가 살아왔던 삶과는 참으로 무관한 정서 물들이었다. 그런 그가 문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섬진강연작을 쓰기 시작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다. 시를 잊고 지내던 나날 그는 더욱 목마름을 느껴야 했다. 어느날 갑자기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섬진강이 쓰여졌다. 오래 그의 가슴에 고여있던 모국어들이 일열종대로 눈부시게 그의 앞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환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둥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
어보면
노올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돼간다고 마른 강물인가를
「섬진강 ·1」全文

섬진강 물줄기를 호명하여 자기 시의 대들보로 삼은 그는 열병을 앓는다. 가난한 농촌의 서정이 깔리면서도 만만찮은 저력이 읽는 이로 하여금 힘을 느끼게 하는 섬진강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섬진강·1 이후 그는 우리 사회가 가지는 이른바 구조적 모순을 한껏 다가가며 시를 역사와 일치시킨다. 지리산의 뭉룩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은 그에게 가족중 심사적인 둘레에 머물게 하지 않고 끊임없이 역사와 민중이 하나 되는 바다로 밀어내는 추진력이 되게 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해 져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숭불처럼 벌겋게 타오르는 자운영꽃 무더기들을 바라보며 이마 숙이는 앞산 뒷산을 바라보며 시인은 무엇을 생각는가 시인은 참으로 맑고 투명한 모국어로 물 흐르듯 시에 몸을 내맡긴다. 그 시속에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큰누이, 작은누이가 물살의 조용한 흔들림으로 떠 비친다. 갈매빛 능선의 슬픔처럼.

3
첫 시집 r섬진강』 이후 r맘은 날」최근 r누이야 날이 저문다」 까지 세권의 시집을 낸 김용태은 신경림 이래 농촌적 서정을 가장 빼어나게 성취하고 있는 시인이란 평을 듣는다. 섬진강 작은 강변 마을의 산이며 강이며 논밭이며 풀꽃들의 순결한 심상으로 우리들 닫혔던 마음의 둘레를 열게 하고 끝없이 멀고 아득한 길을 꿈꾸게 만드는 김용택은 또한 1950년대 민족 비극사 속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회문산 주변의 野山隊 이야기, 마을 주민의 이야기들로부터 민족의 처참했던 그날을 그리기도 한다. 이와 같이 그는 개인적 정서에서 민족적 정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와 민중을 참으로 눈물겹게 극적으로 詩化해내고 었다.

울어라 귀뚜라미야
저 어둔 새벽 산정에서
날 부르는
내 님의 낭낭한 목소리로
조국을 불러 깨워라
저 산등선 새벽별처럼
나는 쓰러져 강물이 되고
이 어둔 강굽이 부서져
새벽을 소리칠 그날까지
울어라
울어라
겨울 귀뚜라미야
「내 님의 목소리」부분

저문 들에서
우리 아버지를 보았는가
초저녁 달빛 아래
빈 논을 갈아엎고
빈 들을 바라보며
빈 들에 홀로 앉아
담배를 태우는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를
초저녁 달빛 아래서 보았는가

아버지 앉았던 자리
어둠을 사르며
되살아 타오르는 들불,
가만가만 타올라 번지는
그 둥그런 불 안에

사람, 사람들이 땅을 뚫고
붉은 흙을 털며
하나 둘 일어서는 것을
보았는가
그들이 지르는 들불을
「빈들」 1~9행, 20~29행

빈 들의 아버지의 역사와 사람들이 지르는 들불의 분노, 새벽을 소리칠 그날까지 울어대는 겨울 귀뚜리미에서처럼 김용택은 [바른 삶]에 [바른문학]이라는 순 정성으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건강한 시인이다.
제6회 金洙曉文學賞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극구 그가 농사꾼 자식'임을 내세운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건강한 서정성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그의 큰 바램에서이다. 진뫼의 그의 농가 횟마루에서 여름 한낮 더위를 식히며 썰어내온 수박의 시원한 맛을 음미하며 내가 본 그의 인상이기도 하다. 앞산 뒷산에서 징하게 우는 매미 소리와 흘러가는 물소리, 마을 앞 정자나무와 그 그늘 아래 마을 사람들, 그의 어머니와 아내와 그의 아들 민세〔민중세상의 뜻〕가 한번 큰판으로 어우러져 크게 웃을 날을 고대하는 시인 김용택.
지난 6월에 창립된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의장에 피선되어 설레이는 그리움으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그의 생각처럼

……문학 하는 일도 이 세상들이 하는 많은 일 중의 한 일이므로 그 시대적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고는
생명력이 없을 것입니다. 이에 우리 전북지역 문학인들이 그 동안 극히 개인적이고 폐쇄적이고 고립분산적인 타당성을 극복 청산하고 진정한 민족문학의 건강성을 회복 건설하려 이 시대적인 무거운 짐을 젊어지고 일어섰읍니다. 이제 우리는 시대와 민족현실이 절실하게 원하는 곳에서 그 힘겨운 짐을 부려버리는 홀가분함보다 짐을 젊어진 무거움으로 뚜벅뚜벅 걸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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