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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9 | 연재 [시]
농성장에서
이광용(2004-01-27 12:16:08)

이 땅의 선생님들이
돌바닥 위에 모이었다.
이 땅의 선생님들이
농성을 한다.
무기한
단식농성
투쟁
삼복
염천백일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해가 뜨고
해가 진다.
불의한 자와의 싸움,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이라서
날이 새고
놀이 지고
날이 새고
놀이 지리.
바람이 인다.
쓰러져서는 안된다.
어둠이 내린다. 정신이
혼미해져서는 안된다.
어둠이 내리고
어둠에 겹치어
미친 한줄기
바람 몰아쳐 온다.
명동성당 돌바닥 위
사납게 이는 돌가루 먼지가


귀에 
직위해제처럼
해임 처럼 
파면처럼 
악귀처럼 들이친다.
차일로 놓은 펄력이는 벼닐천이 
비명처럼 소리친다
바랍에 겹치어 
한차례 음습한 
빗가루 휘뿌린다
우리의 싸움은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이라서 
그래서 몰아치는 
비바람인가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이 무서워 
원자탄보다 무서워 
어떠한 파렴치한 탄압도 가리지 않는 
부정한 자의 발악과 같은 
광중과 같은 
줄기줄기 미친 비바람 
몰아쳐 온다.
그러나 그것은 한것의 한순간을 넘지 않는것
먹구름 져쪽으로라도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고 
허기진 배의 저 밑바닥에서 우리의 외침은
그래서 지촉을 
뒤흔드는 것이리 
“승리는 우리의 것 
동지애로 뭉쳐진 힘 
전교조 사수하여 
인간화교육 이룩하자 
허위와 
폭력과 
사기와 
협박과 
야유와 
굴종과 
감시와 
귀에 
직위해제처럼 
해임 처럼 
파면처럼 
악귀처럼 들이친다. 
차일로쳐 놓은 펄력이는 벼 닐천이 
비명처럼 소리친다
바람에 겹치어 
한차례 음습한
빗가루 휘뿌린다
우리의 싸움은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이라서 
그래서 몰아치는 
비바람인가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이 무서워 
원자탄보다 무서워
어떠한 파렴치한 탄압도 가리지 않는
부정한 자의 발악과 같은 
관중과 같은
줄기줄기 미친 비바람
몰아쳐 온다. 
그러나 그것은 한것의 한순간을 넘지 않는것
먹구름 저쪽으로라도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고 
허기진 배의 저 밑바닥에서 우리의 외침은 
그래서 지촉을 
뒤흔드는 것이리
“숭라는 우리의 것 
동지애로 뭉쳐진 힘
전교조 사수하여
인간화교육 이룩하자
허위와 
폭력과 
사기와 
협박과 
야유와 
굴종과 
감시와 
쓰러져도
쓰러져도
그래도 우리의 싸움은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이라서
무거운 눈꺼풀 눈 감기는 얼굴에
띠는
시냇물의 노래 같은
애잔한 미소
가라.
콩나물 교실은 가라.
입시전쟁은 가라.
반민족, 반민주, 분단고착의 거짓 교육은 가라.
교육귀족 이성 잃은
지푸라기만 가득 찬 머리통
백골단
장학사
교장은
가라.
민족현실을 외면하고
외세의존에서
분열책동에서
매판자본, 밤그늘, 문어발 같은 상륙에서
더러운 명줄 이어보려는
코쟁이 쪽발이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리고
코쟁이 쪽발이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로 배를 채우고
눈먼 궤변의 안일에 잠기며 썩어가는
파쇼의 끄나풀들
자신을 속이고
저 좋아 스스로 눈먼 너희들
비양심은 가라.
갈아 엎은 논바닥 철 지난 독새기 풀짚처럼
쓰러진다.
쓰러진다.
쓰러진다.
쓰러져도
뒤엎이는 흙의 무게에
짓눌려
가라.
태양열 앞에 말라가는 고여 썩은 소태의
태양열 앞에 말라가는, 죽어 엉킨 소태의
녕검지처럼
녕검지처럼
녕검지처럽
청천백일하의 거짓말처럽
위증의 플랑크톤처럼
앞라서
죽어서
죽어서
말라서
가벼운 바람결에라도
불려서
가라.
죽은 자 화장터 갯가루
강물 위에 뿌려지고
그처럼 아주아주

가뭇없이 사라지라.
백년대계
이 땅의 교육을
바로 세우려는
금강석 같은
견결한 한마음
밤하늘 별자리 같은 우리 지향 앞에서
한낮의 태양빛 같은 우리 신심 앞에서
아주아주 가
가뭇없이 사라지라.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의 드넓은 광장을 떠나
역사의 큰 물결에 휩쓸려 가
우리 눈 앞에 행여
헛개비의 불처럼이라도 나타나지 말라.
아예 가 없어져 다시는 다시는 어른거리지 말라.

이리중학교
안도현
어느 때묻지 않은 손이 닦아놓았나
유리창을 열면
군산선 화물열차가
바다에서 돌아오는 콧
운동장 앞으로는 목포 여수 서울로
호남선과 전라선이 달리는 곳
짓꽃은 아이들이 그래서 기차길 옆 오막살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리중학교, 꼭두새벽 도시락 싸서
나는 낡은 외투를 입고 출근하고
아이들은 무거운 가방을 데리고 등교한다.
우리나라 모든 학교가 그러하듯이
월요일 아침이면 애국조회가 열리고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
아무것도 모르는 가슴에 손을 대는
일제 치하 어린 학동 교장선생님이 그러하였듯이
분단 나라 젊은 국군 담임선생님이 그러하였듯이
측백나무처럼 오와 열을 맞추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코같이 맵고 발이 시린 겨울
이리중학교에서
누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나
일주일에 스물네 시간 국정 국어교과서를 가르치
한 달에 스무 시간 보충수업을 하는
조회 종례 때마다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수업료 보훈성금 방위성금 불우이웃돕기 성금
극기훈련비 수학여행비 졸업앨범비
날이면 날마다 독촉을 하는
명찰 배지 실내화 두발검사를 하는
성적이 떨어지면 매를 때리는
나를 아이들은 선생님, 하고 부른다.
나는 분필밥 겨우 2년 먹었는데
나는 봉급날을 기다리는 가난한 월급쟁이인데
나는 넥타이도 제대로 밸 줄 모르는데
나는 배고픈 아이 라면 한번 못 사주었는데
이 유리창을 닦으며
모르는 사이에 하늘을 닦던 아이들 중에
먼 바다에 배 타고 고기잡으러 간 아이는,
소작 얻은 황토밭에서 배추 뽑고 있는 아이는,
아리역 화약폭발 사고 때 하늘로 떠난 아이는,
그때 살아 남아 교문 앞을 손수레 끌고 바삐 지
나는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다가 감옥에 간 아이는,
귀금속공장에서 하얗게 밤새는 재작년의 아이는,
추억의 동창회가 열려도 돌아올 줄 모르고
그 옛날 총각선생님 머리 위에는
눈이 내렸다.
그 옛날에 졸업한 아이가 출세하는 동안
해진 출석부 끼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버드나무들이 톡톡 손가락 꺾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러면 봄은 또 멀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그날 평교사를 위한 시를 쓰고 싶었다.
겉보리라 불리던 김경회 수학선생님이
책상 속을 정리하고
40여년 교직생활을 그 서랍을 닫고
홀로 뒷모습을 보여주며 떠나시던 날
나는 숙직실 수돗가에서 얼굴을 씻고
까닭없이 새어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이리중학교야
나도 저 무명의 찬란한 길을 가리라.
점심시간이면 김치 냄새가 우리를 적시는 교실에서
손목과 발목이 굵어지는 운동장에서,
추운 아침이면 서로 뿜어주는 입김 속에서,
모이면 햇불이 될 아이들의 수많은 눈빛 속에서,
이 뜨거운 조국의 한복판에서,


지금 남한에서는
김영춘
이 나라 선생님들
악마 같은 돈이 미워서 불쓰듯이 뿌려 없애기라도 했는지
띄약볕 한여름 뚫고 경제교육 받으러 간다.
이십대 선생님도 오십대 교장선생님도 간다.
걷고 자전거 타고 오토바이 타고 별 일이 있어도 간다.
소집 시간이 가까워지면
읍내 국민학교 강당 앞에 슬금슬금 모이는데
형편이 말씀이 아니다.
유행 지난 양복에 그을리고 찌둥그린 이맛살에 
아이들에게 보충수업비 받은 것이 죄로 갈 일이
라고 생각하는지
반가운 대학 동창을 만나도 눈도 제대로 못 맞춘
악수 나누고 총총히 강당 안으로 사라져 간다.
공산당이 봤으면 기관원이 감시한다고 하겠다. .
사라진다고, 그냥 사라질 수도 없다. 
이릅 주민등록번호 착실히 적어 내고
빌린 강당 상한다고 양쪽 발 구두 위에 
시장에서 물건 살 때 담는 비닐 씌워 발목 묶어 
들어간다. 
이 몰골을 집에 가던 아이들이 볼까 무섭구나
시장가던 마누라가 볼까 두렵구나 
교실 두어 칸 크기의 의자없는 강당 마룻바닥에
삼사백명 선생님 줄맞춰 주저앉는다
슬라이드 상영한다고 창이라고 하는 창은 모조리 
검은 천으로 가리니 
살다가 병신된다더니 이게 무슨 꼴인고
폭염 속 사람 삶아 죽이는구나
교육동지들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만나 뵙게 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자리가 불편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해마다 똑같은 소리로 교육장님 인사를 하자.
선생님들 하나같이 기댈 곳도 없이 잠들기 시작하고
슬라이드 저홀로 돌아가는데 내용이 폭발적이다.
야간학습까지 시켜 가르쳐 떠나 보낸 아이들은
어딘가로 화염병만 육십분간 던져대고
김일성의 졸개인지 선생님의 동포들인지는
핏발선 눈으로 육십분 내내 대포알 쏘아대고
뒤이어 올라온 젊은 강사는
제가 누구한테서 배워서 출세했길래
국제정세 이야기한다며 반말했다가 말았다가 하고
약장수 같은 말솜씨로 자는 선생님들 깨워
야당 총재를 준엄하게 꾸짖다가
그러니 선생더러 이나라 경제를 어찌하라는 것인
지 말도 없이
위대한 경제교육이 막을 내린다.
깨끗한 선생님들 발냄새 땀냄새 어우러진 속을 지나
허겁지겁 비닐 끌러서 돌려주고 나오는 길
선생 무너진 가슴 재가 되고 재가 된 가슴 눈물도 없어라.
곧 피도 마르겠구나.
그래도 국민의 학교라고 키운 비둘기 몇 마리
담장 너머로 훨훨 날아가는데
모진 햇빛이 두 눈을 쏘아 어지러웠다.
혹시 북쪽 하늘 아래 사는 동포들
우리가 김정일이 핏대 올리는 화면을 보고 있는 동안
이런 텔레비전 연속극보고 있는 것 아닌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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