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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7 | 연재 [저널초점]
이제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
-우리의 귀와 눈과 가정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종민 편집주간(2004-01-27 15:07:22)


 바야흐로, 이른바 “총체적 난국”이 무르익고 있다. 파쇼세력과 독점재벌과 철새 정치모리배들이 쿵짝쿵 모여 단합대회를 하면서 공갈협박용으로 만들어냈던 이 말이 이제 살아있는 뱀처럼 무시무시한 혀를 날름거리며 우리의 몸을 옥죄어오고 있는 것이다. 유신의 본당임을 자처하던 퇴역 정치군인과 ‘학실히’를 외쳐대던 ‘명승부사’가 함께 골프를 치러 다닐 때만 해도 우리는 설마 했었다. 그들이 다시 “참여속에 개혁’을 외치며 자기들 스스로가 타도의 적으로 규정했던 세력과 야합을 할 때만 해도 우리는, 물론 더 나아질 것은 없겠지만, 이들 스스로가 되지도 않을 자신감에 취해 적어도 과거와 같은 무리수를 쓰지는 않으리라 속없이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낙관은 속없는 것이었다. 시국사범은‘공포의 5공’시절 보다도 훨씬 더 늘어났다. 소련과 중공에는 비굴할 정도의 추파를 던지면서도 같은 민족인 북한에게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야멸차다. 말로는 독일의 통일을 본받자고 하면서 통일의 실질적인 걸림돌인 구닥다리 반공 이데올로기와 무소불위의 위력을 가진 국가보안법은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경제활성화를 명목으로한 갖가지 조처들도 결과적으로는-사실은 원래부터 의도했던 바겠지만-독점재벌들의 배만 부르게 하여 빈부의 격차를 훨씬 더 심화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부자들에게는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패배적 허무주의를 심어주고 만 것이다. 게다가 국민의 기본권인 청원권마저 인정하지 않은 채, 동료교사들의 원상복직을 국회에 탄원하기 위하여 서명한 교사들을 처벌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으며, 사학재단의 비리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전원 유급 시키겠노라고, 유신 때보다도 더한 전횡을 휘두르고 있다. 어찌 보면 주체할 수 없는 자신감의 발로인 듯 도하고, 어찌 보면 이른바 ‘난국’올 타개하기 위한, 막판에 몰린 쥐새끼들의 마지막 발버둥인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무리수들의 저의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민자여, 영원하라! ”의 실현이다. 그것을 우리는 최근에 자행되고 있는 언론재장악 음모에서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임명권자의 권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공영방송에, 아니 우리 시청자들의 안방에, 경찰병력을 난입시킨 뻔뻔스러움에서, 대학언론에 대한 유신시절의 그것보다도 더 저열한 규제조치에서, 80년 언론대학살보다도 더 교묘하고 가증스러운 ‘방송구조개편안’에서, 우리는 저들의 음흉한 장기집권의 음모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언론을 장악하지 않고는 ‘민자의 전성시대’를 꿈꿀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정권창출의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는 정권일수록 이를 절실히 요구한다. 이는 이미 많은 쿠데타 선배들이-성공한 자들은 그 빛나는 전범으로, 실패한 자들은 그 참담한 시행착오로-몸소 확인해준 엄연한 역사의 당위이다. 앞선 독재자의 언론정책과 그 구조를 후배가 비판하고 그 후배는 다시 그것을 구시대의 유물이라 매도하며 새로운 구조를 내세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살모사’들이 유신(維新)을 내세우며 제 에미를 잡아먹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터전으로 엄청난 해악을 주위에 끼친다는 데 있다. 현대사회에서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방송매체의 영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재삼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교육정책과 마찬가지로 단 한번의 시행착오도 용인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라는 너무도 뻔한 사실을 확인하면 될 것이다. 전문가들이 방송구조를 개편하는 데 있어서는 한나라의 헌법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은 정부가 한시적으로 구성한“방송제도연구위원회”의 고작 10개월에 걸친 밀실에 서의 작업결과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러한 연구결과 마저도 무시한 채 정부가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 임의의 일방적인 안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 이제까지의 방송구조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방송구조로는 자신들의 장기집권 음모를 성사시키기 어렵다는 상황판단하에 방송 더 나아가 언론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개편을 기도하고 있음이 너무도 명백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 이 문제는 소수언론인들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정치적으로 이들의 장기집권 음모를 저지한다는 의미에서도 절실한 문제이지만, 일상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귀와 눈을 보이지 않는 방송공해로부터 보호하고 또 우리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방송에 의해 자행될 거짓된 이데올로기의 강요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의미에서도 긴요한 일인 것이다.
방송노조에서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자, 정부안의 무리한 부분 들올 지적하면서도 ‘노조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해보라고 점잖게 타이르고 있는, 싸움 말리는 시누이 같은 전문가들에게 이러한 문제를 맡긴 채 팔짱을 끼고 있을 수 는없다.(항상 정치적 영향권 밖에 있는 듯 하면서도 정치적 풍향에 가장 민감한 이들의 병주고 약주고 하는 기회주의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본질적인 문제점은 도외시 한 채 ‘민방은 누구에게 ?’ 따위의 문제들에나 열을 올리고 있는 일부 언론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정권의 교묘한 언론 책략에 놀아나 방송 프로듀서들의 스캔달(?)에 선정적인 주간지 마냥 호들갑을 떨었던 천박한 일부 언론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여기서 장기집권을 위한 언론 ‘땅고르기’라는 많은 사람들의 지적을 새삼 떠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방송사익 정부 예속의 심화, 정경유착의 확대, 시청율 경쟁으로 인한 프로그램의 저질화, 과열광고로 인한 과소비의 조장, 재벌에 의한 광고독점의 심화 등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다시 왈가왈부하는 것도 쑥스러운 일이다. 문외한으로서, 또 나 하나만의 삶에만 신경을 쓰는 소시민으로서의 관심은, 결국 이로 인하여 우리의 생활이 어떠한 영향을 받게될까 하는 점이다. 그놈이 그놈, 어떤 놈이 집권을 하든 우리 먹고사는 것에는 큰 변함이 없을 것이다. 장기집권을 획책하든 정경유착이 심화되어 자기들끼리 땅을 나누어 먹든 특혜를 나누어 가지든, 그것도 ‘먼 나라의 일’이다. 그러나 잘못된 방송구조로 인해 우리의 눈과 귀가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고‘토끼처럼 귀여운’ 우리 자식들이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에 오염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허위의식으로부터 ! 보호해야 한다. 우리의 귀와 눈과 가정을 ! 이를 위해 저 음흉한 ‘방송구조개편안’ 통과를 저지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저들의 야욕을 저지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만 우리의 건강한 삶이 보장받을 수 있다. 더 이상 우리의 건전한 문화적 풍토가 저들 야욕의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식과 함께 보기가 민망스러운 상업적 쇼프로그램이나 선정적 폭력물에, 건강한 의식을 마비시킨 채 허위의식만을 강요할 문교부 주관의 교육방송에, 사행심만을 부추길 선전광고에, 정부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홍보해댈 기획물이나 비판 없는 뉴스 프로그램에, 텔레비전 없이는 하루도 지낼 수 없을 것 같은 우리 자식들을 방치해 놓을 수는 없다.
이 글이 인쇄되는 동안, 저들은 결국 이 법안을 날치기로-약간의 수정을 가한 채-통과시켜 버렸다. 그렇다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 하루 하루의 삶과 직결되는 이 악법의 폐지를 위해 우리 모두의 작은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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