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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2 | 연재 [교사일기]
만능교사와 전문교사- 교과 전담제의 필요를 절감하며 -
정수옥 ;대산초등학교 교사(2004-01-29 11:43:12)

내게 교직경험은 늘 새롭기만 한 것이다. 언제나 시작인 듯하고 두렵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한다. 학년말이 되면 ‘내년에는 그간의 경험이 있으니 많이 힘겹지는 않을 거야’ 하며 자신감을 갖지만, 3월이 되어 아이들을 만나면 그전의 경험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 생각과 이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막연함을 느끼곤 한다. 그런 느낌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다른 특성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그러나 막연함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긍정적인 특성을 가꿔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 그러나 지난 해에는 그러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이 아이들 속에서 돋아나는 싹들을 어떻게 하면 짓밟지 않고 보살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듯하다.
지난 해에는 그 동안 줄곧 1학년을 맡아주시던 오선생님께서 정년퇴임을 하시게 되어 1학년을 내가 맡게 되었다.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과 자신없어 하는 마음이 서로 싸우다 결국 잘할 수 있을거야 하는 마음이 이겨 1학년을 맡게 되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1학년 아이들의 정서, 심리, 신체적 특성과 생활․학습의 목표, 학기초 준비할 것들에 대해 살펴보고 잘해보자는 다짐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보다 뭔가 잘못 되어 간다는 느낌이 삐죽삐죽 살갗을 뚫고 올라왔다. 아이들 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발견해내고 저마다 자기표현을 만족스럽게 할수 있도록 돕는 일이 교사의 일일텐데 그 일이 제대로 되어 가지 못했다.
국민학교 1․2학년의 교육과정에 음악, 미술, 체육은 ‘즐거운 생활’이라는 통합교과로 다루게 되어 있다.
음악에 대한 내용은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다행히 조금은 자신이 있는 터라 재미있게, 자신감도 가지면서 수업할 수 있었다. 체육에 관련된 내용도 대단한 기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어서 부담을 느끼지 않고 즐겁게 수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술에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달랐다. 특히 회화부분은 더욱 난처했다. 당황하는 가운데 자신없는 수업이 되었다.
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미술에 대해서 상당한 거리감과 열등감을 가졌던 나에게 아이들 앞에 서서 즐거운 미술시간이 되도록 한다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맨 처음 교단에 설 때부터 안고 있던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였다 해도 해결되지 않고 마음에 짐이 될 뿐이었다.
우리 반에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고 재능이 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재능이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내능력은 그 아이들의 재능을 키워 줄 만큼은 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 능력이 이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저마다 가진 독특한 표현 방법을 잃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려준 점이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즐거운 생활'시간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게 해주는 것과 앞으로 미술 분야에 재능이 있는 교사를 만나 질 높은 교육을 받게 되기를 기원하는 일 뿐이었다.
초등교사의 상당 수는 예능 교과에 대해 내 경우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이웃 학년의 김선생님은 음악교과에 자신이 없어 고민을 많이 했다. 한번은 음악에 자신이 있는 옆 학급 선생님과 의논하여 김선생님 반의 음악시간과 옆 반 체육시간을 서로 바꾸어 수업하기도 했다. 그러기를 거의 일년 동안 했는데 그럴 수 없을 때에는 컴퓨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미술수업에 대해 가장 고민을 많이 하고 그 분야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높다.
국민학교 교사는 만능이어야 한다고 한다. 과연 그래야 하는가? 교사도 인간인데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만능인이라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런 사람을 찾기도 만들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만능인보다는 전문인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지난 90년경 TV에서 방영된 ‘사랑의 학교’(멕시코의 국민학생들의 생활을 소재로 만든 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화면 속의 그 학교가 내게는 낙원으로 보였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훌륭한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특히, 예체능 교과 전담제가 실시되고 있는 장면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우리가 원하는 것이’.
91년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교과 전담제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고조되었다. 사실 교과전담제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초등교사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교과전담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흥겨운 분위기가 절로 만들어졌다. 학교 현장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문제해결의 한고리로 교과전담제가 등장하곤 했다. 그런 결론에 모두 한바탕 웃을 수 있었고 가슴 속에는 희망찬 숨결이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교과점담제가 이루어진다면 아이들에게 죄스럼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고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난 무얼 가르칠까’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보기도 했다.
실제로 그리된다면 미적 감각이 풍부한 아이들이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학교교육만으로 충분한 학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교육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기에 시간, 경제적으로 아이도 부모도 부담을 안게 되고 교사는 나름대로 고심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고학년을 담임하였을 때는 수업준비를 퇴근한 뒤 집에서 하기가 예사였다. 실제로 화장실 가는 것조차 뒤로 미루다 보면 점심시간이나 퇴근 무렵이 되는 일이 많을 지경이니 수업 끝내고 다음날 수업을 준비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다 개인적인 일로 수업 준비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날은 하루 종일 허덕이게 되고 기분이 언짢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게하고 또, 교사들의 심적인 부담과 과중한 수업으로 부터의 해방을 위해서도 교과전담제가 꼭 실시되어야 한다.
올해는 교과전담제가 꼭 이루어져, 한결 개운하고 즐거운 마음이 되어 수업에 임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해 본다. 아이들과 사랑을 흡족하게 나누며 생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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