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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3 | 연재 [문화저널]
겨울여행(3)
박남준 시인(2004-01-29 11:50:59)

붉은 동백이 지는 날, 동백처럼 목숨이 진다면…….
지는 것은 동백만이 아니었다. 나고 지는 것이 그러할까 동백의 오동도를 뒤로하고 떠나는 여수, 그러나 끊이지 않고 떠나지 않는 죽음의 가슴 아픔은 더는 나갈 수 없는 숙명처럼 완강한 방파제를 치며 물러설 길 없이 밀려 속살마저 낱낱이 부서지는 파도의 그것처럼 떠나지 않고 묻어 질척이며 따라왔다.
그것은 그간 시름시름 앓아 오던 아버지의 지병이 폐암의 막다른 상황이라는 선고를 서울 대학병원에서 재차 확인하였던 때문이기도 했다.
6개월, 죽음으로 가는 그 시간은 어떠할까? 아버지의 생명은 앞으로 길면 6개월이라는 것이다. 평생을 그 마디 굵은 두손 끝에서 겨운 일을 놓고 하다못해 곤한 잠 한숨을, 어디 여행 한번을 맘 편안히 떠나본 적이 없었던 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곧장 아버지 곁으로 달려가지 않고 여행길을 떠나온 것은 죽음의 그 고통스럽고도 암울한 현실을 우선 나부터서도 받아들이기에는 칠흑의 적막강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먼 황천길을 담담히 지켜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벌써 땅거미를 그리는 겨울 해가 뉘엿뉘엿 낙조를 이루는 해운대, 여행을 떠나온 사흘의 낮밤이 마치 내 고향 앞 바다의 들고나는 뻘밭처럼 속절없이 흘렀다.
도심의 카페나 싸롱의 은근한 아니 아스라한 불빛을 슬며시 내보이며 오가는 행락객을 유혹하는 이색적인 해운대의 포장마차 숲을 지나 허름한 여인숙에 방을 청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을 지체하지는 않았다. “오천은 받아야 되는데요” 짭짭할 소금기가 어린 목소리의 주인 아주머니는 그러나 목소리와는 달리 천원을 거슬러 주며 곱게 눈을 한번 흘기고는 불문을 활짝 열어놓겠다는 따뜻한 배려를 해 주었다.“복받고 사십시오!”
해운대의 밤 바다 위에 놓인 하늘에 하나 둘 점등을 해 가는 겨울 별들이 내가 결코 이렇게 살아서는 건널 수 없는 백두천지의 끊어진 탯줄처럼 검은 바다위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며 모래사장을 부산히 오가던 사람들도 이제 몇 보이지 않는다. 이곳 부산에 와서 처음 사보는 대선소주 한병과 안주로는 맛동산이라는 과자를 앞에 두고 그랬었다. 그랬었다 허허로운 웃음이 파도소리에 실려 떠돌았다. 그 웃음이 파도를 타고 밀물지며 가고 올 때 백혈병처럼 창백한 하현 달빛에 술병은 어김없이 비어가고 있었으며 그 만큼이나 나는 소리 죽여 백사장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울음은 아버지로 인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내 자신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탓하는 울음이었다.
이렇게 흘러온 것이냐? 예수는 이 나이에 세상의 죄짐을 떠 맡겠다 했는데 그것은 내가 이제껏 살아오며 비로소 던진 남루한 반문이었다.
못난 놈, 서른 세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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