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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3 | 연재 [교사일기]
나를 일깨우는 소리-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김재관(교사부안고등학교)(2004-01-29 11:53:40)

처음에는 그저 곱게만 느껴지던 책제목 때문에 몇 번이고 되새기다 보니까 자꾸 새로운 느낌으로 와닿는다. 3년동안을 비교적 가깝게 지낸 한 학생이 쑥쓰러웠던지 다른 학생을 통해 졸업선물로 보내온 그 책은 오늘도 나의 교단생활을 차갑지만 낯설지 않은 시선을 h지켜보고 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책 내용과는 관계없이 그 몇 개의 단어들이 주는 중량감에 나는 압동당하고 말았다. 진정 지난 3년동안 나에게 “우리”라는 아름다운 울타리가 있었던가. 얄팍한 지식으로 무장한 일그러진 나는 편견과 냉소를 무기로 삼아 그 나머지 빈터를 누비고 있을 푸른 꿈들을 잘도 짓밟고 살았다. 그리고 열린 가슴들이 열려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당해야했을 슬픈 시간들이 어디에 발붙이고 뿌리를 내리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채.
진정 이곳에 “우리”는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있는가. 다시 눈을 크게 떠봐도 한 사람의 진실과 사랑이 왜곡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길을 찾으려고 한때 애써 노력한 사람들은 무대의 저편에 있다. 참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하며 그럼으로써 더 넓게 껴안고 사는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야 한다.
왜 나는 ‘우리’라는 관계 맺기에 냉정했는가

3년전 임시교사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을 등지고 학교를 처음 찾아들었을 무렵 나는 이미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국어사전의 한쪽끝에서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을 “졸업정원제”의 거친 파도에서 운좋게 살아남아 대학을 마쳤을 때, 교사를 꿈꾸던 우리 젊은 영혼들은 서로 등을 두드리며 곡조도 맞지 않는 노래를 밤새도록 부르며 그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우리의 무대는 교실이 아니었고, 누구도 손 내미는 이 없는 쓸쓸한 길거리였다.
우리는 각기 홀로 서야만 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한 생각도 없이 밤을 막연히 견디고 홀로 섰을 때는 우리는 이미 ‘우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이상한 사람이 되어 무대에 오르자 무대를 사랑하여 노래해야 할 배우들은 벌써 지쳐있었다.
왜 배우들은 지쳐 있었는가.
스스로의 빛과 향기와 소리를 지니기에는 무대위에 멋부림이 없었으므로, 이미 의상과 분장이 정해진 무대위에서는 언어와 몸짓마저 배우의 선택 바깥에서 웃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의 무대에서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우두커니 서서 들을 때 불현듯 뉴스 영화의 애국가 장면이라도 클로즈업 해오면 그들은 좁은 세상을 뜨는 새가 되고 싶었다. 그들도 무대 위에서 어느 못생긴 개그맨처럼 누구를 욕하고 싶었고, 또 없어져야 한다고 소리치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너지는 침묵이었다.
왜 무대를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열고 닫아야 할 관객들은 여기를 조용히 떠났는가. 언뜻보면 다른 듯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대위의 배우들은 한결 같았다. 그들의 소리는 공허했고, 눈은 항상 먼 나라를 꿈꾸듯 깊어 보였다. 언젠가 마치 학교수업이 대학입학의 입장권 같이 팔릴 때, 그 학생은 공장에 다니는 홀몸의 어머니를 생각했고, 그 어머니의 외로움을 느끼며 흐느꼈다. 삶의 한복판에서 그는 고통스런 삶을 함께 노래해 줄 배우를 기다렸다. 갖가지의 억눌린 모습으로 모두가 그러했으나 현실과 꿈 모두를 노래하는 배우들은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기다려야 한다고, 이곳을 떠나서는 그나마 배우 자체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그들은 머뭇거렸다,. 머뭇거림이 절망으로 변하고 다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배반으로 변하자 그들은 지친 마음을 떠나 보내기로 한다.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또 한편으로는 슬픔을 읽으며…. 이렇게 해서 남아 있는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우리”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나의 무대에 막이 내려졌을 때 텅빈 객석은 졸고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처럼 아무런 느낌조차 없이 되돌아서는 나에게, 너는 남모르게 꽃 한송이를 무대위로 던졌다. 원망과 기다림의 뜻까지를 포함해서, 그리고 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났고 그것이 홀로 남은 나로 하여금 우리를 뜨겁게 찾도록 만들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3년을 어김없이 보내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를 꿈꾸는 나는. 오늘밤 독한 소주 한잔을 마시고 나를 일깨운 네게 보내는 대사를 마음껏 외치고 싶다.

3월이 오면
아직도 적은 그대 이름을 사이에 두고

머언길 모퉁이에서
우리는 만나야 한다.
조심스런 그리움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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