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1.6 | 연재 [문화저널]
단풍나무가 된 아이
박남준 시인(2004-01-29 13:58:29)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을 걸어갈 때 아 참으로 몸과 마음은 상쾌하여라! 이는 나무들이 탄소 동화작용으로 내뿜는 산소며 일종의 향기와도 같은 피톤치크라는 물질으 효과이기도 하다.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우스갯소리나 한마디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들중에 혹시 지리산이나 한라산 또는 모악산에는 도대체 몇그루 나무가 자라고 있는지 대략이라도 알고 계시는 분이 있으신지? 저는 이들 산들은 물론 나아가 울울이 창창 크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듯 우거진 백두산의 나무 숫자도 대략이 아니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올시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아니 제가 왜 이 땅의 농부들이 피땀흘려 지은 값진 밥, 하늘 같은 밥을 먹고 세상에 할 일이 어디가 없어서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모리배와 같은 이 땅의 정치꾼들처럼 거짓을 일삼겠습니까. 위에서 말한 산들의 나무는 모두가 똑같이 이백하고도 마흔 아홉나무입지요. 눈을 들어서 어디 한번 울창하게 우거진 산들을 바라보십시오. 그 산들은 한결같이 위에는 빽빽하게 나무들이 들어 섰지요. 다시말하면 빽빽이 백백하게 들어 섰으니까 백백이면 이백아닙니까 그리고 또 밑에는 칙칙하게 칠칠하게 우거졌으니까 칠칠이면 칠칠에 사십구 그러니까 도합 이백마흔아홉이라 이 말씀입지요. 재미없다고요? 사실은 저도 써 놓고 보니까 재미가 썩 신통치 않구먼요. 그럼 단풍나무가 된 아이를 시작하겠습니다. 아 참 단풍나무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초여름의 날씨에도 꽃자주색으로 붉게 물들어 있는 단풍은 우리나라에 있는 본래의 자생종이 아니라 일본산 단풍인데 이를 적단풍이라 합지요. 그리고 요새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져 있고 특히 금산사로 가는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잎이 세 개가 달린 단풍은 중국 단풍이라고 합니다요. 여기에서는 그야 두말할 것도 없이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 와서야 비록 곱고도 고운 붉은 빛깔로 물이 드는 우리나라 단풍나무를 가지고 부족하나마 동화를 한번 꾸며 보았습니다.
옛날에 어느 깊은 산 속에 가난한 아버지와 단풍이라는 조그마한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단풍이가 두 살때 어린 단풍이와 아버지를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답니다. 어마가 안계시니까 조금 쓸쓸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단풍이는 우울해 하지 않는 항상 착하고 명랑한 아이였습니다. 그것은 단풍이는 우울해 하지 않는 항상 착하고 명랑한 아이였습니다. 그것은 단풍이가 발뒤꿈치를 든 키발을 서고 서도 두팔을 벌린 만큼이나 더 키가 큰 아버지가 단풍이를 아주 아주 사랑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이산 저산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캐어 오신답니다. 아버지가 약초를 캐러 나가시면 단풍이는 모아 놓은 약초를 그늘에 말릴 것은 양지바른 곳에 내다 말리기도 하며 꾸벅 꾸벅 낮잠을 자기도 한답니다. 참 단풍이에게는 검정 코빡고무신이 두켤레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루는 아버지가 큰 광주리로 가득 모아 놓은 약초를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 가서 팔고 오실 때 처음으로 신발을 한 켤레 사오셨답니다. 단풍이는 아버지의 큰 키만큼이나 깡충깡충 뛰며 얼른 방안으로 들어가 신어 보았더니 두발에 꼭 맞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날밤 단풍이는 신발을 신어보고 또 신어보고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그것은 산 속에 있는 친구들에게 예쁜 검정 코빡고무신을 자랑하러 갈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약초를 캐러 나가시자 단풍이는 신발을 두손에 들고 다람쥐가 살고 있는 곳에 갔답니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이 예쁜 신을 보렴”하고 말하자 다람쥐는 몹시 부러워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단풍이는 다람쥐에게 신발을 신어 보라며 주고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둘이서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고 까치도 사슴도 아기곰도 모여들었고 단풍이는 신발놀이를 하며 산속의 친구들과함께 산속의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았습니다. 아버지가 단풍이가 신발을 신지 않고 두손에 가지고 다니며 산속의 친구들과 노는 것을 알고 얼마전에 똑같은 신발을 또 사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단풍이는 한 켤레는 신고 다른 한 켤레는 친구들과 가지고 놀기도 하며 즐거웠답니다. 단풍이는 이렇게 좋은 아버지와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비록 단풍이와 단둘이 살기는 하지만 단풍이네 방안에서는 항상 웃음이 넘쳐나왔습니다. 어제는 다람쥐가 아주 큰 알밤을 다섯알이나 주었습니다. 단풍이는 맛있는 군밤을 만들어 가지고 약초를 캐러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자 단풍이는 아버지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빠 눈 꼭감고 아- 해봐 내가 맛있는 것 주께” 단풍이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더럭 겁이나기도 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그전에도 단풍이는 맛있는 떡을 준다고 말하고 흙으로 만든 떡을 아버지의 입 속에 넣어 준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번에는 또 무엇일까? 하며 마음 속으로 몹시 궁금하였지만 단풍이가 한 손으로 눈을 꼭 가리고 있어서 살짝 눈을 떠 볼 수도 없었습니다. 단풍이는 아버지의 입안 가득 군밤을 넣어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는 흙으로 만든 떡이 아니고 구수한 군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맛 있지?”하고 단풍이가 말하자 “아이구 우리 단풍이가 최고구나”하며 단풍이를 꼬옥 안고 방안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단풍이는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없어도 구김살 하나 없이 잘자라주는 단풍이가 참 고맙고 대견하기도 하여 행복했습니다. 요즈음 단풍이에게는 또 한가지 신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또 한가지 신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다른일이 아니라 세밤만 자고나면 아버지께서 단풍이의 고운 때때옷을 사오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단풍이는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때때옷은 얼마나 이쁘게 생겼을까? 어서 세밤이 가고 아버지가 큰 마을로 약초를 팔러 가셨으면 하고 기다렸습니다.
이제 하룻 밤만 자면 내일은 아버지가 단풍이의 때때옷을 사오시는 날입니다. 오늘도 단풍이는 약초를 말리며 산속 친구들과 통통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오시면 내일은 단풍이도 함게 마을에 가고 싶다고 말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밤이 깊어서도 아버지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단풍이는 겁이 났습니다. 아버지가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어 버린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무리 깜깜한 밤이라도 한번도 길을 잃어본적이 없었습니다. 단풍이는 이런 생각을 하다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다음날 아침 단풍이가 눈을 뜰 때까지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오시지 않고 단풍이의 때때옷을 사오신다는 날도 지나 버렸습니다. 단풍이는 이제 때때옷도 필요 없었습니다. 아버지만 돌아오시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단풍이의 크고 맑은 두 눈엔 어느새 그렁그렁이 눈물방울이 맺혔습니다. “아빠야- 단풍이는 마침내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되신 걸까요? 아버지는 그날도 깊은 산속으로 약초를 캐러 가셨답니다. 그곳에는 약초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꾸 자꾸 깊은 산 속으로 들어 가셨답니다. 얼마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 왔는지 모릅니다만 밤이 다되어서야 망태에 겨우 약초를 채울 수가 이었습니다. “너무 늦었구나. 빨리 집에 돌아가야지” 아버지는 밤늦도록 밥도 먹지않고 기다리고 있을 어린 단풍이를 생각하며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시다 그만 발을 잘못 딛어 높은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아! 이 일을 어쩌지요. 어린 단풍이를 혼자두고 아버지도 엄마처럼 하늘나라로 가버리신 것이었어요.
깊은 산속이라서 겨울도 빨리 찾아왔습니다. 단풍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풍이의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는 것을 안 산속의 친구들은 단풍이에게 먹을 것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다람쥐는 알밤이며 호도를 가져오고 까치는 빨간 홍시감을 가져오고 서근서근한 돌배도 가져왔습니다. 사슴은 귀한 산삼을 가져오고 아기곰은 달콤한 꿀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단풍이는 아버지와 같이 먹겠다고 조금도 손대지 않고 아버지를 찾아서 산속으로 떠났습니다. 추운 겨울이라 위험하다고 말리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단풍이는 기어이 혼자 길을 떠났습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아버지는 보이지 안았습니다. 하늘에서는 펄펄 함박눈이 내립니다. 단풍이는 너무나 춥고 배가 고파서 눈위에 주저 앉았습니다. 빠알간 사과처럼 두손과 발이 얼어 갔습니다. 꽁꽁 얼어가는 두 손에 호-호 하고 아무리 입김을 불어봐도 손발을 살갗을 도려내는 것처럼 시리고 아파왔습니다. 단풍이는 아빠-하고 부르며 엉엉 울다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단풍이는 잠을 자며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단풍이는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랑 아빠랑 손을 잡고 새처럼 날아다녔습니다. 무지개의 다리를 건너 아빠하고 엄마 그리고 단풍이가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살 수 있는 하늘나라로 가고 있었습니다.
단풍이의 머리위에도 검정 코빡고무신 우에도 그리고 빠알간 두 손 위에도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려 쌓여 갑니다. 단풍이도 그만 엄마와 아빠가 계시는 하늘나라로 간 것이랍니다. 봄이 되자 단풍이가 하늘나라로 간 자리에는 이름모를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초록색아기 손바닥 같은 잎을 가진 이 나무는 쑥쑥 자라며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자 마치 단풍이가 지난 겨울 아빠를 찾아 산속을 헤매며 호호 입김을 불던 빨갛게 언 손과 꼭 닮은 참 곱고도 붉은 빛깔로 물드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산 속의 친구들은 이 예쁜 나무를 단풍나무라고 불렀답니다. 그럼 어린이 여러분(?) 이만 안녕.

 나무,  환경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