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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9 | 연재 [문화비평]
박제화된 우리 문화의 제 모습 찾기
김은정(2004-01-29 15:46:39)


문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정직한 모습의 반영체 이다. 따라서 문화는 당 시대의 삶을 총체적으로 규정하고 반영함으로써 내일의 삶을 제시하는 지렛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당 시대 사람들의 삶은 문화로 감당되어지며, 때문에 내일의 참된 삶을 제시받기 위해선 문화를 올바른 이정표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지역의 문화가, 혹은 한나라의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나라의 문화가 지니는 자주성이 역사성과 각 지역의 개별성이 응집되어 나타나는 것이라 한다면 각 지역의 독창적 문화요소야말로 그 나라 문화의 뿌리를 다지고 뻗어 나가게 하는 바탕이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지역문화가 개성 있는 모습으로 가꾸어지고 발전돼 그 독창성을 살려가야 한다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 지역 문화는 어디에 서있는가?
지자제 시대를 맞이한 오늘의 시점에서 문화가 어떠한 모습으로 꾸려져야 하는가를 모색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화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서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밀리고 눌리어 박제화된 우리문화의 제 모습 찾기.
지역문화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취지를 내세운<지방시대>는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등장한 정책언어중의 하나이다. 당시 지방시대의 개막이나 주체적 자주문화의 진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그로 인해 지방의 경제가, 사회가, 그리고 문화가 새롭게 부각된 것은 늦긴 했지만 어찌 됐던 반가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 <지방시대>란 것이 이렇게 되었다.
지역의 여건이나 각 지역이 안고있는 독특한 상황을 전제로 한 시책의 설정이 아니라 오히려 중앙정부의 시각으로 재단되고 마름질 된 시책에 의해 열리어진 때문에 지방시대라는 것이 길지 않는 지난 몇 년 동안 오히려 <중앙종속 지방시대>로 확고한 자리잡음을 해버린 것이다.
이를테면 정부가 내세운 지방시대라는 것이 지방의 고유성을 자주적으로 이어가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바탕을 다져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모든 요소를 가두어 획일화함으로써 고유성을 변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더욱이 오늘의 지방문화는 그 개별성을 유보 한 채 중앙중심의 문화를 역유입 함으로써 고유한 영역마저 침식당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어쩌면 이 같은 상황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모든 정책이 중앙에 집중되고 정치는 물론, 행정 경제 문화까지도 중앙에 편중된 마당에 어떤 새로운 시책의 동원 없이 지방의 자주성과 독창성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지방정책이 존립 할 수 있는 지방 자치제 실시는 큰 의미를 갖고 있으며 가능성을 부여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어찌됐던 이제 지역문화정책이 독립적으로 설 수 있게 된 셈인데 다라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황폐화되고 획일화된 지역문화를 바로 세우고 그 고유한 요소를 정립해 내는 작업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사실 전통문화의 본고장으로 맥을 이어온 전북의 경우, 이 지역에 맞는 문화를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하느냐의 문제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각별한 연구와 점검작업을 요구한다. 전북지역문화의 독창성을 바탕으로 소멸된 문화를 찾고 고증해내는 작업이 지금의 시점에선 참으로 절실한 요소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과거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 역사성을 오늘의 시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보편성을 정립해 나가는 작업, 그리고 오늘의 참되고 건강한 문화를 이어 내야하는 작업 또한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들은 그동안의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탈주체적인 모습으로 세워져버린 문화의 많은 한계를 극복하고서만이 가능하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전통을 존중해야한다고 내세우면서도 우리가 회복하고 가꾸어야할 전통에는 진정한 관심을 쏟고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전시행정에만 급급했던 문화행정, 더욱이 열악한 재정형편 운운하면서 그러한 전시행정의 가시적 성과(?)를 이어내는데 독특한 몫을 해냈던 제도권 문화예술 단체들, 도대체 문화는 우리와는 별개의 영역 이다는 극히 유아적인 의식의 미숙함을 견지해왔던 기업들의 자기의식 전환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가장 절실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문화부가 발족되고 그에 걸맞게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중요한 내용중의 하나로 지역문화 활성화가 내세워 졌을 때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주창되어 왔던 지역문화가 또다시 강조된다는 사실에 조금은 새삼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던 지방의 문화예술인들은 그러나 그들 특유의 의식으로(?) 적잖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이미 2년이 다 되어 가는 현 시점에서 문화부의 정책이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외향적인 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음에도, 그리고 지금까지의 왜소한 지역문화의 모습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이러한 기대는 도무지 가라앉을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지역문화는 열악한 환경과 재정적 빈곤 속에서 가꾸어져왔고 이 또한 중앙중심의 문화정책에서 기인한 결과이기 때문에 문화정책의 방향에 별 수 없이 일말의 희망을 걸어둘 수밖에 없는 것이 지역사람들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문화정책입안자들이나 시행자들이 진정으로 자각하고 깨우쳐 적극적으로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참된 의지를 반영해 나갈 수 있는 지역문화 정책으로 수용하여 꾸려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전시행정을 부추기는 결과로 역이용되고 있으니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문화예술 분야의 작업들이 재정적 자립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지향하는 문화를 꾸려갈 수 있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대부분의 문화예술단체들이 재정적 자립도를 성취해내기란 요원한 실정이다. 결국 정부의 문화 행정 정책의 측면에서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열악한 재정적 여건을 감수해야하고 또한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물질적 보상을 받지 못하는 희생이 동원돼야하는 셈이고, 지원을 받으려한다면 여전히 전시행정에서 탈바꿈하지 못하는 제도권 예술에 안주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꽤 오랫동안 중앙집권적인 행정과 정치구조에 길들여져 왔던 상황에서, 그리고 지역문화를 내세우고 있는 오늘에조차 지방문화육성에 진정한 애정의 무게를 실어내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 지역문화의 고유한 영역을 담보해내고 올바른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선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창조적이고 건강한 지역문화정책을 확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대부분의 문화예술인들은 지자제시대가 개막돼 지방의회의원들이 지역발전을 위한 갖가지 시책들을 모색하고 지역정책에 반영되고 있는 가운데서 유독 문화정책에는 소홀한 한계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을 볼 때 지자제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지역문화가 바로 설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성급한 일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지방의회에서 별다른 무게로 실어지지 못하고 있는 문화정책을 그래서 더욱 지역문화 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의지와 참여가 요구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우리문화는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한쪽의 편향된 모습으로 성장해 왔다. 서구문화의 무분별한 유입과 주체성 없는 문화의식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 우리의 독창적이고 전통적인 정서의 반영보다는 외국문화의 요소가 우위가치를 부여받는 상황 속에서 자연히 전통적 요소는 쇠퇴하게 되었다. 게다가 지역문화는 중앙에 종속된 채 마치 서울의 문화양태를 어찌됐건 부지런히 뒤&#51922;아가는 것으로 발전도가 가늠되어지는 이중적 모순을 안고있었고 그러면서도 그 사이의 문화적 열세는 갈수록 가중되어 적잖은 문화예술인들이 지역을 등지고 떠나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오늘의 우리 현실을 문화와 예술로써 담보해 내려 했던 적잖은 작업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정치적 탄압까지 가해졌던 상황은 우리 문화의 자주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되었던 점에서 앞으로의 문화가 어떻게 꾸려져야 하는가를 모색하는 있어 이들 문화운동 성과에 대한 점검이 전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화의 본래적 기능에 의해 80년대 이후 강하게 불어닥친 지역문화운동은 우리의 현실과 이 지역의 특성을 담아내는 주체적 인식의 실천적 결집으로써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지역문화의 새로운 활성화를 가져오는데 일정한 몫을 해냈던 점을 감안한다면 민중적 민족적 정서에 그 중심을 맞대놓고 있는 문화운동에 정당한 역할과 영역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지역문화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지켜 가는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예술 각 부문에서 사회적 제약을 감수하면서 올곧은 시각으로 우리 현실을 직시하고 민족적 주체의식을 문화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온 이 지역 문화예술 단체들은 이 시점에서 보다 새롭게 의지를 결집하고 역량을 모아내는 일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든다.
지방자치시대의 지역문화가 올바로 설 수 있으려면 앞서 전제한 여러 가지 여건을 극복하거나 혹은 담보해내야 한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여건은 갖가지 창조적인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재정적 여건의 확충이다. 어찌 보면 지역문화가 그 독창성을 지켜나갈 수 있기까지엔 끊임없는 투지가 가장 중요한 여건이랄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지역의 기업들이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함으로써 지역문화발전을 주도하는 매체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은 보다 중요한 일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업들이 문화에는 무관심한 채 예술과 기업은 전혀 별개인 것처럼 인식해 오늘의 열악한 지역문화를 만들어내는데 한몫(?)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전환은 더욱 절실하다.
실제로 오늘의 지역문화의 발전이 재정적 확보에 비례한다는 것을 간과 할 수 없다면 기업의 투자는 보다 적극적인 배려로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탈 중앙을 내세우며 지역의 문화를 정립하고자 나선 문화예술인들의 노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으려면 지역의 행정이나 기업 그리고 주민들이 하나로 뭉쳐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시대에서 그 지역의 문화 발전은 기업이 어느 정도의 애정을 갖고 참여하고 투자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주장은 바로 이런 점에서 결코 과장 된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가 앞으로 지역주민들의 삶에 어떻게 반영되느냐는 지역주민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 지역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전북지역 문화의 독자성이 회복되고 건강성을 정립시키는 것은 바로 이 지역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에서 비롯되며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전 어느 대학 연구소에서 지방자치시대를 겨냥한 정책제언을 엮어 책으로 펴냈는데 그 내용 중에서도 문예진흥을 위한 정책제언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지역이 문화정책입안자나 관계자들이 각별히 새겨줄 것을 기대하며 그 내용을 소개한다.
*문예진흥에는 대동(大同)의 원칙에서 정책을 세운다. 모든 유파와 장르가 참여하는 문예활동을 지원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문예진흥책에 있어 이데올로기, 정치성은 일체 배제되어야 한다. 민중미술, 노동자 문학, 각종 문화패를 비롯한 문화운동 단체는 지금껏 정치적 전위성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못 받아 왔지만 이러한 문화를 향유하고 이것을 통해 자신들이 삶의 건강한 지평을 열어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민척도, 이를테면 시민들의 판단하는 기준에 맞는 문예진흥을 펴야한다. 특히 자치단체의 공적인 재원에 전적으로 의존해야하는 예술활동은 광범한 시민참가와 동의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황에 맞지 않는 고급미술품이 구입, 지나치게 거대한 교향악단의 유지 등으로 막대한 재정을 지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민예술제를 개최하여 많은 예술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특히 시민예술제는 시민 스스로가 실행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역주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그 지역에서 태어난 예술가, 문예인을 부각시키고 그들을 위한 기념사업으로 문예상의 재정 기념관을 설립, 생가와 작품, 유고의 보존을 통해 그 지역 문화의 독창적 맥을 정립시키고 시민들이 창작활동을 위한 예술 풍토를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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