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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 | 연재 [무대 뒷 이야기]
리허설, 비움의 미학
명상종 공연기획자(2014-03-03 18:46:40)

여름밤의 묘미, 야외공연. 리허설까지 마친 락밴드의 공연이 시작된다. 그런데 기타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뿔싸! 어이없게도 원인은 바로 땡볕. 리허설을 마치고 간단한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하며 악기를 무대 위해 그대로 놓아둔 것이 화근이었다. 여름의 열기로 일렉기타의 케이블 접합 부분이 녹아버린 것이다. 다른 기타로 공연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기타로 연주자도 제작진도 한껏 연습해온 사운드를 포기해야 했다

꼼꼼히 점검하고 점검했지만, 결국 작은 실수로 뜨거운 날씨에 당하고 말았다. 이건 천재지변이라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뿐이랴, 리허설 때는 멀쩡하던 무대 세트들이 막상 공연 도중에는 제대로 말을 듣는 경우, 멀쩡하던 배우가 뮤지컬 공연 당일 교통사고를 당해 목발을 짚고 나타나 극중에서도 하는 없이 환자로 둔갑해 달을 연습한 춤을 추지 못하는, 어처구니없고 아찔한 순간들은 없이 많다.

그럴수록 더욱 리허설에 욕심을 내게 된다. 돌발 상황, 위험요소들을 걷어낼 있는 방법은 아무리 찾아도 제대로 리허설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리허설은 공연 마지막 단계로 음향, 조명, 무대, 영상 공연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을 점검하는 시간이다.

원칙대로 하자면 최소한 공연 하루 전에는 리허설이 진행되어야 한다. 공연을 위한 모든 것들이 세팅된 상태에서 최종 점검을 통해 공연의 수정과 보완과정이 진행돼야 제대로 리허설이라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작여건이 열악한 상황이 많다보니, 리허설을 위해 극장을 하루 대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연장뿐만 아니라 많은 인력들과 기타 등등의 비용이 사실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리허설은 공연 당일 이뤄지기 일수다. 시간이 빠듯한 리허설 현장의 목적은 최종 점검 외에 하나가 숨어 있다. 바로버리는 이다. 조금이라도 위험요소가 보이는 것들은 연출자의 과감한 결정을 요구하게 된다. 과한 욕심이 화를 부를 있기 때문에, 공연에서는 되리라는 맹랑한 생각 또한 버려야 하는 순간이다


연출가 입장에서는 투여된 예산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에게 보여줄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여간 힘든 일이지만, 좋은 공연을 위해 속이 쓰려도 과감한 결정을 해줘야 한다. 사실 매우 힘든 부분이다. 공연을 앞두고 모두가 긴장한 상황에서 어떤 포기가 됐든  의욕을 꺾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출연진을 설득하고, 스태프들을 다독이며좋은 공연을 위해서는 우리 욕심을 버리고 실수를 줄이는 이라고 못박아둔다. 무리하더라도 강행을 하자는 의욕, 아깝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쉬움 모두 예측할 없는 실수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공연 제작과정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버리고 얻는 과정의 연속으로, 특히 넉넉지 않은 공연제작과정에서 리허설은 이렇듯  ‘비우는 과정 된다

하지만 비우면 채워진다고 했던가. 실수를 최소화한 안정된 공연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로 채워진다. 그리고 오늘 무대에 올리지 못한 무언가는 더욱 세련되고 안정된 모습으로 다음 무대를 약속한다


우리는 모두 어디서든 리허설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훨씬 어렵고, 버려야 얻을 있다는 것을 삶의 무대 곳곳에서 항상 맞닥뜨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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